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가?

<문제 1> 자기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가]~[다]의 입장을 비교하여 분석하시오. (501~600자)


<문제 2> [라]의 표에서 가격 정책에 따라 고객의 반응이 달라지는 양상을 심리적 · 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하시오. (501~600자)


<문제 3> [가]~[다]를 참고하여 [마]의 상황을 논평하고, 타자와의 공존 방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시오. (901~1100자)



[논술 기출문제 풀이]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수시 1차 논술 기출문제 풀이 (上)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문명의 요구를 난생 처음 듣는 것처럼 순진한 태도로 생각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놀라움과 당혹감을 억누를 수 없을 것이다.

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가? 그게 우리한테 무슨 이익이 되는가?

무엇보다도 우선, 어떻게 그 요구를 달성할 것인가? 그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내 사랑은 나한테 너무나 소중해서,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내던져 버리면 안 된다.

사랑은 나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중요한 점에서 나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 그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완벽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의 이상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해도, 역시 그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 사람이 내 친구의 아들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해야 한다.

제 아들이 재난을 당하면 내 친구는 고통을 느낄 테고, 친구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의 고통을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신의 가치로 나를 매혹하지 못하거나 내 감정 생활에 이미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지 못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 가족은 모두 내 사랑을 내가 자기들을 좋아한다는 증거로 소중히 여기고 있는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내 가족과 동등하게 대한다면 그것은 내 가족에게 부당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도 역시 벌레나 지렁이나 율모기처럼 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 사람을 (보편적인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면, 내 사랑 가운데 그의 몫으로 돌아가는 양은 아주 조금밖에 안 될 것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도저히 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는 없다.

도저히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명령을 그토록 엄숙하게 선언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좀더 면밀히 검토해 보면, 더 많은 난점이 발견된다.

낯선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솔직히 고백하면 내 적개심과 증오까지도 받아 마땅하다.

그 사람은 나에 대한 사랑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고, 나를 조금도 존중해 주지 않는다.

나를 해치는 것이 자기에게 이로우면, 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나를 해칠 것이다.

(중략) 그 사람이 다른 식으로 행동하면, 다시 말해서 낯선 사람인 나를 존중해 주고 너그럽게 대하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과는 관계없이 나도 기꺼이 그 사람을 그렇게 대할 것이다.

그 젠체하는 명령이 '네 이웃이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면, 나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이제 나를 나무라는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네 이웃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네 원수이기 때문에, 너는 네 몸처럼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 이제야 나는 이것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겠다.


-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사실상 생명 가치는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어서 '이념적 가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살아가려는 의지, 즉 '의지적 가치'의 형태로 모든 생명체들의 본능 속에 깊이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유정성(sentience)을 지닌 모든 동물들에게서 외형적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이를 명시적으로 의식하고 있으며 이렇게 의식된 내용이 바로 자신의 생명 가치관을 이루는 선천적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분명한 점은 이러한 생명 가치관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자기 삶의 주체가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단위로 하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인데, 이 점 또한 본능에 깊이 각인(刻印)되어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생명에 대한 이러한 소중함의 관념이 오로지 자기 자신의 생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사람들의 생명은 설혹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여전히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는 어떤 합리적 사변(思辨)에 의해 도달하는 관념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인 것이다.

그러나 느낌만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사람의 생명 가치를 동등한 가치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자기 주위의 사람들의 생명 가치에 대한 일정한 차별이 나타나게 된다.

자신에게 자기 부모의 생명이 상대적으로 더 소중하게 느껴짐을 아무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보면 이는 온당한 판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대등하게 태어난 인간이라 할 때 내 생명 또는 내게 가까운 사람의 생명만 소중하고 남의 생명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할 어떤 이유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 간단한 원리, 즉 모든 사람의 생명은 다 같은 정도로 소중하다는 이 대원칙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기까지는 오랜 역사적 과정이 소요되었다.

