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의 참모 ‘아그리파’

사재 털어 수로 보수…정치 안정 이끌어


[경제사 뒤집어 읽기] (7) 아그리파와 로마의 상하수도
로마는 하루아침에 지어진 것이 아니다.

100만명이 모여 사는 거대 도시 로마,유럽과 북아프리카의 광대한 지역을 포괄하는 제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50m 높이의 3단 아치 구조를 한 프랑스 남부의 퐁뒤가르 수로교(水路橋)나 영국의 배스에 있는 로마목욕탕 같은 것들은 상하수도 기반시설이 제국 전체에 걸쳐 얼마나 잘 갖춰져 있었는지 보여준다.

로마시의 상하수도 시스템은 1000개가 넘는 분수반(噴水盤)과 급수전(給水栓),11개의 거대한 제국 목욕탕을 비롯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중목욕탕과 사설 목욕탕,하수를 모아 티베르 강에 쏟아버리는 지하 하수구를 포함한다.

로마인들은 일찍부터 11개의 수로를 건설해 깨끗한 물을 로마 시내로 풍부하게 공급했다.

이 물은 산속의 샘에서 나온 물을 모아 정화한 다음 로마까지 흘러오도록 만든 것이다.

가압 모터 같은 것이 없던 당시 먼 거리로 물을 보내는 데에는 순전히 중력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원지로부터 로마 시내까지 줄곧 일정하게 경사가 진 수로를 건설해야 했다.

수로 가운데 가장 긴 것은 아쿠아 마르시아였다.

기원전 140년께 지어진 이 수로는 90㎞나 떨어진 아니오 계곡에서 로마시 동쪽 지역으로 물을 공급했는데,물이 맑고 차가운 것으로 유명했다.

이 수로는 로마시의 팽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시대인 기원전 33년,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이 수로를 본격적으로 수리한 것은 정치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띠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벽돌의 도시 로마를 물려받아 대리석의 도시로 넘겨주었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런 업적을 이루는 데 실제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 바로 아그리파다.

그는 군 사령관으로 전투에 참여하다가 기원전 34년에 로마로 귀환한 후 공공시설물과 축제를 관장하는 조영관(造營官 · aediles) 직을 맡게 되었다.

당시 계속되는 전쟁과 정치적 갈등으로 로마의 기반시설은 형편없는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가장 긴급한 문제는 상하수도 시스템이었다.

조영관이 된 후 그는 1년 이내에 아쿠아 마르시아를 비롯한 수로 3개를 보수하고 1개를 새로 건설해 물 공급량을 크게 늘렸다.

또 700개의 수조,500개의 급수반,130개의 물탱크를 만들었고,공중목욕탕도 개장했다.

이런 일들은 흔히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했다.

위대한 인물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공공의 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로마 시대의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로마 공화정 당시 최고의 직위였던 집정관(consul)까지 지낸 다음 그 하위직인 조영관을 맡는다는 것부터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아그리파는 로마의 상하수도 시스템 정비를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고 전력을 다해 봉사했다.

게다가 시민들에게 장대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기름과 소금도 나눠 주었으며,심지어 축제 때에는 무료로 이발사도 제공했다.

당연히 그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때는 아우구스투스가 그의 정적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내전을 벌이고 있었으며,아직 확고히 권력을 잡기 전이었다.

서민 출신으로서 겸손의 미덕을 지닌 아그리파가 로마의 핵심 기반시설을 정비해 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아우구스투스에게 부족한 정치적 측면을 보충해 주었다.

시민들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얻음으로써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동맹을 눌러 이기고 황제의 직위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아그리파의 업적이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상수도 시스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하수도 시스템이다. 로마의 하수도인 클로아카 막시마(대 하수구)는 기원전 600년께 만들어졌다고 하니,로마시 자체와 거의 같은 역사를 가진 셈이다.

원래는 일부 구간만 제외하고는 지상에 노출된 하수도였는데,복개공사를 하고 그 위에 건축함으로써 지하 하수도로 변모했다.

시민들의 생활 오물과 오수는 이 하수도에 모아져 시 외곽으로 흐르는 티베르 강에 버려졌다.

한때 인구 100만명이 살았던 대도시에서 하수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로마 시대 관행 중에는 심지어 시체를 제대로 매장하지 않고 하수도에 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자연히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발생하고,전염병이 창궐해 도시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클로아카 막시마는 막히지 않게 잘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정비해야 했다.

아그리파는 직접 보트를 타고 이 지하 하수도를 조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를 도와 제국 동부를 직접 통치하기도 하고,계속해서 군사 작전에도 참여했으며,한때 아우구스투스가 중병에 걸렸을 때에는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 때에도 그는 로마의 상하수도 시스템 관련 일만은 자신이 직접 챙겼다.

기원전 19년에 다시 사재를 털어 비르고 수로를 건설해 늘어나는 물 수요에 대응한 것이 그런 사례다.

그가 작성한 수도 사업 마스터플랜은 그 후 오랫동안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물 관리 행정의 기본 지침이 됐다.

위대한 제국의 건설 이면에는 위대한 인물의 남다른 공헌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