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제시문(가)
<실험 준비>
▼예일대 심리학과 스탠리 밀그램 교수 이름으로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를 측정한다는 광고를 지역 신문에 내고 실험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한다. 모집된 대상자들은 실험의 진짜 목적을 모른다.
▼모집 대상은 20~ 50세 평범한 남녀 40명이며 모두 일정액의 실험 참가비를 지급받는다.
▼실험 대상을 교사 역할과 학생 역할로 구분한다. 그러나 학생역할의 피험자는 실험에 대해 미리 알고 있는 조력자이다.
▼전기 충격기는 가짜이며,충격에 대한 반응 역시 학생역할을 하는 조력자의 연기일 뿐이다.
아래 내용은 1960년대 미국 예일대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에 의해 수차례 이루어졌던 인간에 대한 실험 내용과 결과를 기술하고 있다.
<실험 방법 및 진행>
▼실험 참가자는 실험자(E)와 피험자(T · 교사역할),조력자(L · 학생역할)로 구성된다.
▼실험은 삼자 모두 대면할 수 있는 실내 공간에서 이루어지며,E와 T는 동일 공간에,L은 투명 막으로 분리된 공간에 위치한다.
▼E는 T에게 L을 테스트할 문제를,L에게는 암기할 단어를 제시한다.
▼E는 T에게 L을 테스트한 후 L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볼트(V)부터 시작해 450V까지 한번에 15볼트씩의 전기 충격 수준을 한 단계씩 높이라고 지시한다.
▼각 스위치마다 '약한 충격'부터 '위험:심각한 충격'까지 단계별로 언어로 표기되어 있다. 마지막 두 단계는 'XXX'로 표기되어 있다.
▼E는 L에게 평균 3문제 마다 1개씩 틀리도록 미리 요구했다.
▼전기 충격에 반응하는 L 의 음성반응은 전압 수준에 따라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05V까지는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고 약간의 신음소리만 조금 낸다.
120V에서 "고통스럽다"고 불쾌감을 드러낸다.
150V에서는 "나를 내보내 주세요"라고 소리친다.
이후로는 전압이 오를 때마다 계속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를 덧붙인다.
270V쯤에서는 괴로운 비명을 지른다.
300V에서는 더 이상 실험에 응하지 않겠다며 필사적으로 소리친다.
▼E는 T가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면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자극문구'를 사용한다.
이때 단호하면서 상대를 무시하지 않는 어조로 말한다.
① "계속해 주세요. "
② "실험을 위해서는 계속해야 합니다. "
③ "계속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
④ "당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계속해야만 합니다. "
(단,자극 문구는 단계적으로 사용한다. 즉,자극 문구1이 실패할 경우에만 자극 문구2를 사용할 수 있다. )
*특별자극문구사용:L의 반응에 대해 T가 L이 심장마비 등 신체적 상해를 입지 않을 것인지 우려하거나 질문하면 다음과 같은 특별 자극 문구를 사용한다.
"충격은 고통스러울지 모르나,실제로 인체에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닙니다.
안심하고 실험에 응해주시고 만일 무슨 일이 생길 시에는 우리가 책임질 것입니다. "
▼E는 T가 위의 자극문구 ④ 이후에도 명령을 거부하면 실험을 종료한다.
실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 (표 참조 ) -이상 실험 내용 및 표:스탠리 밀그램,<권위에 대한 복종>에서 발췌 및 재구성
인간의 본성은 텅 빈 백지상태이다?
