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는 '쿠란'··· 다른 손에는 '경제'

유연한 소통으로 다양한 문명 융합

상업 중시 ··· 종이·농산물 등 확산

[경제사 뒤집어 읽기] (16) 최초의 '글로벌 경제' 이슬람 제국
이슬람교만큼 광범위한 지역에 빠르게 팽창해간 종교는 없을 것이다. 예언자 무하마드의 사망(632년) 이후 10년 내에 아랍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서부이란을 정복했다.

팽창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랍의 선박들이 키프로스(649년),카르타고(698년),튀니지(700년),지브롤터(711년)를 정복한 후 마침내 스페인을 정복(711~716년)했다.

동쪽 방향의 팽창 과정을 보면 650년대에 이란 고원의 사산 제국을 무너뜨렸고 그후 발크,사마르칸트,부하라 등 중앙아시아의 주요 오아시스 지역들을 지배했다.

더 나아가서 터키 부족들의 요청으로 아랍군이 당나라의 서쪽 변경 지역까지 진공해 탈라스 강변에서 당나라군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터키 족이 중국 문명권에 들어가지 않고 이슬람권과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이는 중앙아시아의 역사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남쪽으로는 아랍인들이 인도로 항해해 들어가 711년에 힌두 · 불교 문화권이었던 신드(Sind) 지방을 정복했다. 그후로는 동남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으로 이슬람교가 확산돼 갔다.

이처럼 이슬람교의 성립 이후 130년 정도의 기간에 아랍군과 선박은 지브롤터부터 인도에 이르는 엄청난 지역을 지배했고,중국 및 유럽과 마주하며 그 내부로 침투할 길을 찾고 있었다.

이런 경이로운 팽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알라의 위대한 뜻이었다는 이슬람교 내부의 해석은 물론 역사학적 설명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재물을 약탈하고 여성들을 탐하는 아랍의 호전적 전사들이 메뚜기떼처럼 몰려갔다는 식으로 비하하는 19세기 유럽 학자들의 설명 역시 사실과 크게 다르다.

오늘날 학자들은 7~8세기 아랍 군대가 대단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군사 작전을 펼쳤다는 점,새로운 물자 공급 지역과 교역로를 차지해야 하는 경제적 욕구가 커졌다는 점,종교적 열정의 분출에 동반된 정치적 에너지를 바깥으로 발산시켜야 했다는 점 등을 거론한다.

아랍 · 무슬림의 팽창은 정치 · 군사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잘 계산된 조직적 팽창인 것이다.

이슬람 세계는 글로벌 세계질서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이슬람권'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이 세계의 실체는 하나의 종교권 혹은 하나의 문명권 이상의 것이다.

이슬람권은 아랍 세계,페르시아,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인도,북아프리카,스페인 등 실로 다양한 문명들을 포함하는 '초문명'이다.

여러 다양한 문명 요소들이 이 안에서 활발하게 소통하고 융합되기에 이르렀다.

이슬람권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오해하듯이 종교가 모든 것을 철저히 지배해 질식시키는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어떤 지역보다 유연한 소통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흔히 초기 이슬람권에 대해 '한 손에는 칼,한 손에는 쿠란'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즉 지배 지역에 이슬람교를 강요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살해했다는 식이다.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피지배민들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형제가 되든지,그렇지 않으면 세금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기존 종교를 믿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아랍화'와 '이슬람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아랍의 지배를 받아 아랍 문화가 사회에 널리 퍼지는 것이고,후자는 주민 다수가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것인데 이 둘이 항상 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스페인에서는 아랍의 발전된 과학과 문학,음악,농업 기술 등을 받아들여 아랍화는 많이 진전되었지만 기독교를 그대로 유지하는 주민이 많아 이슬람화는 불완전했다.

반면 이란은 아랍 문화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페르시아 문화를 유지했지만 이슬람화는 크게 진척돼 조로아스터교를 거의 완전히 대체했다.

종교가 다른 부문을 완전히 질식시키지 않는 유연한 태도는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슬람권은 광대한 지역에 펼쳐져 있어서 상이한 물품들이 서로 교환됐다.

문화적으로 매우 다른 지역 간에도 하나의 종교,하나의 공통언어(아랍어)가 쓰여서 소통이 편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하마드 자신이 상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종교적으로도 상업에 비교적 호의적이었다.

그 결과 유라시아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의 넓은 지역에 무슬림들의 상업 네트워크가 확산됐고,이것이 경제 · 문화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이슬람 문명은 쿠란을 읽는 '책의 문명'이었다.

책의 제작에는 제지술이 필수적이다. 중국에서 개발된 제지술은 8세기 중엽 중국 · 아랍 간 탈라스 전투 당시 아랍인들에게 전해진 후 종내 이슬람 세계 전체에 확산됐다.

8세기 말 바그다드에 처음 제지용 물레방아가 선을 보인 후 900년에는 이집트에 도입됐고,12세기에는 모로코와 스페인에서도 종이가 만들어졌다. 곧 이 기술은 유럽 전역에 확산돼 인류 지성사(知性史)의 흐름에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

농산물의 보급 역시 중요한 요소다.

아랍인이 인도의 신드 지방을 정복한 것은 유라시아의 농업 구조를 변화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수많은 작물과 과일,채소들이 인도에서 아라비아로 전해지고 그곳에서 다시 이슬람권 각지로 퍼져갔다.

경질 밀,벼,사탕수수,바나나,오렌지,레몬,라임,망고,수박,시금치,아티초크,가지,그리고 무엇보다도 면화가 이슬람권,더 나아가 세계 각지로 보급됐다.

농사보다는 교역이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던 아랍인들에 의해 농업 혁신의 기초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슬람권은 최초의 '세계경제'라 할 만하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는 여기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