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 논술 첨삭노트] (53) “더 많은 경험이 더 높은 가능성을 가져오는 법”
이번 주에도 논술에 대한 질문이 많이 쏟아졌네요.

생각보다 논술을 혼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대부분의 질문에는 직접 답장을 드렸지만, 몇몇 질문은 모두 같이 공유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다시 한번 지면을 빌립니다.

연재를 기다리시는 분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 어려운 제시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배경지식이 정말 필요하나요?

[질문1] 속칭 명문대에서 나오는 논술 지문들을 보면 대한민국 표현엔 있지도 않을 것 같은 말들로 도배된 철학 지문이 있습니다.

그 속 내용을 들여다 보노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옵니다.

솔직히 이 말을 이해하는 대한민국 청소년이 있기는 한가 싶습니다.

그리고 수시 때까지 이런 복잡 난해한 말을 이해하게 될 것 같지도 않아 좀 불안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논술 시험에 이런 지문들을 이해하지 못해도 풀 수 있기는 한가요?


[질문2] 저희 학교 선생님께선 논술에 배경지식은 그다지 필요 없다던데, 즉 제시문으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가요?



[답변] 두 질문 모두 사실 비슷한 질문입니다.

어찌 보면 논술 지문은 언어비문학지문과 유사하기 때문에 언어만 잘하면 논술도 잘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지요.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인정하는 바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반드시 상관관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객관식 시험과 주관식 시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니까요.

제시된 답 중에서 고르는 일은, 주어진 의미를 파악하고 다시 재생산해서 글을 써야 하는 일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한 일입니다.

주어진 보기 중에서 가장 적당하거나, 적당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일과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장이나 단어의 뜻을 '아는 척' 원고지에 써야 하는 일은 도저히 같을 수 없지요.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들의 제시문이 고등학생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렇다고 너무 쉽게도 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지요.

특히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형이상학적 주제를 가진 제시문들은 학생들에게 큰 어려움이지요.

전 그래서 학생들에게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좋다고 항상 이야기합니다.

갑자기 '옛날 논술'처럼 배경지식을 이야기하다니 좀 우습기도 하겠지만, 어차피 독해만으로 뜻을 100%이해하기에 제시문은 너무 어렵습니다.

전 배경지식만 달달 외우라는 것도 아니고, 빠듯한 고3 시간을 할애하여 고전을 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교하게 짜여진 커리큘럼하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만, 문제를 푸는 것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즉, 좀 더 일반적인 사실로부터 좀 더 전문적인 사실로 지식을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문제의 순서를 정하는 것입니다.

'죄수의 딜레마'나 '게임 이론'에 관련된 문제를 먼저 풀기보다는 '국부론'에 관련된 문제를 풀어서 기초를 확실히 쌓는 것이 좋지요.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문제를 먼저 풀기보다는 '근대성의 폐해'에 대한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좋지요.

기출문제는 이런 식으로 단계를 이루어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무작정 아무 문제나 푼다고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문제를 푸는 것도 순서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배경지식을 난이도별로 조성할 수 있도록 시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고르는 능력 자체도 매우 중요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무엇인가를 배울 때는 이렇게 단계별로 접근하는 것이 좋지요.

단지 배경지식 뿐만 아니라 유형도, 난이도도, 분량도 그렇습니다.

어차피 고등학생이라면 전문적인 개념이나 어휘를 보고 난감해하기란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2010년 수시 2-1학기 서강대학교 문학부에서 나온 <자서전> 문제는 철학적 개념들로 점철된 문제였지요.

<회의주의> <실재론> <구성주의>라는 단어들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이 중에서 <구성주의>라는 단어 하나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이 문제의 난이도는 한 단계 떨어졌을 것입니다.

(최근 어린이집 광고를 보면 '구성주의 원칙'을 지킨다는 표현이 있기도 하지요. 구성주의가 뭘까요?)

처음엔 모두 낯설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한번 틀리더라도 해설을 통해 내용을 이해하고 나면 그 개념이나 어휘를 기억할 수 있지요.

그리고 다음에 그와 관련된 주제나 문제가 나오면 '미리 이해한 부분'을 이용해 좀 더 쉽게 독해를 할 수 있지요.