제시문(나)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0년 5월11일 저녁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에서 체포돼 9일 후에 이스라엘로 압송,1961년 4월11일에 예수살렘 지방 법원으로 재판받기 위해 이송된 뒤 15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그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인류에 대한 범죄 및 나치스 통치 기간,특히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그에 대한 재판의 근거가 되는 1950년에 입안된 나치스 및 나치 협력자 처벌법은 "이러한…범죄 가운데 하나라도 범한 자는…사형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각의 죄목에 대해 아이히만은 '기소장이 의미하는 바 대로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아이히만은 무엇보다도 살인죄에 대한 기소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나는 유대인이나 비유대인을 결코 죽인 적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어떤 한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
나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여하튼 난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 그가 나중에 이 내용을 보충 설명하면서,"그 일은 그냥 일어났던 일이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가 죽게 되는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을 받았더라고 그대로 수행했으리라는 데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살인의 방조자로 기소되었다면 유죄라고 인정했을까? 아마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조건을 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은 회고를 할 때만 범죄일 뿐,자기는 언제나 법률을 준수하는 시민이었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최선을 다해 수행한 히틀러의 명령은 제3제국에서는 '법의 효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이히만의 최종 언도가 나왔다. 정의에 대한 그의 희망들은 무산되었다.
비록 그가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했다 하더라도 법정은 그를 믿지 않았다.
법정은 그를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니었고,그는 결코 인류의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죄는 그의 복종에서 나왔지만,복종은 덕목으로 찬양된다.
그의 덕은 나치스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배집단의 일원이 아니었고,그는 희생자였으며,오직 지도자들만 처벌받아야 한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는 오류의 희생자이다"라고 아이히만은 말했다…중략… 이틀 후인 1961년 12월15일 금요일 오전 9시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한나 아렌트,<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제시문 (다)
사상이란 경험에서 비롯되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의견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떤 마음은 진리를 파악할 능력을 갖추었고 다른 마음은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두 마음이 억압되기보다는 관대하게 용인되어야 한다.
로크의 빈 서판* 개념은 또한 세습적인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 토대를 침식시켰다.
모든 사람이 백지 상태로 출발했다면 왕과 귀족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타고난 지혜나 미덕을 가졌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그것은 또한 노예 제도에 대한 반론이기도 했다. 더 이상 노예를 선천적으로 열등하거나 천한 존재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빈 서판에 따르면 인종,인종 집단,성,개인들 간의 어떤 차이도 선천적 체질 차이가 아니라 경험상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학업 부진,가난,반사회적 행동은 개선될 수 있으며,사실 개선되지 않는 것에는 책임이 없다. 그리고 성이나 인종 집단 등 이른바 선천적 특성들을 근거로 삼아 차별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합리한 일이다.
로크의 연상심리학은 그 후 오늘날까지 유용한 심리학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행동주의의 창시자 존 B 왓슨은 빈 서판을 주장한 20세기 최고의 선언을 발표했다.
나에게 열두 명의 건강한 아이를 주고 내가 직접 하나하나 꾸민 세계에서 그 아기들을 키우게 한다면,장담하건대 나는 어떤 아기라도 그 재능,기호,경향,능력,소질,조상들의 경력과는 무관하게 내가 선택한 유형의 사람-의사,변호사,예술가,상인,심지어 거지나 도둑-으로 길러 낼 수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부인,개인의 마음에 대한 문화의 자율성은 사회학의 창시자 에밀 뒤르켐에 의해서도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사회적 현상이 심리적 현상에 의해 직접적으로 설명될 때마다 우리는 그 설명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확인하게 된다. …집단의 사고,감정,행동 방식은 고립된 구성원들의 그것과는 아주 다르다.
…만약 현상들에 대한 설명을 개인으로 시작한다면,집단적 사건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개인의 본성은 사회적 요소에 의해 형성되고 변형되는 부정형의 재료에 불과하다.
그것의 영향은 오로지 개인의 전반적인 태도에,막연하고 따라서 변화 가능한 성향들에만 국한된다.
"사회적 사실을 결정하는 주요 원인은 개인들의 의식 상태가 아니라 그에 앞선 사회적 사실들에서 찾아야 한다. "
이러한 초유기체 학설은 현대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사회'라는 개념을 마치 특정한 개인처럼 죄악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도덕적 행위자로 구체화해 생각하는 경향의 기초에 그 학설이 놓여 있다.
