“아무 대안없이 무조건 상한제 비판해선 안돼”

“정부의 인위적 가격 통제는 바람직하지 않아”

전세값 상한제 도입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집값 상승세는 잠잠해졌지만 수도권과 서울 일부 지역, 특히 학군 수요가 높은 서울의 대치동 목동과 같은 지역의 전세값이 다시 큰 폭으로 뛰면서 여야할 것 없이 정치권에서 전세값 상한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최근 전세값이 꿈틀대는 것은 재건축으로 기존 아파트를 헐면서 전세 수요가 하반기에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이사 수요까지 겹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불과 1~2주일 사이에 전세값이 20%나 급등하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단기간에 전세값이 다시 폭등세를 보이자 아이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소위 ‘학군 좋은’ 지역에서 전세살이를 하는 가정에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 오른 전세금 목돈을 마련하기는 막막하지만 아이들의 학교 때문에 쉽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자 내년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표를 의식해 서민을 위해 전세값 상승에 일정한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전세 가격 인상에 상한을 설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팽팽하다.

전세값을 포함한 전·월세 상한제를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정치권에서는 한 목소리로 도입 필요성을 역설한다.

한나라당은 전월세 가격 급등지역을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일정 비율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연간 전세값 상승률을 5% 정도로 제한하고 세입자에 대해서는 1회에 계약갱신 청구권을 주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해 가고 있다.

민주당은 1989년 전세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릴 당시는 정부의 사전 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보증금 중 우선변제액 확대 등이 함께 시행돼 전세금이 급등하는 등 부작용이 컸지만 사전에 보완책을 잘 마련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제도 시행에 앞서 어느 정도 전월세 상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폭등’으로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1년 계약갱신 청구기간을 5년으로 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정 당시에도 임대료 급등 우려가 있었으나, 실제로 85% 가량은 보증금이 오르지 않았다는 사례도 든다.

정치권은 인위적인 가격 통제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사적인 경제영역에 국가가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월세값은 오르는데 대안도 없이 무조건 상한제를 비판하는 옳지 않으며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으면 가을 전세대란에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여야 모두 적극적으로 상한제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반대


정부는 기본적으로 전월세 상한제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전월세 상한제에 대해 단기적인 임대료의 대폭 인상 가능성과 중장기적인 민간 임대주택 공급 축소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밝혔다.

권도엽 국토부장관도 이달 초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인위적인 가격 통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이 결정되더라도 시행까지는 수개월이 걸리는데, 정부는 집주인들이 사전에 임대료를 집중적으로 올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1989년 전세 계약기간을 종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을 때, 계약기간동안 제한되는 상승분을 미리 인상해 연간 23.7%나 전셋값이 폭등한 바 있다는 점을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또 수급 안정을 위해서는 민간 임대주택의 원활한 공급이 필수적인데 임대료를 제한하면 공급이 위축되고 중장기적으로 가격상승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11.5%인데, 우리나라는 4.8%에 불과할 정도로 민간의 역할이 크다.

정치권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상한제가 도입되더라도 실제로 전세 물량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각종 이면 계약이 횡행해 실제로 전월세 상한제를 실시하는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한제를 하려면 전세 가격이 모두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거의 불가능한 점도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이유다.

생각하기

정부가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 결정 과정에 개입해 직접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 옳으냐는 고전적인 논쟁거리다. 이에 대한 대답은 시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각자의 철학과 신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부분의 인위적 가격 통제는 단기적으로는 반짝 효과를 거두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자원배분을 왜곡시켜 더 큰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외국에서도 주택 임대료 상승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특정 지역이나 평형에 대해 시장 임대료가 일정 수준 이상 폭등할 때만 한시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월세 전반에 대해 일률적으로 연간 몇 %를 정해 그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도 월세보다는 전세값 급등에 따른 전세값 상승 제한이 주 타깃이다.

전세는 지속적인 집값 상승이 전제되거나 높은 금리가 장기간 유지돼야 가능한 제도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은 가격 급등세가 주춤해진데다가 금리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전세제도가 지속되기 어려운 환경이 국내에도 점차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재의 전세값 고공행진은 전세제도가 사라지기 직전의 현상으로 봐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세값이 지나치게 올라 매매값과의 격차가 작아지면 상대적으로 전세수요가 줄어들고 결국 전세제도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전세값 상한제는 단지 최근 전세값이 치솟는다고, 이를 시급히 잡아야 한다는 단기적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가져올 장기적인 효과, 그리고 종합적인 주택수급 상황, 그리고 전세제도가 우리사회에서 지금 어떤 위치에 와 있는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도입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단지 서민부담이 많아진다며 밀어붙이기에는 고려해야 할 점이 너무도 많은 것이 전월세 상한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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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6월6일자 보도기사>

주택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 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이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나라당이 이 법안을 중점 처리 대상으로 지정했고 민주당도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약 기간 2년이 끝난 뒤 임차인에게 한 차례 더 계약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계약 갱신 청구권' 도입 등을 놓고 여야의 의견이 갈려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6일 김진표 원내대표 주재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달 임시국회에서 전월세 상한제 관련 법안을 처리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박영선,이용섭,조경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민주당 안은 △임차인에게 '계약갱신 청구권'을 1회에 한해 보장해 결과적으로 4년간 전월세 계약이 이뤄지게 하고 △계약 갱신 때는 연간 5% 이내에서 전월세를 인상하도록 하며 △임대인이 인상률 상한제를 위반할 경우 임차인이 차액 반환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이 가운데 '계약 갱신 청구권'을 전월세 상한제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에도 전월세 보증금 등을 증액할 때는 인상률이 5%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지만 계약 갱신 청구권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이다.

한편 전월세 상한제 도입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도 법안 통과에 막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앞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전월세 상한제처럼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