이는 우리의 느낌 속에 부각된 인간 생명 가치의 차별성과 합리적 사고가 말해주는 동등성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과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이겨내려는 의식적 노력이 요구되며 이를 반영하는 사회적 장치가 바로 윤리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남의 생명의 소중함이 자기 생명의 소중함과 원칙적으로 같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윤리의 바탕에 깔린 기본 윤리가 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일러 윤리의 '황금률'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원칙적으로' 같다고 하는 점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로는 이들의 소중함에 대한 상대적 차이를 심정적인 면에서까지 완전히 제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의 입장에 서면 그가 느끼는 바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이해'를 지니고 이 이해가 공유되는 바탕 위에 모든 사회의 행위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이 윤리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 장회익,「새로운 생명 가치관의 모색」(고등학교 '독서'교과서)


로만과 벤츠는 피자를 나눌 때의 정의의 원칙을 세계 빈민 구제 문제에 적용하여 한 가설을 세웠다.

그 가설은 누구나 같은 몫의 피자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의가 이루어지려면 누구나 자신의 처지(몸무게, 집 등)에 상관없이 같은 몫의 피자를 먹어야 한다.

이렇게 그들은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점에 기초하여 피자는 똑같이 나눠져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논리로 식량이 남는 국가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제3세계 국가의 사람들에게 식량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빈부 격차가 생기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하딘은 과잉인구의 문제에 대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오늘날의 인구 문제가 인간종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보았다.

그는 기술의 발전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인구를 증가시키기 전까지만 모든 굶주린 사람들이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원칙이 정당화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만일 세계의 빈민이 모두 먹을 수 있게 된다면, 근대적 보건 의료와 의학 덕분에 낮아진 유아사망률로 인해 빈민의 수는 급속하게 늘어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빈민이 증가함으로써 생물계의 안정성과 환경의 거주 가능성이 위협받을 것이며, 결국에는 세계의 식량 생산이 인구 성장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집단적인 기아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적합한 정의의 원칙은 자신들이 생산할 수 있거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식량만을 얻는 것이라야 마땅하다.

제3세계에서 굶어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들이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어도 부정의(不正義)한 것은 아니다.

사실 그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해 부당한 처사이다.

미래 세대는 과밀한 인구 밀도로 열악해진 환경에서 살게 될 것이며, 그 후에는 집단 아사(餓死)의 시기를 견뎌야 할 것이다.


두 원칙은 환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충돌한다.

충분한 식량이 있을 때 모든 인간은 적절한 영양을 위해 음식을 섭취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은, 과밀 인구로 인해 생태계와 환경이 위협받을 때 식량을 생산 혹은 구입할 수 없는 사람은 굶어 죽어도 된다는 원칙과 갈등하는 것이다.

굶어 죽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경쟁적인 두 원칙을 지지할 수 있다.

첫 번째 원칙은 단기간의 아사에 집중하고 두 번째 원칙은 장기간의 아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제시문을 읽고 실제 나의 세계의 문제로 생각해 보아야

[논술 기출문제 풀이]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수시 1차 논술 기출문제 풀이 (上)
라오샤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돈을 걷었다.

며칠 고생하자 필요한 액수의 반 정도가 걷혔다. 그래서 그는 또 예전에 이 극단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이주해 간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어, 자전거를 타고 이 도시의 사방팔방으로 이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라오샤는 그들을 만나 라오쑹의 불행에 대해서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함으로써 그들의 동정심을 더 크게 환기시킬 수 있었다. 그 중에 전에 극단에서 전기공 일을 하다가 나중에 퇴직하고 음향기기 판매업을 하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큰맘 먹고 주머니를 털어서 그 나머지를 다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이 청년에 의하면 전에 극단에서 일할 때 그는 연애를 하고 있던 때여서 매일 밤 두세 시나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매번 잠긴 문을 두드리면 꿈속을 헤매던 라오쑹이 제때에 일어나서 그에게 문을 열어 주었고 늦은 이유를 묻지도 않았으며 그를 원망하는 기색도 없었다고 했다.

극단에서 그 청년에게 처벌을 내리려고 라오쑹을 찾아와서 증인을 서라고 했지만 라오쑹은 이 청년이 밤에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청년은 라오샤를 보고 말했다. 이 일로 저는 평생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집사람도 라오쑹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라오샤는 성공했다.

그는 일주일간의 시간을 들여 라오쑹을 위해 인민폐 1만 5850위안을 모금하였던 것이다. (중략)

라오쑹은 온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밤새도록 돈을 세고 돈을 단위별로 나누어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지폐를 한 장 한 장 어루만져 보고, 한 장 한 장 등불에 비춰 보았으며, 한 장 한 장 코에 들이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새 돈은 바삭바삭 소리가 나기도 했는데 어둡고 고요한 밤이라 사람을 놀라게 할 만했다. 낡은 지폐들은 약간 맵고 느끼한 냄새를 풍기고 있거나 아니면 끈적거리면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한 장에 이 위안짜리 지폐라 할지라도 손바닥에 놓으니 아주 무거워서 그의 손바닥을 아래로 처지게 하는 것 같았다.

