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다’에서 온 ‘굽이굽이’

'설악산 구비구비는 벌써 붉은 단풍으로 물들었다. '

'개울물이 골짜기를 구비구비 감돌아 흐른다. '

'한 구비만 더 돌면 집에 도착한다. '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장들인데, 옥에 티가 있다.

우리말에서 '구비구비' '구비'란 말은 없기 때문이다.

동사나 형용사 뒤에 붙어 그 말을 명사로 만들어주는 기능을 하는 접미사가 있다.

'-이, -음/-ㅁ'이 그것으로, 이들을 명사화 접미사라고 한다.

이들이 붙어 명사가 된 말은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다.

이들은 용언의 어간에 비교적 규칙적으로 넓게 결합하며, 어간의 뜻도 그대로 유지시킨다.

따라서 소리 나는 대로 적지 않고 원형을 밝혀 적는 것이다.

가령 '한 쪽으로 구부러지거나 휘다'라는 뜻의 동사 '굽다'에 접미사 '-이'가 붙어 전성한 명사 '굽이'나 부사 '굽이굽이'는 그 같은 이유에서 '구비' '구비구비'로 적지 않는다.

'굽이'는 굽이굽이를 비롯해 굽이감다, 굽이돌다, 굽이지다, 굽이치다 등 여러 합성어 또는 파생어를 낳는다. '곱이곱이'란 말도 쓰이는데 이는 '굽이굽이'보다 작은말이다.

'굽이' 외에도 '먹이, 미닫이, 막음, 죽음, 묻음, 삶, 앎, 만듦, 걸음(步), 놀음/놀이(遊), 얼음(氷)' 따위의 단어가 모두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이, -음/-ㅁ'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라도 어간의 본뜻이 변질된 경우에는 원형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

가령 '거름(걸다+음, 肥料), 고름(곯다+음, 膿), 노름(놀다+음, 賭), 빈털터리, 목도리' 같은 게 그런 경우이다.

또 '-이, -음/-ㅁ' 이외의 접미사가 붙어서 명사가 된 것도 소리대로 적는다.

'마감(막+암, 塞) 마개(막+애, 閉) 주검(죽+엄, 屍) 무덤(묻+엄, 墓) 귀머거리(귀+먹+어리, 聾)' 같은 게 있다.

이들은 모두 어간의 본뜻과 멀어지거나 접미사가 규칙성이 없어 예외적으로 원형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