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의 개혁 대상이 돼야 마땅할 김종필 씨가 개혁 선봉에 서야 할 국무총리가 돼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개혁을 운운할 수 있느냐."
"어떻게 정부의 국무총리를 '씨'라고 부를 수 있느냐. 용어 선택에 주의해 달라."
1998년 8월26일 국정의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국회 본회의장에서 난데없이 호칭 문제로 여야 의원 간 공방이 이어졌다.
당시는 호남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하는 국민회의와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민련이 연합해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김대중 대통령-김종필 국무총리 체제의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시비는 야당인 한나라당 S의원이 먼저 걸었다. 그는 김 총리를 시종일관 '김종필 씨'라고 부르면서 공세를 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국의 국무총리를 대놓고 '~씨'라 칭함으로써 자신보다 낮거나 대등한 위치로 격하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당석에서 곧바로 "그만해" "당장 나가"라는 고함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본회의장은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우리말에서 '씨(氏)'의 용법은 의외로 까다롭다.
사전적으로만 봐도 이 말은 명사로도, 대명사로도 쓰이는가 하면 의존명사나 접미사로도 쓰이는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명사나 대명사로의 쓰임새는 비교적 제한적이므로 젖혀 놓는다 쳐도, 의존명사나 접미사로 쓰이는 경우는 일상적으로도 매우 많다.
하지만 두 쓰임새를 구별하는 게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에 용법을 정확히 알아두지 않으면 헷갈리기 쉽다.
우선 '씨'는 (성년이 된 사람의 성명이나 성, 이름 아래에 쓰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해 부르는 말이다.
"홍길동 씨" 또는 "홍 씨" "길동 씨" 같은 게 그런 경우이다. 이때는 의존명사이므로 언제나 '씨'를 띄어 쓴다.
그런데 이 말은 실제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의 관계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존대와 하대 여부가 결정된다.
가령 공사장에서 지휘하는 사람이 인부에게 "어이 박 씨"라고 하면 존대는 거의 없고 하대하듯 부르는 어감을 갖는다.
하지만 직장 같은 데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홍길동 씨"라고 부르면 제법 대우해서,의례적으로 부르는 말이 된다.
또 남녀 간에 사랑하는 사람끼리 "길동 씨" "길순 씨"라고 부르면 점잖게 격식을 갖추면서도 존대의 의미가 담긴다.
공통점은 나이로든 지위로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씨'는 대체로 대등한 관계의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만약에 어린 사람이 윗사람에게 "김 씨, 이 씨" 한다면 "그놈 참 예의라곤 모르네"라는 소리를 듣는다.
'씨'의 또 다른 용법은 접미사로 쓰이는 경우이다.
이때는 (인명에서 성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그 성씨 자체' '그 성씨의 가문이나 문중'의 뜻을 더하는 기능을 한다. '김씨 문중/ 혜경궁 홍씨/민씨 일파' 같은 게 그런 것이다.
"그의 성은 남씨입니다. " "예부터 최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고집이 세다는 말이 있다. "
"이 마을에는 이씨가 제일 많이 살고 있어." 이런 경우는 모두 호칭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어떤 성씨 자체나 그 성씨의 가문을 뜻하는 것이다.
이때는 '씨'가 접미사로 쓰인 것이므로 항상 윗말에 붙여 써야 한다.
접미사로서의 '씨'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말에 '가(哥)'가 있다.
이 말 역시 성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 '그 성씨 자체' 또는 '그 성씨를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하지만 쓰임새가 다르다.
'씨'에는 존칭의 의미가 담겨 있는 반면 '가'는 예사롭게 이르거나 낮춰 부르는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말할 때 "저는 김가입니다"라고 하는 게 옳은 용법이고 "저는 김씨입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이분은 박가입니다"라고 하면 실례이고 "이분은 박씨입니다"라고 해야 한다.
"야 이놈 최가야"라는 말에는 친근감과 함께 낮춰 부르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가(哥)'와 한자가 다른 접미사 '가(家)'도 구별해야 한다.
