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와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 등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 관행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개선책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과의 거래에서 일방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요구하는 관행이 적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지난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관계를 정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원자재값이 15% 이상 오르면 하청 중소기업이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통해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대기업이 하청업체의 기술을 빼앗아 소송이 제기됐을 때 소송을 제기한 하청업체가 아니라 대기업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토록 한 것 등이 골자다.

정치권에서는 더 나아가 정부의 이런 안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보호에 미흡하다며 좀 더 '강도 높은' 하도급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 핵심은 바로 중소기업의 유망기술을 가로채는 대기업에 대해 피해액의 3배 이상을 배상토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다.

이 제도가 포함된 하도급법 개정안은 여야 합의로 지난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문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대해서는 대기업은 물론 경제학자들도 반대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데 있다.

시장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게 바로 그 이유다.

얼마 전 동반성장위원회가 도입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익공유제와 마찬가지로 급진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측, "현행 손해배상제로는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 어렵다"

이 제도에 찬성하는 측은 현재의 손해배상 정도로는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착취를 막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배상액이 미미하기 때문에 유사한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대기업처럼 구조적 강자에 의한 불법행위를 뿌리 뽑는 효율적인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변한다.

실제 악의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를 억제하고 예방하는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형벌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익공유제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는 찬성하는 사람이 있다.

이익공유제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대기업이 단순히 이익이 생겼다는 이유로 협력 중소기업과 이를 나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은 귀책 사유가 일단 불법행위를 저지른 대기업 측에 있는 만큼 그 불법행위가 미치는 사회적인 해악이 심각할 경우 다소 무거운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다 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요구되는 분야가 있는데 제조물 책임분야, 기업에 의한 환경침해, 노동법 분야, 증권거래 분야, 인권침해 소송 등이 대표적인 경우라며 제한적인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 반대 측, "반시장적일 뿐 아니라 손해배상을 분풀이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반대하는 측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을 증오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도 위험한 발상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하도급법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속 도입을 반대해 온 것이나 정치권 내부에서도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며 반대 목소리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대기업이 반사회적이고 악의적인 방법으로 중소기업에 피해를 줬다면 다른 행정적인 제재 등을 가하면 되는 것이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분풀이'식으로 응징할 일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일반적인 법 원칙인 과잉금지 내지는 비례원칙에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기업에 손해를 입힌 만큼 배상하는 것이 이 원칙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한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그 이상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입할 경우 현행 법체계와 충돌한다는 점도 문제다.

민법 393조는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해 '통상의 손해를 그 한도로 한다'고 규정,실손해배상 원칙을 택하고 있다.

따라서 실손해의 몇 배를 보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면 민법부터 우선 개정해야 한다.

이 제도는 미국과 영국 등 영미법 체계 국가 일부에서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 체계를 택한 국가에서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도입에는 걸림돌이다.

미국에서도 위헌 논란이 없지 않고 대규모 가격 담합 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점도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다.

⊙ 제도 자체의 도입 여부보다는 허용 범위를 정하는 게 더 중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제도 자체의 도입 여부보다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무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라고 하더라도 무차별적으로 도입할 경우 반대론자들이 제기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많다.

이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 여러 차례 위헌 논란이 있었던 것도 바로 이를 적용하기 곤란한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에 의한 환경침해, 노동법 분야, 인권 분야 등 해당 법에서 적용 가능 분야를 열거해 여기에 국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손해배상에 이르게 된 대기업 등의 행위에 고의성 여부와 공익에 미치는 영향 등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성도 있다.

또한 하도급법 자체뿐 아니라 민법 등 관련법의 개정 또한 동시에 추진해 법률 체계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함은 물론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용어설명

◆과잉금지 원칙◆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함에 있어서 국가 작용의 한계를 정한 것이다.

목적의 정당성,수단의 적합성,침해의 최소성,법익의 균형성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헌법 제37조2항은 과잉금지의 원칙을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

☞한국경제신문 3월11일자 A1면

앞으로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기술을 탈취할 경우 피해액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을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다.

또 외부 경영환경 변화로 인해 하도급 대금을 삭감할 때도 원사업자인 대기업이 입증을 해야 한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0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하도급거래 공정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자료를 탈취해 유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punitive damage) 도입이다.

원청업체가 하도급 업체인 중소기업의 기술을 유용한 경우 손해의 3배까지 배상토록 했다.

대기업의 법 위반 유인을 사전적으로 억제해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법률상 과잉금지 원칙 및 손해배상책임 법리에 위배된다는 지적과 함께 거액의 배상금 지급 기대에 따른 소송 남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개정안은 또 하도급 대금을 삭감하면 '갑'인 원사업자가 감액 이유를 입증하도록 했다.

김형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