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감사원장 후보자 지위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청문절차를 정치행위로 봉쇄한 일련의 과정은 살아있는 법을 정치로 폐지한 것으로 법치주의에 커다란 오점이 될 것입니다. "
지난 12일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진 사퇴했다.
대검 차장 퇴임 직후 로펌에 소속돼 7개월간 7억여원의 급여를 받는 등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과거 행적으로 여론이 악화돼 청문회를 앞두고 결국 낙마한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차원 높은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정성을 다해 재판업무에 몰두해 달라."
2004년 8월 17일 조무제 대법관이 퇴임식을 갖고 34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났다.
재직 당시 청빈 법관의 대명사로 불린 그는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모교인 동아대 법대 교수로 돌아갔다.
그의 이름 앞에는 지금도 항상 '딸깍발이 판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새해 벽두에 터진 감사원장 후보의 낙마 사태는 우리 사회에 사라져가는 '딸깍발이 정신'을 돌아보게 한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기에 급급한 지식인이 판을 치는 요즈음 조금은 고지식하면서도 기개만은 꼿꼿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가리켜 '딸깍발이'라 부를 만하다.
'딸깍발이'란 본래 '일상적으로 신을 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는다는 뜻에서, 가난한 선비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옛날 가난한 선비들이 돈이 없어 신발을 따로 장만하지 못하고 맑은 날에도 비 오는 날 신는 나막신을 신고 다녔는데, 이때 신발에서 나는 '딸깍딸깍' 하는 소리에서 비롯된 말이다.
또는 '일본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사전적 풀이로만 보면 두 가지 쓰임새에 공통적으로 낮잡아 이르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런 풀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딸깍발이'와 비교할 때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다.
작고한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1896~1989)은 수필 '딸깍발이'에서 '사실로 졌지마는 마음으로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는 지조, 이 몇 가지가 그들의 생활 신조였다'고 묘사했다.
딸깍발이 선비의 지조는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짚불)은 쬐지 않는다'는 우리말 속담에서 잘 드러난다.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한 경우라도 체면을 깎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란 속담도 같은 말이다.
참고로 속담에 나오는 '겻불'은 말 그대로 '겨를 태우는 미미한 불'을 가리키는 말로, '곁불'과는 다른 것이다.
'곁불'은 본래 '목표물 근처에 있다가 맞는 총알'을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총탄을 발사할 때 화약에 불을 댕겨 했기 때문에 총 쏘는 것을 '불질'이라 했다.
'곁불'은 여기서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또 다른 '곁불'이란 표제어에 '얻어 쬐는 불'이란 뜻풀이를 올리면서 '겻불'의 쓰임새와 헷갈리게 됐다.
딸깍발이의 지조를 나타내는 속담에 나오는 '불'은 '곁불'이 아니라 '겻불'로 써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둬야 한다.
딸깍발이는 다른 말로 '남산골 샌님'이라고도 한다. 이때의 '남산골'은 서울 이태원 부근의 옛 이름이다.
예전에 가난한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는 데서 '남산골 샌님'이란 말이 생겨났다.
남산골은 또 다른 말로 '남촌(南村)'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촌'은 일반적으로는 '남쪽에 있는 마을'을 뜻하지만, 옛 지명으로는 '조선 시대에, 서울 안에서 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마을들을 통틀어 이르던 말'이기도 하다.
특히 경복궁 주위의, 고관대작들이 모여 살던 '북촌(北村)'에 견주어 청계천 이남의 남산 기슭에 형성된 마을을 남촌이라 불렀다.
'샌님'은 몇 가지 쓰임새가 있는데, 우선 '생원님'의 준말이다.
'생원(生員)'은 '조선 시대에 소과(小科)인 생원과에 합격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생원님'이란 예전에 상사람이 선비를 이르던 말이다.
'샌님'의 또 다른 쓰임새는 '얌전하고 고루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평소에는 숫기 없는 샌님인데, 술만 취하면 사람이 달라진다"처럼 쓰인다.
딸깍발이나 남산골 샌님이나 모두 '선비'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선비'는 얼핏 한자어로 알기 쉽지만 이는 우리 고유어이다. 예전에,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이다.