'명문가/세도가/케네디가의 후손' 같은 데 쓰인 '가'가 그 용법인데,이는 '가문'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현대가의 사람들' '서애 유성룡가의 교육방법' 식으로 쓰인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어떻게 정부의 국무총리를 '씨'라고 부를 수 있느냐. 용어 선택에 주의해 달라."
1998년 8월26일 국정의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국회 본회의장에서 난데없이 호칭 문제로 여야 의원 간 공방이 이어졌다.
당시는 호남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하는 국민회의와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민련이 연합해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김대중 대통령-김종필 국무총리 체제의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시비는 야당인 한나라당 S의원이 먼저 걸었다. 그는 김 총리를 시종일관 '김종필 씨'라고 부르면서 공세를 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국의 국무총리를 대놓고 '~씨'라 칭함으로써 자신보다 낮거나 대등한 위치로 격하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당석에서 곧바로 "그만해" "당장 나가"라는 고함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본회의장은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우리말에서 '씨(氏)'의 용법은 의외로 까다롭다.
사전적으로만 봐도 이 말은 명사로도, 대명사로도 쓰이는가 하면 의존명사나 접미사로도 쓰이는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명사나 대명사로의 쓰임새는 비교적 제한적이므로 젖혀 놓는다 쳐도, 의존명사나 접미사로 쓰이는 경우는 일상적으로도 매우 많다.
하지만 두 쓰임새를 구별하는 게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에 용법을 정확히 알아두지 않으면 헷갈리기 쉽다.
우선 '씨'는 (성년이 된 사람의 성명이나 성, 이름 아래에 쓰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해 부르는 말이다.
"홍길동 씨" 또는 "홍 씨" "길동 씨" 같은 게 그런 경우이다. 이때는 의존명사이므로 언제나 '씨'를 띄어 쓴다.
그런데 이 말은 실제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의 관계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존대와 하대 여부가 결정된다.
가령 공사장에서 지휘하는 사람이 인부에게 "어이 박 씨"라고 하면 존대는 거의 없고 하대하듯 부르는 어감을 갖는다.
하지만 직장 같은 데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홍길동 씨"라고 부르면 제법 대우해서,의례적으로 부르는 말이 된다.
또 남녀 간에 사랑하는 사람끼리 "길동 씨" "길순 씨"라고 부르면 점잖게 격식을 갖추면서도 존대의 의미가 담긴다.
공통점은 나이로든 지위로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씨'는 대체로 대등한 관계의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만약에 어린 사람이 윗사람에게 "김 씨, 이 씨" 한다면 "그놈 참 예의라곤 모르네"라는 소리를 듣는다.
'씨'의 또 다른 용법은 접미사로 쓰이는 경우이다.
이때는 (인명에서 성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그 성씨 자체' '그 성씨의 가문이나 문중'의 뜻을 더하는 기능을 한다. '김씨 문중/ 혜경궁 홍씨/민씨 일파' 같은 게 그런 것이다.
"그의 성은 남씨입니다. " "예부터 최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고집이 세다는 말이 있다. "
"이 마을에는 이씨가 제일 많이 살고 있어." 이런 경우는 모두 호칭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어떤 성씨 자체나 그 성씨의 가문을 뜻하는 것이다.
이때는 '씨'가 접미사로 쓰인 것이므로 항상 윗말에 붙여 써야 한다.
접미사로서의 '씨'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말에 '가(哥)'가 있다.
이 말 역시 성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 '그 성씨 자체' 또는 '그 성씨를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하지만 쓰임새가 다르다.
'씨'에는 존칭의 의미가 담겨 있는 반면 '가'는 예사롭게 이르거나 낮춰 부르는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말할 때 "저는 김가입니다"라고 하는 게 옳은 용법이고 "저는 김씨입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이분은 박가입니다"라고 하면 실례이고 "이분은 박씨입니다"라고 해야 한다.
"야 이놈 최가야"라는 말에는 친근감과 함께 낮춰 부르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가(哥)'와 한자가 다른 접미사 '가(家)'도 구별해야 한다.
'명문가/세도가/케네디가의 후손' 같은 데 쓰인 '가'가 그 용법인데,이는 '가문'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현대가의 사람들' '서애 유성룡가의 교육방법' 식으로 쓰인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