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10주기 추모委 이홍구 위원장
이홍구 고(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10주기 추모위원장(전 국무총리 · 77)은 "비록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정 명예회장이 남긴 '지혜를 모아 방침을 세우고 하면 된다'는 정신은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정 명예회장 10주기 추모위원장을 선뜻 맡은 것도 이런 그의 삶의 철학과 기업가정신을 되살려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추모위원장을 맡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 명예회장은 기업인은 물론이고 학계 문화계 체육계 등 다방면에 걸쳐 교류 폭이 무척 넓었습니다.
생전에 공적으로,그리고 사적으로 가끔 뵙고 얘기를 나눴지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현대중공업 대주주) 등과도 예전부터 인연이 있습니다.
10주기 추모행사를 갖는다는 얘기가 나오기에 흔쾌히 추모위원장을 맡을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보다 인연이 깊은 분들도 많지만 다들 연로하셔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요. "
▼정 명예회장과의 추억을 들려주시지요.
"여러모로 남달랐던 분이었습니다.
어려울 때라 소학교 외에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얼마나 박식한지….
책을 많이 읽은 느낌이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재주도 남달랐어요.
경영학뿐 아니라 저처럼 정치학 · 사회학 교수들,돌아가신 박완서 소설가 등 문인들과도 자주 만나서 얘기를 하셨지요.
다양한 사람들을 점심이나 저녁 자리에 초대해 얘기하는 걸 즐겼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종로 뒤편 한정식집 같은 곳에서 밥을 사주시면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를 물으셨어요. "
▼기업인 정주영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아무리 문제가 복잡해도 그것을 해석하고 단순화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우리 같은 교수들은 도저히 갖기 힘든,참으로 대단한 장점이에요.
또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죠.
그래서 여러 의견을 듣고 길(해결책)을 찾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번 해보는거다'라며 밀어붙였죠.그 분의 일생을 관통한 생활철학이랄까,경영철학이 바로 이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었고 동시에 생각은 언제나 열려있었습니다.
대기업 총수답지 않은 소박하고 검소한 몸가짐도 그 분의 장점입니다.
정 명예회장께선 그렇게 맨손으로 거대한 현대그룹을 일궜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주역이 됐습니다. "
▼지금 기업인들은 정 명예회장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크게 보는 시야와 유연한 사고,거침없는 도전정신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지요.
정 명예회장께선 거대 기업의 최고경영자였지만 언제나 열려 있는 분이었습니다.
의견이 달라도 내치지 않고 얘기를 끝까지 들었습니다.
다방면에 걸쳐 관심도 많았지요.
추진력이야 익히 알려진 대로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 한장 갖고 상대방을 설득해 조선사업을 시작한 분이 잖습니까(정 명예회장은 1972년 울산 미포만에 조선소를 세울 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와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을 들고 가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을 설득했고 결국 차관을 얻어냈다).
정 명예회장의 이런 기업가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또 그 분은 언제나 근로자들과 고락을 같이했고 사회가 발전해야 기업도 발전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업인이지만 통일이나 사회공동체 구현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요.
민족이 갈라져 사는 것은 부자연스런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내비쳤습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면 국가경제적으로나 기업 경영 관점에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셨지요. "
▼정 명예회장께선 현대차그룹 현대가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을 어떻게 보실까요.
"정 명예회장 당대의 성과를 훌쩍 넘어섰을 만큼 잘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일류 자동차회사로 키웠고 일관제철소도 완공했지요.
현대중공업그룹도 세계적인 조선 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선대의 경영철학을 흐트러짐 없이 발전시켜 나간 결과로 봅니다.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나는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곧잘 얘기했습니다.
근로자들 속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경영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지요.
현대가 경영자들은 이 말씀을 지키며 회사를 키우면서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학계에서 정 명예회장을 추억하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주 밥을 사시면서 대화자리를 가졌지요. 농담입니다(웃음).
얼마 전 퇴임한 윤후정 이화여대 재단이사장한테 들은 얘긴데,'학교 건물을 지어야겠지만 예산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있는 것만 갖고 오라'고 하셨대요.
나머지는 알아서 하시겠다고.
이처럼 교육 등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공헌을 많이 하셨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헌이다보니 모두가 존경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도 마찬가지고요.
