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생글은 이번 호부터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경제사 뒤집어 읽기'를 연재합니다.

이 칼럼은 한국경제신문에 지난해 9월4일자부터 매주 토요일 게재되고 있습니다.

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주 교수는 이 칼럼을 통해 나름의 시각을 갖고 깊이 성찰한 서구의 역사와 경제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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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과 인류 최초의 국제교역

[경제사 뒤집어 읽기] (1) 최초의 교역선이 '가죽배' 였던 까닭
흑요석(obsidian)은 인류 역사 초기부터 도구로 사용했던 물질이다.

용암이 지표면에서 급속히 굳어지며 형성되는 이 물질은 돌이라기보다는 유리에 속하는데,무엇보다도 가볍게 치면 예리한 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석기시대에는 흑요석으로 칼이나 화살촉,도끼 같은 것들을 만들었다.

흑요석 날이 어찌나 예리한지 심지어 현대에도 어떤 의사들은 수술할 때 강철 메스보다 흑요석 메스를 고집하기도 한다.

강철 메스의 날은 맨눈으로 볼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로워 보이지만 배율이 높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흑요석 날은 전자현미경으로 볼 때도 똑바로 나 있으며,두께가 3나노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예리하다.

흑요석은 고고학자와 역사학자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물질이 한정된 화산 지역에서만 나오는 데다 생산 지역마다 특이한 구조적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흑요석은 자기 생산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지문을 갖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흑요석 도구를 분석해 보면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 본토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프랭크티 동굴(Frankhthi cave)의 사례를 보자.

이 동굴은 약 2만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다 약 3000년 전인 신석기 시대 중기에 버려진 곳이다.

선사시대에 이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이 계속 거주한 유적지는 흔치 않다.

바로 이곳에서 흑요석 유물이 발견됐다. 그 출처를 조사해 보니 그리스 본토에서 약 120㎞ 떨어진 멜로스 섬으로 확인됐다.

멜로스 섬은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 중인 '밀로의 비너스'가 발견된 곳 정도로 유명하지만('밀로'는 멜로스 섬을 가리킨다) 사실 이 섬은 고대에는 자연자원이 풍부하게 생산돼 수출이 이뤄진 중요한 산지였다.

흑요석의 산지와 발견 장소를 놓고 볼 때 선사시대부터 해상 원거리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의 원거리 교역 역시 마찬가지다. 콜럼버스가 오기 이전 아메리카의 여러 사회에서도 흑요석은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마야 문명에서 전사들은 나무 몸체에 흑요석 날이 박힌 칼을 갖고 전쟁을 했다.

고고학자들은 각각 화산 지역의 흑요석을 구분할 수 있으므로 어느 지역의 흑요석이 어디까지 송출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칠레의 차이텐 화산에서 나온 흑요석은 남북 방향 각각 400㎞ 떨어진 지역까지 보급됐다.

우리의 짐작과 달리 인디언 사회에서도 상당히 먼 거리까지 재화가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흑요석의 이동을 통해 고대 문명의 원거리 교역을 추적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콜린 렌프루(Colin Renfrew)라는 학자는 기원전 6000년께 중동 지역(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사용되던 흑요석 도구들의 원산지를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모든 흑요석은 아르메니아 지방의 두 산지에서 난 것이었다.

아르메니아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위치해 있다.

역사가들은 이곳의 화산 지역에서 생산된 흑요석을 배에 싣고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타고 내려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여러 지역에 판매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문명 초기의 상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운송했을까?

그 당시의 배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에 대해서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참조할 만하다.

그는 아르메니아에서 출발한 배가 바빌론에 도착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강물을 타고 바빌론으로 내려가는 데 사용하는 배들은 둥글고 전체가 가죽으로 되어 있다.

그들은 아시리아에서 상류 쪽에 있는 아르메니아에서 버들가지를 베어 틀을 만들고 그 바깥에 방수용 짐승 가죽을 입혀 선체 노릇을 하게 한다.

그러나 고물을 넓히지도 이물을 좁히지도 않고,배를 방패처럼 둥글게 내버려둔다.

그러고 나서 속을 짚으로 채우고 화물을 실은 다음 강물을 따라 떠내려 보낸다.

(…) 배마다 살아있는 당나귀를 한 마리씩 싣고 다니고,더 큰 배들은 여러 마리를 싣고 다닌다.

바빌론에 도착해 짐을 다 처분하고 나면 배의 틀과 짚조차 다 팔아버린 다음 짐승 가죽을 당나귀에 싣고 아르메니아로 몰고 간다.

유속이 빨라 강물을 거슬러 항해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무가 아닌 짐승 가죽으로 배를 만드는 것이다. 당나귀를 몰고 일단 아르메니아로 돌아오면 그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배를 만든다. '(헤로도토스,천병희 역,《역사》 I;194)

나뭇가지 틀에 짐승 가죽을 두른 형태가 아마도 최초의 선박 형태가 아닐까 짐작된다.

한번 하류 지역에 오면 물건과 배까지 모두 처분한 다음 당나귀를 타고 고향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역사가들은 이것이 최초의 국제교역 형태 중 하나일 것으로 추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