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왜불러)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 하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가수 하춘화가 불러 우리에게 익숙해진 대중가요 '잘했군 잘했어'의 도입부이다.
나이 지긋한 아내가 남편을 '영감' 하고 부르는데, 그 맛이 친근하고 구수하다.
그런데 다음 글에 나오는 또 다른 '영감'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7일 대법원은 여지껏 판사를 영감이라 불러오던 버릇을 없애도록 새삼스러운 지시를 관하에 시달했다고.
이유는 영감이라는 호칭이 아첨근성의 잔재이므로 그와 같은 냄새나는 호칭은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1962년 8월 8일자 한 신문에 보도된 이 대법원의 지침은 우리말에 담긴 권위주의적 잔재를 잘 보여준다.
여기 보이는 '영감'은 딱히 나이가 들어서라기보다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관습적으로 쓰이는 비민주적 용어이다.
우리말에서 '영감'이란 말은 다양하게 쓰인다.
때로는 극과 극을 달린다. 대중가요 '잘했군 잘했어'에 나오는 '영감'은 정이 담뿍 담긴 말이지만 나이 든 남자에게 영감쟁이라 부를 때는 아주 낮잡아 이르는 말이 된다.
이 말은 영감탱이나 영감태기라고도 하는데 모두 같은 말로 쓰인다.
그런가 하면 군수나 판사, 검사 같은 사람에게 붙이는 '영감'은 예로부터 벼슬아치가 갖는 권위의 상징으로 통했다.
'영감'은 얼핏 보면 고유어 같기도 하지만 실은 한자어이다. '令監'으로 쓴다. 영(令)이나 감(監)은 모두 예로부터 관직의 이름으로 쓰이던 말이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나이 든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그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또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남자를 대접하여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김 영감네 가게는 작지만 목이 좋아 손님이 많아" 식으로 쓰인다.
때로는 '급수가 높은 공무원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군수 영감이 오늘 우리 집에 온대요"처럼 말할 때 쓰인 '영감'이 그런 것이다.
판사 영감이니 검사 영감이니 하는 호칭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영감'의 본래 정체는 조선시대 때 벼슬아치, 그것도 정3품과 종2품의 고위직 관리에게 붙이던 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이 들어 영감쟁이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일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영감님'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부르는 관습이 남아 있는 것은 여기서 유래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엄격한 신분사회였기에 계급별로 부르는 말이 달랐다.
요즘 시대에는 물론 당시와 같이 신분에 따른 것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의미 뉘앙스를 담고 지금까지도 그 말이 이어져 오는 경우도 있다.
영감으로 불리던 정3품이나 종2품은 지금의 공무원을 기준으로 치면 대략 1급 관리관, 즉 행정 각부의 차관보나 실장쯤에 해당하는 직위이다.
이처럼 높은 직위의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붙이던 말이 후세에 내려오면서 차츰 사회적 명사나 나이 많은 노인에게 존칭의 의미를 담은 말로 쓰임새가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더 나아가 나이 든 부부 간에 아내가 남편을 존대해서 부르는 말로도 쓰이게 됐다.
조선시대에는 관직이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이런 식으로 정9품, 종9품까지 18품계로 돼 있었다. 가령 첫째 등급인 정1품은 영의정(지금의 국무총리급),좌의정,우의정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국가의 정무를 맡아보던 여섯 관부의 판서가 정2품이다. 지금의 각 부 장관직으로 이해하면 된다.
판서의 다음 서열인 참판(지금의 차관급)과 각 도의 으뜸 벼슬인 관찰사(지금의 도지사)는 종2품이었다.
18품계 중에서 정3품 이상을 통틀어 당상관이라 칭했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 '떼어놓은 당상관'이다.
이는 '떼어 놓은 당상이 변하거나 다른 데로 갈 리 없다는 데서,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을 때론 '따놓은 당상관'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는 둘 다 맞는 표현이다.
원래 당상관은 임금이 임명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임금이 따로 '떼어놓은' 것처럼 확실하다는 뜻에서 '떼어놓은 당상관'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이를 '당상관을 내가 이미 따놓았다'라는 식의 의미로 워낙 많이 쓴다는 점을 반영해 '따놓은 당상관'도 함께 쓸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net
가수 하춘화가 불러 우리에게 익숙해진 대중가요 '잘했군 잘했어'의 도입부이다.