기업들의 사회공헌이 계속 늘어나는데 이런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
▼어느 때 정 명예회장이 가장 많이 생각나시나요.
"정 명예회장하면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만 많이 거론하는데,좀 전에 얘기했듯 그 분은 대단한 대화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화가 없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기업이건 정치건 너무 대화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더욱 꼬이고 갈등은 커질 수밖에요.
정 명예회장은 먼저 '대화를 통해 지혜를 모았고' 다음으로 '방침을 세운 뒤 해보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어려울 때 그 분과 같은 리더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변하고 달라졌지만 정 명예회장 같은 리더십이 아쉽습니다. "
▼10주기 추모행사가 다소 조촐해 보입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관통하는 개발연대에 한국사회 및 경제 발전의 주춧돌을 놓은 그 분의 삶은 반드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영인으로서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경제상황도 어렵고 구제역이다 뭐다해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한데 크게 행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여건이 좋지 않고 유족들의 의견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그래서 조촐하게,그렇지만 차분히 그 분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행사들로 기획했습니다.
2015년이 탄생 100주년인데,그때 전반적인 상황이 나아지면 좀 더 크게 행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추모행사를 준비하면서 생각하신 게 있다면요.
"공동체 의식의 약화는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핵가족화와 디지털화 등으로 인한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개개인의 네트워킹 능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너무나 많은 디지털 시대이지만 대화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기술보다는 인간이 앞서가야 사회가 발전합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기업인은 기업인대로,그리고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교류의 폭이,대화의 장이 예전보다 넓지가 않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인터넷이 아니라 사람을 만날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공통체의 핵심은 결국 사람 관계입니다.
'인간적인 소통을 어떻게 강화하느냐'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
▼요즘에도 무척 바쁘게 지내시고 있는 듯합니다.
"힘이 닿는 대로 봉사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국무총리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사회가 저를 필요하면 힘을 보태야지요.
일종의 '애프터 서비스'이고 책무이지요.
2012년 열리는 제주WCC(세계자연보전총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행사 개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오후엔 서울국제포럼 사무국에 들러 일을 챙기고 있습니다. "
김수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sookim@hankyung.com
이홍구 고(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10주기 추모위원장(전 국무총리 · 77)은 "비록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정 명예회장이 남긴 '지혜를 모아 방침을 세우고 하면 된다'는 정신은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정 명예회장 10주기 추모위원장을 선뜻 맡은 것도 이런 그의 삶의 철학과 기업가정신을 되살려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추모위원장을 맡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 명예회장은 기업인은 물론이고 학계 문화계 체육계 등 다방면에 걸쳐 교류 폭이 무척 넓었습니다.
생전에 공적으로,그리고 사적으로 가끔 뵙고 얘기를 나눴지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현대중공업 대주주) 등과도 예전부터 인연이 있습니다.
10주기 추모행사를 갖는다는 얘기가 나오기에 흔쾌히 추모위원장을 맡을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보다 인연이 깊은 분들도 많지만 다들 연로하셔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요. "
▼정 명예회장과의 추억을 들려주시지요.
"여러모로 남달랐던 분이었습니다.
어려울 때라 소학교 외에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얼마나 박식한지….
책을 많이 읽은 느낌이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재주도 남달랐어요.
경영학뿐 아니라 저처럼 정치학 · 사회학 교수들,돌아가신 박완서 소설가 등 문인들과도 자주 만나서 얘기를 하셨지요.
다양한 사람들을 점심이나 저녁 자리에 초대해 얘기하는 걸 즐겼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종로 뒤편 한정식집 같은 곳에서 밥을 사주시면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를 물으셨어요. "
▼기업인 정주영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아무리 문제가 복잡해도 그것을 해석하고 단순화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우리 같은 교수들은 도저히 갖기 힘든,참으로 대단한 장점이에요.
또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죠.
그래서 여러 의견을 듣고 길(해결책)을 찾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번 해보는거다'라며 밀어붙였죠.그 분의 일생을 관통한 생활철학이랄까,경영철학이 바로 이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었고 동시에 생각은 언제나 열려있었습니다.
대기업 총수답지 않은 소박하고 검소한 몸가짐도 그 분의 장점입니다.