-스티븐 핑커,<빈 서판> 발췌
*빈 서판(blank slate):빈 서판은 '깨끗이 닦아낸 서판'이라는 뜻의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의역한 것이며,서판(書板)은 서책을 찍어내는 판,글씨를 쓸 때 종이 밑에 받치는 널조각 등을 의미한다.
제시문 (라)
인간의 내면,혹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많은 철학자들이 이전에 해석해왔던 것처럼 텅 빈 백지의 상태는 아니다. 인간의 특정한 행동은 전적으로 외부의 환경이나 체제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저 옛날,맹자가 말한 것처럼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게 되면 누구나 불안하고 걱정되어 손을 뻗어 구해줄 것이다.
마음은 결코 빈 서판이 아니다. 빈 서판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빈 서판은 아무것도 못한다.
서판에 새겨진 무엇인가가 패턴을 인식하고,그 패턴을 다른 때에 학습한 패턴들과 결합하고,그 조합을 이용해 새로운 생각을 서판에 쓰고,그 결과를 읽고 목표를 향해 행동을 이끌어 가야 한다.
확실한 예는 노암 촘스키의 언어 혁명이다. 언어는 창조적이고 가변적인 행동의 축약본이다.
대부분의 발화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새로운 단어 조합이다.
촘스키의 지적에 따르면,언어는 그 엄청난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언어는 규칙과 패턴을 따른다. 그리고 언어의 경우처럼,학습해야 할 문화적 부분들을 학습하는 것도 정신적 연산을 위한 선천적 메커니즘이 없다면 완전히 불가능할 것이다.
다양한 문화에 산재하는 피상적 차이 밑에는 보편적인 정신 메커니즘이 놓여 있다.
-스티븐 핑커,<빈 서판> 발췌
<문제1>
제시문 (가)의 실험 내용 및 결과가 의미하는 바를 서술하고,제시문 (가)의 실험결과를 적용하여 제시문 (나)에 나타난 아이히만의 변론의 요지를 평가하시오.(600~800자)
<문제2>
제시문 (다)와 (라)의 견해를 대비시켜 보고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여 다른 입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시오.(800~1000자)
“논증력 키워야 논술 실력의 정점에 오를수 있다”
⊙ 출제 의도 및 주제 설명
열 번째를 맞이한 이번 생글 경시대회 논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묶일 수 있다.
대상세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탐구 속에 문득 인간이 스스로 던진 질문, 그런데 우리,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해묵은 듯 보이는 선천-후천의 논쟁이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더욱 명료하게 유전-환경, 본성-양육의 구도로 구체화되며 지난 100여 년간 꾸준히 논의되어 온 것이다.
양육에 대한 관점이 지배적이던 상황에서 '유전자'를 내세우며 하버드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인간 본성을 논의하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세상에 제시해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은 다시 여러 학문의 쟁점이 되었다.
에드워드 윌슨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합, '사회생물학'을 주창했듯 이미 주제 자체가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간학문적 성격을 갖고 있어 통합 논술을 지향하는 대입 논술 고사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여러 학교에서 이미 출제된 바 있다.
또한, 인간 게놈 지도 완성, 인간 복제 등 최근 과학 기술의 성과를 반영한 여러 논의거리도 근원적으로는 이러한 질문을 벗어나지 못한다.
간명하게 선천, 후천에 대해 직관적으로 사고를 끌어내며 위와 같은 물음에 대응할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질문인 것도 사실이다.
어느 사회생물학적 입장도 인간의 후천적 특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상, 어느 후천주의자도 유전을 부정하지 않으며 선천주의자 역시 마찬가지로 후천을 부정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도 극단적 이분법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든 꽤나 힘든 주제이고 질문이지만 이를 놓고 입체적 사고와 논증 구성을 시도해보는 것은 논술 실력을 높이는 데 무척 도움이 될 것이다.
