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이 없었다면 알파벳도 없었다

페니키아인, 3000년 전 지중해 지배

교역 위해 문자 발명… 아프리카 일주

[경제사 뒤집어 읽기] (3) 고대 최고의 상업 민족 페니키아
'솔로몬 왕은 에돔 땅의 홍해 바닷가,엘랏 근방에 있는 에시욘게벨에다 상선대를 창설하였다.

히람은 자기 수하에 있던 노련한 선원들을 보내어 그 상선대에서 솔로몬의 선원들과 함께 일하게 하였다.

그 상선들은 오빌 지방으로 가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실어 와 솔로몬에게 바쳤다. '

(구약 열왕기 9;26~28 · 공동번역개정판)



구약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 왕의 이야기다.

히람은 페니키아의 번성하는 도시인 티루스의 왕이며,에시욘게벨은 홍해 북동쪽 끝단의 아카바(Aqaba) 만에 있는 항구 도시이고,오빌(Ophir)은 인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내용을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기원전 1000년께,페니키아 선원들은 솔로몬 왕을 위해 원거리 교역을 맡아서 해 주고 있었으며,인도에 가서 금 420달란트를 수송해 솔로몬 왕에게 바쳤다.

금 420달란트를 현재의 단위로 환산하면 13t이니,요즘 시세로는 6000억원이 넘는다.

이런 기록에서 보듯 페니키아인들은 고대사에 등장하는 강력한 해상 상업 민족이다.

기원전 1000년 즈음부터 거의 1000년 이상 페니키아는 지중해 세계와 그 주변 지역의 무역을 지배하다시피했다.

페니키아인들의 기원은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원래 페르시아 만 연안에 살다 기원전 2200년께 레바논 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페니키아라는 말의 원래 뜻도 명확하지 않아 자주색 염료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고 향신료 종류나 대추야자나무 열매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대체로 기원전 1200년께에 이르면 이들은 유능한 선원이자 상인으로서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들이 자리잡은 레바논 지역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중간 위치로 전략적으로 대단히 유리한 지점인 데다 목재가 풍부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레바논 삼나무는 당시 목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지중해 지역에서 탐내던 귀중한 자원이었다.

페니키아인들은 목재와 자주색 고급 염료 같은 귀중한 상품들을 수출하며 점차 상업 네트워크를 확대해 갔다. 이들은 비블로스,티루스,시돈 같은 상업 도시들을 세우고 광대한 지역을 오가며 상업 활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후대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한 가지 발명을 했다.

대규모 국제교역을 하는 데에는 당연히 문자 기록이 필요하다.

이들은 이집트 문자를 변형시켜 사용했는데,이것이 나중에 고대 그리스로 들어갔다가 결국 오늘날 알파벳으로 발전했다.

기원전 1000년 이후 지중해는 거의 '페니키아의 호수'가 됐다.

페니키아인들은 역사상 가장 과감한 해상 활동을 벌인 민족이다.

그들은 심지어 야간 항해라든지 원양항해를 처음 시도했다.

이렇게 교역 활동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모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 대규모 식민지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가장 번성했던 곳은 오늘날 튀니지에 위치한 카르타고였다.

카르타고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스페인의 광대한 지역과 아프리카 서해안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후일 카르타고는 식민 모국인 페니키아보다 훨씬 더 강대해져 서부 지중해 전역을 통제하는 강국으로 성장했으나,세계제국으로 팽창해 가던 로마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일대 결전을 벌였다가 패배했다.

페니키아의 활동 영역은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 대서양까지 팽창해갔다. 기원전 6세기 말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인 지브롤터 해협을 장악한 이후 페니키아의 배들은 대서양과 북해 연안에서 유입되는 원재료들을 4세기 동안이나 실질적으로 독점했다.

지브롤터 해협 근처에 이들이 건설한 가디르(Gadir)라는 항구는 나중에 카디스(Cadiz)로 발전했는데,이 도시는 스페인에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한 가장 오래된 도시다.

지중해와 대서양 및 북해 연안 일부가 모두 페니키아인들의 상업권에 속했으니,당시 그들에게 알려진 세계 전역을 포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페니키아인들의 위업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아프리카 일주 항해다.

기원전 600년께 이집트의 파라오 네코는 페니키아인들에게 홍해 바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올 때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 해협)을 지나오라고 시켰다.

과연 그들은 떠난 지 3년째 되던 해에 아프리카를 시계 방향으로 일주하고 이집트로 귀환했다.

아프리카 대륙이 물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실증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페니키아 선단은 실제로 아프리카를 도는 항해를 한 것일까?

이 사실을 기록한 헤로도토스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배를 타고 리비아(아프리카를 의미한다)를 돌 때 태양이 그들의 오른쪽에 있었다고 주장하는데,다른 사람들은 믿을지 몰라도 나는 믿지 않는다. "

배가 남반구를 항해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북반구에만 살던 헤로도토스로서는 이 같은 일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그가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 바로 그 사실이 페니키아인들의 아프리카 주항을 입증하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근대 초에 포르투갈인들이 대양 항해를 개척해 세계사를 바꾸기 2000년 전에 일어난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