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을 다니면 창의성이 사라지나요?

[생글 논술 첨삭노트] (51) "정형화된 논술답안이란 있을 수 없다"
질문에 몇 차례 답변을 드렸더니 질문이 점점 늘고 있네요.

유용한 질문들은 이 지면을 통해 계속 답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논술에 있어서 아직 혼란스러운 학생이 많이 있는 것 같으니, 어느 정도 확실하게 개념을 잡을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질문] 저는 현재 고3이고요,논술은 작년 여름부터 1주일에 한번씩 학원에 가서 글 쓰고 강의 듣는 식으로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제 고민은요,주위에서 학원에 다니면 한마디로 '정형화'돼서 오히려 악(惡)이라는 소리를 많이들어요.

학원 다니면서 창의성을 잃지 않으려면 어떤 식으로 학습해야 하고, 글 쓸 때 어느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아, 그리고 좋은 첨삭의 기준을 알려주세요!

혹시 혼자 한다면 첨삭 같은 것을 도움받을 수 있는 서비스 아신다면 알려주세요!

정말 선생님의 글 덕분에 항상 도움을 많이 받아요. 아직 논술이 미숙한 저 같은 학생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답] 어디서부터 시작된 루머인지 모르겠지만, 학원에서 배우는 논술은 '틀이 정해져있다'라든지, '답이 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위 학생도 그런 말을 들었나 봅니다.

신문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번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네요. '학원 논술'과 '학원 밖 논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논술은 도대체 어디서 배워야 할까요?

혼자서 기출문제 풀면서 익힌 논술과 학원에서 '붕어빵 찍듯' 배운 논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예전에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도 방과후 수업으로 논술만 전담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때 가르치던 방식과 지금 가르치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전 항상 문단에서 핵심 의미를 추출해내고, 이를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일정한 문제유형에 대해 정형화된 구조를 짜고, 다양한 문제를 풀면서 배경지식을 넓히는 방식을 선호했지요. 이건 학교식일까요? 학원식일까요?

학원은 '붕어빵 찍듯' 가르친다는 소리는 정말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의 5년 정도의 기출문제 중에서 대략 2~3개만 풀어본다고 하더라도, 구조나 문장을 정형화시킨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학생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최근의 논술은 소위 '답 맞히기 게임'입니다.

제시문의 내용을 얼마나 독해하고, 이것을 조건에 맞게 적용시키느냐의 게임입니다.

더군다나 붕어빵 찍듯 나올 수 있는 그 흔한 문제나 제시문이 없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대학 교수가 '학원에서 배운 애들 답안이 다 똑같더라'라고 하면서 내세운 표현이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었지요.

안타깝게도 그 단어는 학원에서 가르쳐준 단어가 아니라 고등학교 1학년 도덕책에 나오는 단어였지요.

교과서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하면서 나온 개념이 바로 그것이었고, 학생들은 그 단어를 다시 재활용한 것이겠지요.

그게 우리가 흔히 공부하는 방식일 테니 말이지요.

만약 논술을 혼자서 해야 한다면, 혼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디서 부르디외(Pierre Bourdieu)나 니체(Friedrich Nietzsche)를 들어볼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상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는 것이니 시험문제에도 안 나오면 좋으련만 시험문제에는 꽤 자주 나오는 군요.

아마도 집에서 혼자 그 책들을 읽어보며 공부해야 올바른 논술공부인가 봅니다.

어디에서 배우든, 정형화되는 것은 아마도 구조뿐일 것입니다.

사람이란 습관의 동물이라 하다 보면 자꾸 쓰는 문장만 쓰고, 눈에 익은 표현만 하게 되어있지요.

작년에 전국적으로 치러졌던 한 논술대회 채점을 위해 2000명이 넘는 응시생 전원의 답안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8

0% 넘는 학생들이 '제시문 (가)는 ~라고 말하고 있다'라는 형태를 쓰더군요.

모두 똑같은 학원에서 배워서는 아니겠지요.

그만큼 이미 논술시장에 보편화된 표현이 있는 것뿐입니다.

이걸 가지고 채점자인 저는 '뭐야, 모두 학원에서 배웠잖아.

이런 나쁜 답안! 모두 탈락!'이라고 했을까요? 아니죠. 중요한 것은 내용일 테니, 그 안에 있는 주어와 동사를 살펴보았겠지요.

