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감세 정책의 상반된 결과들
[경제교과서 뛰어넘기] (35) 경제 성장의 비용
선거는 정당정치의 시작과 마지막이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는 것을 제1의 목적으로 하는 현대 정당정치에서 선거는 모든 것이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같이 치열하고 때로는 과격하고 비인간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전쟁이 그러하듯이 선거 역시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총과 칼이 필요하다면, 선거에서는 정책이 총칼을 대신한다.

따라서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와 정당은 자신들의 이념과 노선을 기초로 한 정책들을 통해 국민들의 선택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여러 정책분야 중 현대 정치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는 분야는 아마도 '경제정책'일 것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성장보다는 분배에 초점을 맞춰 증세정책을 통한 생산적 복지에 무게를 두었다.

또한 달러 강세에 따른 국제수지 악화를 막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반면 공화당은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경제성장을 위해 감세정책 기조를 유지하였고 약해진 달러화를 바탕으로 국제시장의 확대를 유도하였다.

실제로 2000년 대선 당시 부시 후보는 감세정책을 자신의 경제정책으로 삼았고, 집권 후에는 재정수지 흑자는 정부의 몫이 아니라 국민의 몫인 만큼 세금을 감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감세 조치를 단행하였다.

부시 행정부는 전임 클린턴 행정부 당시 39.6%였던 최고소득세율을 35%로 인하하였고, 자본이득세와 주식배당세도 20%에서 15%로 5%p 낮추었다.

감세정책을 추진한 부시행정부는 세금 감면이 소비 지출을 증대시키고, 이를 통해 경기가 활성화되면 세입이 증대되는 '낙수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세정책 10년의 결과는 부시 행정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타났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연속으로 재정수지 흑자기조를 이어오던 미국의 나라살림은 2003년 378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하였고 2010년 재정적자는 1조3000억달러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2007년말 금융위기를 극복하기위해 공적자금을 금융기관에 투입한게 적자의 큰 요인이 됐다.

경제성장을 증가시키기 위한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이 정반대의 결과를 야기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어떤 정책의 작용은 한편으로는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소득세율 인하는 노동공급곡선의 오른쪽 이동을 통해 인구에서 고용이 차지하는 비율을 증가시켜 경제성장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자본이득세의 인하는 저축을 증가시키고 이자율을 떨어뜨려 기업의 투자지출을 증가시킨다.

이렇게 되면 연구와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인이 마련되어 기술진보나 생산성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또한 주식배당세가 인하되면 기업들은 배당금 지급액을 대폭 늘리거나 신규 배당에 나서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주식투자자들의 이익이 커지고, 이로 인해 주식시장이 활발해져 기업들의 자금 확보가 용이해진다.

하지만 세금이 정부 수입의 주요한 요인이라는 점에서 종종 감세정책은 정부에 내키지 않는 결정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감세정책이 시행되면 세수가 줄어들어 정부의 수입이 감소하게 마련이다.

이 경우 정부는 또 다른 조세를 인상하여 감세로 인한 수입 감소를 보전하거나 정부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계는 소득세는 적게 내지만 높은 부동산세를 납부해야 할 수 있다.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던 복지수혜자들은 이전보다 적은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다.

또한 정부지출이 감소하면 치안, 교통, 교육 등 정부가 제공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양과 질이 열악해져 국민 전체가 고통을 받기도 할 것이다.

즉, 감세가 고용과 투자를 증대시키는 효과보다 재정수지가 악화되어 나타나는 효과가 더 크다면 감세로 인한 성장촉진 효과가 약화되거나 혹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정책의 실행이 경우에 따라서는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위에서 논의한 예산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효과는 소비의 측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만일 어떤 한 나라가 미래의 특정 시점에 현재보다 많은 자본을 축적하고 있다면 더 많은 생산을 통해 경제는 성장하게 된다.

자본재와 소비재 두 재화를 생산하는 국가의 정부가 미래에 경제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현재의 소비에 필요한 소비재의 생산에 노동, 토지, 자본 등을 투입하는 대신 물리적 자본과 인적자본, 그리고 연구 · 개발(R&D)에 대한 투자를 증가시키기로 했다고 하자.

정부는 이를 위해 투자세를 감면하고 특허 기간을 연장하는 정책 등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투자가 자본의 감가상각보다 커지게 되면 자본저량이 증가하여 해당 국가의 생산가능곡선이 바깥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 결과 해당 국가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현재보다 많은 산출량을 보여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세정책이 또 다른 조세의 인상을 불러오듯이 미래의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재에 대한 투자는 현재의 소비재 소비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투자세 감면으로 투자 요인이 생긴 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더 많은 자금을 대출받게 되면 이자율은 올라가게 된다.

가계의 입장에서 이자율 인상은 저축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에 따라 저축은 늘어날 수 있지만, 그만큼 소비에 지출할 수 있는 여유자금은 줄어들게 마련이고 이에 따라 현재의 소비재 소비는 감소하게 된다.

경제성장은 또 다른 측면에서 국민 개개인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거나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일을 하면 소득이 증대되고 경제도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장 방식에도 비용이 수반된다.

예를 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한다는 것은 기존 근로자의 은퇴 시기가 늦춰지거나 가사노동을 하던 배우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또한 더 많은 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은 직장 밖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 즉 가족들과 함께 지내거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일을 하거나 기존의 노동자들이 종전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일을 하게 되면 산출량이 증대되어 생활수준은 향상되겠지만, 그만큼 노동 이외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2000년 10월 3일 미국에서는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 두 대선 후보의 TV 토론이 있었다.

경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공화당의 부시 후보는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상황 파악을 위해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찾고, 그 후 적절한 정부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질문에 대한 고어 후보의 대답도 부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린스펀 의장에 대한 두 후보의 신뢰가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린스펀 의장은 1987년부터 2006년 1월 퇴임할 때까지 18년6개월 동안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냈으며, 4년 임기의 의장 자리를 5번 연임하였다.

그는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경제 대통령' '통화정책의 신'으로 추앙받으며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 입안과 실행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을 지지했던 것은 실수였다"고 밝혔다.

그는 더불어 "감세 조치가 종료되면 경제성장이 둔화될 수 있지만, 그보다 재정적자를 방치할 경우 더 큰 위험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감세정책의 종결을 주장하였다.

부시 행정부의 감세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회에 출석해 지지 연설까지 한 미국 경제의 거두가 뒤늦게 자신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그린스펀의 이러한 발언은 감세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재정적자의 폐해가 감세로 인한 고용과 투자의 증대효과를 상회하였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시행된 정책이 다른 채널을 통해 성장에 반하여 작용한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여러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 중에 있다.

정책입안자들이 성장의 이익과 비용에 대해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원식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