라오쑹은 돈을 다 세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했다.

설마 내 다리가 진짜 병이 든 거란 말인가? 설마 방금 센 이것들을 모두 병원에다 던져줘야 한단 말인가?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왼쪽 다리를 뻗어서 위아래로 움직여 보거나 어떤지 가늠해 보았다.

그는 대들보처럼 부어오른 이 다리가 병든 다리라는 것을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 (중략)

라오쑹은 링치앙 극단과 이 도시에서 사라졌다. 라오샤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극단의 단원들도 화가 났다. 라오쑹이 말없이 사라진 것은 분명 그들을 우롱한 것이었다.

그들이 내놓았던 한 조각 한 조각의 사랑의 마음들은?

그들의 돈은 피와 땀이 어린 돈이었다.

한겨울 맹추위에, 한여름 삼복더위에 하루 세 번씩 공연해서 모은 돈이었다.

특히 라오샤로 하여금 참을 수 없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원망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다.

생각지 못했어. 정말 생각지 못했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고지는 당신이 붙였잖아.

이런 말들은 라오샤로 하여금 흠칫흠칫 몸을 떨게 했다.

마치 라오샤가 많은 사람들의 돈을 사기치고, 또 라오쑹이 도망가는 것을 도와주기라도 한 듯했다.

라오샤는 단장을 찾아가서 사람을 보내 라오쑹을 데려와서 자초지종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였다.

단장이 말했다.

임시직원을 어떻게 데려온단 말이오?

그 사람과 이 극단 간에는 서면 계약서조차 없는데. 그는 본래 오가는 것이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라오샤는 옛날 라오쑹이 이 극단에 올 때 한 친척의 소개로 왔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그 친척은 당연히 아직 이 도시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라오샤는 천신만고 끝에 라오쑹의 친척을 찾아내 그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급한 마음에 목소리가 높아져 싸울 기세였다. 마지막에 그는 분명한 태도로 그 친척에게 말했다.

라오쑹의 이러한 작태는 자기 몸에 무책임한 짓일 뿐만 아니라 우리 극단의 모든 분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라오쑹의 이 친척은 라오샤의 격앙된 태도에 대해서 책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라오쑹을 위해서 돈을 낸 것에 대해서는 제가 여기서 라오쑹을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그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말은 좀 지나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돈은 라오쑹이 여러분을 핍박해서 낸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원해서 라오쑹에게 준 것이니, 그 돈은 당연히 라오쑹의 것입니다.

라오샤는 그 친척의 말을 막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그 돈은 전적으로 다리를 치료하라고 모아 준 것이었다구요. 친척이 말했다. 그는 이미 다 치료를 한 것이 아닌가요?

라오샤가 물었다. 어떻게 치료가 되었는데요? 친척이 대답했다.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하지요.

그는 고향에 돌아간 다음날, 마을의 병원에 가서 다리를 절단했어요.

거기가 훨씬 쌌다네요.

이천 위안도 안 들었다니까. 입원할 필요도 없었고, 다리를 절단하자마자 바로 걸어서 집에 돌아갔다던데요.

라오샤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쿠, 하느님!

(중략)

라오샤는 장거리 버스를 타고 여섯 시간 걸려 라오쑹의 고향, 그 새로 개발한 관광지에 도착하였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역 주변에 있을 그 기념품 파는 작은 노점을 향해 달려갔다.

별로 힘 안 들이고 쉽게 함석지붕 노점 옆에 서 있는 라오쑹을 발견했다.

라오쑹은 마침 목발을 짚은 채 건장한 젊은이에게 노점 안으로 물건을 들여놓을 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라오샤의 눈이 라오쑹의 하반신에 멈추었다.

왼쪽 다리 부분이 텅 비었고, 다리의 뿌리 부분까지 걷어 올려진 빈 바지통이 마치 주물러 짜 놓은 걸레 같았다.

라오샤의 마음속에 시큼하고 떨떠름한 맛이 솟아올랐다.