또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여기서 의미가 좀 더 확장돼 '품성이 얌전하기만 하고 현실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요즘 세상엔 선비 같은 사람은 살아가기가 힘들다"에 보이는 '선비'가 그런 쓰임새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지난 12일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진 사퇴했다.
대검 차장 퇴임 직후 로펌에 소속돼 7개월간 7억여원의 급여를 받는 등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과거 행적으로 여론이 악화돼 청문회를 앞두고 결국 낙마한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차원 높은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정성을 다해 재판업무에 몰두해 달라."
2004년 8월 17일 조무제 대법관이 퇴임식을 갖고 34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났다.
재직 당시 청빈 법관의 대명사로 불린 그는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모교인 동아대 법대 교수로 돌아갔다.
그의 이름 앞에는 지금도 항상 '딸깍발이 판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새해 벽두에 터진 감사원장 후보의 낙마 사태는 우리 사회에 사라져가는 '딸깍발이 정신'을 돌아보게 한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기에 급급한 지식인이 판을 치는 요즈음 조금은 고지식하면서도 기개만은 꼿꼿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가리켜 '딸깍발이'라 부를 만하다.
'딸깍발이'란 본래 '일상적으로 신을 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는다는 뜻에서, 가난한 선비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옛날 가난한 선비들이 돈이 없어 신발을 따로 장만하지 못하고 맑은 날에도 비 오는 날 신는 나막신을 신고 다녔는데, 이때 신발에서 나는 '딸깍딸깍' 하는 소리에서 비롯된 말이다.
또는 '일본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사전적 풀이로만 보면 두 가지 쓰임새에 공통적으로 낮잡아 이르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런 풀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딸깍발이'와 비교할 때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다.
작고한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1896~1989)은 수필 '딸깍발이'에서 '사실로 졌지마는 마음으로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는 지조, 이 몇 가지가 그들의 생활 신조였다'고 묘사했다.
딸깍발이 선비의 지조는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짚불)은 쬐지 않는다'는 우리말 속담에서 잘 드러난다.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한 경우라도 체면을 깎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란 속담도 같은 말이다.
참고로 속담에 나오는 '겻불'은 말 그대로 '겨를 태우는 미미한 불'을 가리키는 말로, '곁불'과는 다른 것이다.
'곁불'은 본래 '목표물 근처에 있다가 맞는 총알'을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총탄을 발사할 때 화약에 불을 댕겨 했기 때문에 총 쏘는 것을 '불질'이라 했다.
'곁불'은 여기서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또 다른 '곁불'이란 표제어에 '얻어 쬐는 불'이란 뜻풀이를 올리면서 '겻불'의 쓰임새와 헷갈리게 됐다.
딸깍발이의 지조를 나타내는 속담에 나오는 '불'은 '곁불'이 아니라 '겻불'로 써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둬야 한다.
딸깍발이는 다른 말로 '남산골 샌님'이라고도 한다. 이때의 '남산골'은 서울 이태원 부근의 옛 이름이다.
예전에 가난한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는 데서 '남산골 샌님'이란 말이 생겨났다.
남산골은 또 다른 말로 '남촌(南村)'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촌'은 일반적으로는 '남쪽에 있는 마을'을 뜻하지만, 옛 지명으로는 '조선 시대에, 서울 안에서 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마을들을 통틀어 이르던 말'이기도 하다.
특히 경복궁 주위의, 고관대작들이 모여 살던 '북촌(北村)'에 견주어 청계천 이남의 남산 기슭에 형성된 마을을 남촌이라 불렀다.
'샌님'은 몇 가지 쓰임새가 있는데, 우선 '생원님'의 준말이다.
'생원(生員)'은 '조선 시대에 소과(小科)인 생원과에 합격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생원님'이란 예전에 상사람이 선비를 이르던 말이다.
'샌님'의 또 다른 쓰임새는 '얌전하고 고루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평소에는 숫기 없는 샌님인데, 술만 취하면 사람이 달라진다"처럼 쓰인다.
딸깍발이나 남산골 샌님이나 모두 '선비'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선비'는 얼핏 한자어로 알기 쉽지만 이는 우리 고유어이다. 예전에,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이다.
또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여기서 의미가 좀 더 확장돼 '품성이 얌전하기만 하고 현실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요즘 세상엔 선비 같은 사람은 살아가기가 힘들다"에 보이는 '선비'가 그런 쓰임새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