배경지식이란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아예 없는 학생도 없습니다. 다만, 배경지식만을 위해 따로 시간을 투자하진 말라는 것 뿐입니다. 모든 것은 문제를 풀면서 자연스럽게 쌓아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고3에게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참고 삼아 말씀드리자면, 제 경험상 어떤 학생이 '전 이 제시문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는 것은, ①특정하게 사용된 개념이나 어휘를 모른다는 뜻이거나 ②제시문안에 내재된 주장과 근거, 전제와 결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②번 같은 경우는 더욱 난감합니다.

근거와 주장의 관계라면 <때문에, 이므로>와 같은 특정 부분을 보고 감을 잡을 수 있지만 전제와 결론으로 구성된 연역(deduction)식 제시문의 경우, <그러므로> 따위의 연결어 하나만 지우면 학생들 애먹이기는 매우 쉬운 일이지요.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제시문도 쉬운 것으로부터 어려운 것으로 진도를 구성함으로써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지요.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배경지식은 있으면 좋습니다.

다만 따로 익히지 마시고, 문제를 풀면서 단계별로 쌓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 논술에 어느 정도나 시간을 투자해야 하나요?

[질문3] 3학년 문과생이구요. 학원에서 논술을 배우고 있어요.

작년 12월부터 1주일 한 번씩 꾸준히 다녔기 때문에 논술에 대한 맛은 조금 봤구요.

대충 논술이 어떤건지 이해도 갑니다.

논술 공부는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서 3시간씩 수업받는 것 외에는 집에서 논술 숙제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아직까지는 교과 공부와 수능 준비가 더 우선이라는 생각에 논술은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내서 학원을 갔다오고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알고 싶어요.

사실 가장 많은 질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논술 이 정도만 하면 괜찮습니까?'라는 것이지요.

어떤 식으로 배우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터라, 쉽게 말하진 못하겠지만 문제의 개수로 살피면 500자(30분) 문제 3~4개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은 실제 논술시험 분량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각기 다른 주제의 문제라는 것이 중요하지요.

아직 3월이기 때문에 굳이 긴 글쓰기나 세트 문제 풀이가 필요 없습니다.

우선은 기본 유형이나 기본 주제들에 대한 확실한 기초를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학생들은 생글 논술경시대회와 같은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측정하는 것도 좋겠지요.

(아시겠지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대회인 만큼 큰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꾸준히 문제를 푸는 일입니다.

시험전까지 최소한 100개 정도의 문제는 풀어야 그래도 어느 정도 논술로 커버할 수 있는 주제나 유형에 대한 접근이 마무리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100개면 너무 많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일주일에 4개라고 계산했을 경우, 6~7개월이면 충분히 풀 수 있는 양입니다.

3월부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풀 수 있지요.

대부분 혼자서 하는 학생들은 어떤 문제를 풀지도 모른 채 일주일에 한 두 개씩 풀다가 '대충 감만 잡은 채'로 시험장에 가곤 합니다.

물론 능동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가장 손쉬운 난이도의 문제들부터 시작해 점점 높은 단계의 문제로 진행하다 보면 유형이나 주제에 대한 접근법을 차츰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첨삭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들 아실테니 굳이 또 말하지 않겠습니다.

특히, 내신 때문에 시험기간 2~3주를 건너뛰게 될 경우 생기는 공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해야 합니다.

고등학생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내신에 집중 투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저도 이해하지만 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서 있다면 이 비율도 어느 정도 조정해야 합니다.

대학을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높은 내신을 바탕으로 '학업우수자 전형'에 지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정직한 방법은 수능입니다.

그리고 수시를 노릴 생각이 있다면 내신보다는 논술입니다.

믿기 힘든 사실일 수도 있지만 내신이 나빠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경우보다 수능 최저등급이 되지 못해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대략 일반고 내신 3등급 선까지만 하더라도 논술시험을 보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인(in)서울만 잡고 노린다면 이보다 1등급 정도 낮춰도 상관은 없겠지요. 이 조언은,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에 대한 태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현실에 대한 판단은 냉철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뿐입니다.

⊙ 교재 요청에 대하여

2011년판 초급 교재나 작년에 이 코너에 연재되었던 문제풀이가 묶여 있는 <생글논술 첨삭노트 2010>을 요청하시려는 분들은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기숙사에서 지내기 때문에 인쇄가 어려운 경우나, 보충수업을 위해 선생님들께서 대량으로 요청하신 경우를 고려하여 제본해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논술 전반에 대한 문의도 계속 받고 있으니 주저없이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답장은 꼭 갑니다.

이용준 S · 논술 선임 연구원 sgsgnot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