순간적으로 라오쑹에게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어려웠다.

목발을 짚고 있는 라오쑹도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라오샤를 보았다.

그는 갑자기 그 젊은이에 대한 지시를 멈추고는 꼼짝 않고 멍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이어서 라오샤는 라오쑹의 얼굴에서 그가 찾아내고 싶었던 표정을 찾아내었다.

곤혹스러움, 난감함, 양심의 가책, 그 밖에 의외의 놀라움과 두려움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는 라오샤로 하여금 라오쑹이 필경 문화적 소양이 있는 사람이고 깊은 자존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아직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 라오쑹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갑자기 라오쑹이 다리를 돌려 달려갔다.

아직도 건강한 오른쪽 다리로 온몸을 기대고 또 목발을 끌고 온 힘을 다해 앞을 향해 뛰어갔다.

그가 몸을 구부려 거리의 행인들과 부딪히며 나아가는 것이 마치 상처를 입은 야수와 같았다.

-톄닝,「도망」


⊙ 들어가며

새해 벽두. 벽두라는 말은 첫머리 혹은 처음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런 뜻의 한에서 벽두라는 말을 논술의 근본적인 한정(限定)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시기인 듯도 하다.

(지금은 새해의 벽두다. ) 논술의 벽두는 무엇일까?

단정하자면 그것은 세계로의 팽창이다.

논술은 자신을 자신의 한정으로만 가질 때 결코 제대로 논술되지 않는다.

이 말은 논술이 논술 제시문이나 논술 논제라는 텍스트 안에서만 이해되고 해결될 때는 결코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과 의미상 동일하다.

현실적으로 바꿔 말하면, 논술 시험에 등장하는 제시문이나 논제를 오로지 제시문으로만, 혹은 논제로만 이해한다면 결코 좋은 논술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이것이 곧 논술의 근본, 논술의 벽두다.

그렇다면 논술의 제시문과 논제를 제시문과 논제 이상으로 이해하고 해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해답은 지면에 실은 건국대학교 2011학년도 논술 문제가 직접 보여주고 있다.

제시문은 개인(자기)과 타자의 관계 국면을 다양한 양상을 통해 예시해 준다.

더하여, 논제는 그러한 관계 국면들에 대한 구체적이면서 다분히 논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주어진 문제들의 논술적 특성은 간단하다.

맨 앞의 세 제시문들을 통해 개인과 타자의 윤리적 관계들을 기초적으로 제시해 주고, 그것을 통해 현실 국면의 자료를 해석할 것을 요구한 다음, 모든 것의 종합과 논술자의 해석이 수반될 총체적 사유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논술의 특성이라 할 것도 없을 만큼의 현행 논술 패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벽두에 우리가 새삼 인지하고 다독여야 할 것은 논술의 유행성 자체가 아니다.

개인과 타자의 관계를 파헤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제로 그 관계를 사유해 보아야 한다는 것, 주어진 자료가 있다면 그 자료가 논술의 영역 안에 한계 지어진 텍스트가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텍스트 외부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우리 세계에 항상 유효하다는 것, 그런 사실들을 기필코 깨닫는 것, 오직 그것만이 논술의 근본이며 힘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우치고 생각해야 한다.

건대 논술의 특성은 우리에게, 벽두의 우리에게 어떤 근원을 강제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논술자는 이 요청에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 제시문에 등장한 내용이 결코 제시문으로서만이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삶 속에서 이해되고 이미 이해되고 있는 문제라는 것.

나와 타자의 문제라면, 그것이 제시문을 통과해서 반드시 논술자가 마주치는 세계 속에서 타자와의 문제로, 구체적으로 부각되어야 한다는 것.

표로 제시된 자료가 있다면 그 자료를 나의 경우, 나의 사례로 대입해 보거나 상상해 보는 시도를 필히 해 보아야 한다는 것.

논술의 제시문은 언제나 우리 세계의 문제를 다루므로 그 제시문을 읽은 뒤에는 반드시 우리 세계, 나의 세계의 문제를 구체적이면서 사실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들과 모든 것들에 대한 응답이 새해 벽두에 논술의 벽두의 요청인 것이다.

진리영 S · 논술 선임 연구원 furyfury13@naver.com

※문제 2에 등장하는 제시문 (라)는 지면사정과 문제의 독립적 성격상 다음 호에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