정 명예회장께선 그렇게 맨손으로 거대한 현대그룹을 일궜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주역이 됐습니다. "
▼지금 기업인들은 정 명예회장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크게 보는 시야와 유연한 사고,거침없는 도전정신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지요.
정 명예회장께선 거대 기업의 최고경영자였지만 언제나 열려 있는 분이었습니다.
의견이 달라도 내치지 않고 얘기를 끝까지 들었습니다.
다방면에 걸쳐 관심도 많았지요.
추진력이야 익히 알려진 대로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 한장 갖고 상대방을 설득해 조선사업을 시작한 분이 잖습니까(정 명예회장은 1972년 울산 미포만에 조선소를 세울 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와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을 들고 가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을 설득했고 결국 차관을 얻어냈다).
정 명예회장의 이런 기업가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또 그 분은 언제나 근로자들과 고락을 같이했고 사회가 발전해야 기업도 발전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업인이지만 통일이나 사회공동체 구현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요.
민족이 갈라져 사는 것은 부자연스런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내비쳤습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면 국가경제적으로나 기업 경영 관점에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셨지요. "
▼정 명예회장께선 현대차그룹 현대가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을 어떻게 보실까요.
"정 명예회장 당대의 성과를 훌쩍 넘어섰을 만큼 잘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일류 자동차회사로 키웠고 일관제철소도 완공했지요.
현대중공업그룹도 세계적인 조선 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선대의 경영철학을 흐트러짐 없이 발전시켜 나간 결과로 봅니다.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나는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곧잘 얘기했습니다.
근로자들 속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경영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지요.
현대가 경영자들은 이 말씀을 지키며 회사를 키우면서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학계에서 정 명예회장을 추억하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주 밥을 사시면서 대화자리를 가졌지요. 농담입니다(웃음).
얼마 전 퇴임한 윤후정 이화여대 재단이사장한테 들은 얘긴데,'학교 건물을 지어야겠지만 예산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있는 것만 갖고 오라'고 하셨대요.
나머지는 알아서 하시겠다고.
이처럼 교육 등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공헌을 많이 하셨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헌이다보니 모두가 존경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도 마찬가지고요.
기업들의 사회공헌이 계속 늘어나는데 이런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
▼어느 때 정 명예회장이 가장 많이 생각나시나요.
"정 명예회장하면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만 많이 거론하는데,좀 전에 얘기했듯 그 분은 대단한 대화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화가 없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기업이건 정치건 너무 대화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더욱 꼬이고 갈등은 커질 수밖에요.
정 명예회장은 먼저 '대화를 통해 지혜를 모았고' 다음으로 '방침을 세운 뒤 해보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어려울 때 그 분과 같은 리더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변하고 달라졌지만 정 명예회장 같은 리더십이 아쉽습니다. "
▼10주기 추모행사가 다소 조촐해 보입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관통하는 개발연대에 한국사회 및 경제 발전의 주춧돌을 놓은 그 분의 삶은 반드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영인으로서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경제상황도 어렵고 구제역이다 뭐다해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한데 크게 행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여건이 좋지 않고 유족들의 의견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그래서 조촐하게,그렇지만 차분히 그 분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행사들로 기획했습니다.
2015년이 탄생 100주년인데,그때 전반적인 상황이 나아지면 좀 더 크게 행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추모행사를 준비하면서 생각하신 게 있다면요.
"공동체 의식의 약화는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핵가족화와 디지털화 등으로 인한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개개인의 네트워킹 능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너무나 많은 디지털 시대이지만 대화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기술보다는 인간이 앞서가야 사회가 발전합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기업인은 기업인대로,그리고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교류의 폭이,대화의 장이 예전보다 넓지가 않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인터넷이 아니라 사람을 만날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공통체의 핵심은 결국 사람 관계입니다.
'인간적인 소통을 어떻게 강화하느냐'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
▼요즘에도 무척 바쁘게 지내시고 있는 듯합니다.
"힘이 닿는 대로 봉사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국무총리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사회가 저를 필요하면 힘을 보태야지요.
일종의 '애프터 서비스'이고 책무이지요.
2012년 열리는 제주WCC(세계자연보전총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행사 개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오후엔 서울국제포럼 사무국에 들러 일을 챙기고 있습니다. "
김수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