나이 지긋한 아내가 남편을 '영감' 하고 부르는데, 그 맛이 친근하고 구수하다.
그런데 다음 글에 나오는 또 다른 '영감'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7일 대법원은 여지껏 판사를 영감이라 불러오던 버릇을 없애도록 새삼스러운 지시를 관하에 시달했다고.
이유는 영감이라는 호칭이 아첨근성의 잔재이므로 그와 같은 냄새나는 호칭은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1962년 8월 8일자 한 신문에 보도된 이 대법원의 지침은 우리말에 담긴 권위주의적 잔재를 잘 보여준다.
여기 보이는 '영감'은 딱히 나이가 들어서라기보다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관습적으로 쓰이는 비민주적 용어이다.
우리말에서 '영감'이란 말은 다양하게 쓰인다.
때로는 극과 극을 달린다. 대중가요 '잘했군 잘했어'에 나오는 '영감'은 정이 담뿍 담긴 말이지만 나이 든 남자에게 영감쟁이라 부를 때는 아주 낮잡아 이르는 말이 된다.
이 말은 영감탱이나 영감태기라고도 하는데 모두 같은 말로 쓰인다.
그런가 하면 군수나 판사, 검사 같은 사람에게 붙이는 '영감'은 예로부터 벼슬아치가 갖는 권위의 상징으로 통했다.
'영감'은 얼핏 보면 고유어 같기도 하지만 실은 한자어이다. '令監'으로 쓴다. 영(令)이나 감(監)은 모두 예로부터 관직의 이름으로 쓰이던 말이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나이 든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그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또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남자를 대접하여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김 영감네 가게는 작지만 목이 좋아 손님이 많아" 식으로 쓰인다.
때로는 '급수가 높은 공무원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군수 영감이 오늘 우리 집에 온대요"처럼 말할 때 쓰인 '영감'이 그런 것이다.
판사 영감이니 검사 영감이니 하는 호칭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영감'의 본래 정체는 조선시대 때 벼슬아치, 그것도 정3품과 종2품의 고위직 관리에게 붙이던 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이 들어 영감쟁이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일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영감님'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부르는 관습이 남아 있는 것은 여기서 유래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엄격한 신분사회였기에 계급별로 부르는 말이 달랐다.
요즘 시대에는 물론 당시와 같이 신분에 따른 것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의미 뉘앙스를 담고 지금까지도 그 말이 이어져 오는 경우도 있다.
영감으로 불리던 정3품이나 종2품은 지금의 공무원을 기준으로 치면 대략 1급 관리관, 즉 행정 각부의 차관보나 실장쯤에 해당하는 직위이다.
이처럼 높은 직위의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붙이던 말이 후세에 내려오면서 차츰 사회적 명사나 나이 많은 노인에게 존칭의 의미를 담은 말로 쓰임새가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더 나아가 나이 든 부부 간에 아내가 남편을 존대해서 부르는 말로도 쓰이게 됐다.
조선시대에는 관직이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이런 식으로 정9품, 종9품까지 18품계로 돼 있었다. 가령 첫째 등급인 정1품은 영의정(지금의 국무총리급),좌의정,우의정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국가의 정무를 맡아보던 여섯 관부의 판서가 정2품이다. 지금의 각 부 장관직으로 이해하면 된다.
판서의 다음 서열인 참판(지금의 차관급)과 각 도의 으뜸 벼슬인 관찰사(지금의 도지사)는 종2품이었다.
18품계 중에서 정3품 이상을 통틀어 당상관이라 칭했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 '떼어놓은 당상관'이다.
이는 '떼어 놓은 당상이 변하거나 다른 데로 갈 리 없다는 데서,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을 때론 '따놓은 당상관'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는 둘 다 맞는 표현이다.
원래 당상관은 임금이 임명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임금이 따로 '떼어놓은' 것처럼 확실하다는 뜻에서 '떼어놓은 당상관'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이를 '당상관을 내가 이미 따놓았다'라는 식의 의미로 워낙 많이 쓴다는 점을 반영해 '따놓은 당상관'도 함께 쓸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