다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창의적인 형태를 필요로 한다면, 이런 뻔한 구조를 바꿔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휘나 구조를 다양하고 정확하게 활용하는 것은 분명 논술에서 필요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내용을 창의적으로 꾸미는 일은 창의적인 내용을 요구하는 문제조건에서만 해주세요. 공통점을 찾거나, 비교를 하거나, A를 가지고 B를 분석하거나 비판하라고 하는데 창의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거나, A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서술하라고 할 때만 창의적으로 쓰면 됩니다. 그 외엔 그냥 정확한 답만 쓰면 됩니다.

논술은 창의적으로 써야 한다는 말은 10년 전 논술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지원자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걸러내기 위해서는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가 가장 효율적입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서강대 수시 2-1 논술에서 창의성이 뛰어난 나머지 순수한 논술 실력으로 합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 기회마저 사라졌네요.

이야기를 바꿔서 첨삭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좋은 첨삭이란 매번 똑같이 틀리지 않도록 확실히 지적해주는 첨삭이겠지요.

단계별로 실력에 맞게 첨삭의 수위나 범위가 달라질 것입니다.

위에도 말씀드렸지만, 최근의 논술은 답맞히기 게임 형태이기 때문에 이미 제시문 독해에서 승부가 갈리지요.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첨삭 자체보다 친절하고 자세한 해설과 이에 해당하는 다양한 예시 답안들이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문장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 친절한 교정 첨삭이 필요하겠지만요.

개개인마다 맞는 첨삭방식이 따로 있을 거예요. 첨삭의 방식 또한 다양해서, 대면 첨삭이나 단체첨삭, 서면첨삭 등 종류가 많으니까요.

혼자서 공부하면서 첨삭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많으면 좋겠지만, 현재는 EBS에서 진행하는 첨삭서비스나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꿀맛닷컴의 첨삭서비스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 학교에서 논술을 담당하는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보아도 나쁘지 않겠지요.

가장 가깝게 계신 분이고, 좀 더 여유있게 대면할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

실력이 비슷한 친구들과 논술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이럴 경우 확실히 지침이 될 수 있는 해설서와 예시 답안이 있다면 더 좋고요

(제가 만드는 교재들이 바로 그렇게 구성되어있네요!).

서로의 글을 지적해주면서, 더 나은 형태의 글을 써보는 훈련은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자극이 되니, 학습동기도 충분할 것이고요. 혼자 공부하더라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좀 더 많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공통점 찾기의 예시문제

질문에 대한 답이 길어지다 보니 지난주(283호)에 내드린 예시문제(2006학년 중앙대 수시1학기 기출문제)에 대한 해설이 짧아졌네요.

두 제시문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확실히 공통된 주어부터 찾아야겠지요.

(가)와 (나)에서 소재로 삼은 것은 각각 역사교과서에 실린 역사지식과 무지개 7색설이었습니다.

분명 공통점이라고 했으니 이 둘을 묶을 수 있는 개념어가 필요하겠지요.

답안지에 설마 '역사지식과 무지개 7색설은 어떠하다'라고 쓸 수는 없으니까요.

이 소재를 묶을 수 있는 상위개념은 무엇일까요? 이런 공통점 찾기 문제는 어휘를 늘리기에도 꽤 유익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술어에 대한 부분을 보자면, (가)의 경우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역사교과서에 실려있는 지식을 의심하는 것이지요.

(나)는 무지개 7색설이 알고 보면 우리 나라와 몇몇 나라에서만 통용된다고 합니다.

뉴턴이 그저 당시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아 임의대로 정한 것이라고 하죠.

그렇다면 무언가 '올바르지 않다''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와 같은 느낌의 술어가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정확하게 표현이 되어야겠지요. 이쯤 되면 대략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떠돌아다녀야 합니다.

공통점은 간결하지만, 확실하게 모든 뜻을 담아야 하거든요.

우리에게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게 정확하진 않다는 내용을 담기 위해서 필요한 단어, 통념(通念) 정도가 어떨까요? 통념이란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개념이죠.

상식이란 단어보다는 훨씬 객관성이 떨어지는 표현이죠. 틀릴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어있으니 말이죠.

통념이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면 그냥 '널리 알려져 있는 지식'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술어는 당연히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와 같은 설명 형태(나)나 '재인식해야 한다'와 같은 주장 형태(가)가 좋겠네요.

어느 것이 더 나을까요?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믿지 못하는 분들이 계셔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받은 메일에 대해 답장을 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더불어 연재 중인 생글첨삭노트의 일부분과 각종 기초문제가 묶여 있는 <2011년형 초급교재>를 조만간 완성할 예정입니다.

완성된 교재에 대해서는 배부할 계획도 갖고 있으니 문의해주시면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용준 S · 논술 선임 연구원 sgsgnot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