⊙ 논제 해설
생글 경시대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라는 요구만큼이나 괴롭고 피하고 싶은 논제, 즉 '평가하기'를 두 문제 모두 요구하는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응시생들은 황량한 들판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홀로 서늘한 바람을 맞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평가하기 논제는 전반적인 이해력을 기반으로 입체적인 논제 접근을 통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며, 이를 표현할 합당한 어휘와 문장을 활용해 자신의 논증으로 구성해 내는 포괄적인 글쓰기 능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견해를 쓰라는 요구와 함께 가장 골치 아픈 논제로 보이지만 그만큼 논술의 종합적인 실력을 높이는 데는 반복해서 시도해 볼 만한 논제이다.
'평가'는 사전적 의미로 보면 어떤 대상의 가치를 규명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교육에서의 평가는 학업 성취 성과의 판단, 골동품 등의 물건의 가치의 판단, 면접 등에 의한 인성의 판단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실시되고 있다. 너무 어려운가. 쉽게 생각해보자.
어제 학교 앞에서 먹은 분식점 떡볶이에 대해 친구들과 평가해보자. 어떻게 말할 것인가?
맛있다, 맛없다는 식의 종합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세부로 들어가면, 떡은 너무 얇아서 씹는 맛이 부족하고, 양념은 너무 달아서 몇 개만 먹으면 곧바로 질리게 된다…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다.
지금 바로 평가를 하고 있는 중이다.
⊙ 1번 문항 해설
나치의 장교들이 어떻게 최고 사령관의 명령을 받들어, 1200만명의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가스를 마시게 하였는지 의문을 던져보자.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이 제시문 (가)에 등장한다.
이어서 (나)에서는 나치 독일의 학살 가담자로 체포돼 사형당한 아이히만의 상황을 분석한 내용이다.
1번 논제는 (가)에 나타난 실험 내용 및 결과를 (나)에 등장하는 아이히만의 변론에 적용시켜 평가해 보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제시문부터 정리해보자.
제시문 (가)는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내용과 결과를 보여준다.
단어 게임에서 전기충격을 가하는 이 실험은 인간이 비합리적이고 억압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이유는 성격이나 본성보다는 상황에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전제로 한 실험이다.
60%가 넘는 피험자들이 최고단계까지 전기충격을 가한 실험 결과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이러한 결과는 단지 심리학적 실험의 꾸며진 분위기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관계에서 관한 좀 더 일반적인 무엇이 작용한 결과인가 또는 실제로 인간 본성 그 자체에 관한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가.
이러한 밀그램의 실험은 평범한 사람이 어떤 권위와 체계 내에 위치하게 되면 쉽게 권위에 복종해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일(이러한 일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비도덕적으로 받아들일 것임에도)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어서 권위와 복종, 심지어 인간 본성에 관해 그리고 인간 본성 중 어느 정도가 내부적인 요인에 따른 것인지 또는 외부 환경에 따른 것인지에 관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다음은 한나 아렌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일부가 수록된 제시문 (나)를 보자. 제시문에 나타난 아이히만의 변론은 한마디로 자신은 결코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명령하는 체계, 권위에 복종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가)실험을 아이히만의 경우에 적용하면, 아이히만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잘못된 것이고, 오히려 그러한 행동을 유발한 체계, 상황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평가를 하라고 요구했으니, 이러한 아이히만의 변론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 결점은 없는지 등 넓은 견지에서 두루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면 아이히만의 변론에 대해서 옹호의 견해를 보일 수 있으나 반면에, 아무리 체계 속에 억압당하고 있었다고 해도 자신의 자유의지를 발휘해 충분히 벗어날 수 있지 않은가, 군인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농부가 될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반문도 가능할 수 있다.
⊙ 2번 문항 해설
다음으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베스트셀러 <빈 서판> 내용을 통해 인간 본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문항 2를 살펴보자.
겉보기에 1번과 분리된 논제로 구성돼 있으나, 실제로는 1번 문항도 논거로 활용 또한 평가하며 자신의 견해를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명시적인 요구가 아니기 때문에 1번 논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해도 문제될 소지는 없다.
기본적으로 제시문(다), (라)는 서로 상반되는 입장이다.
(다)는 인간 본성은 마치 백지와 같다는 입장으로 어떤 특정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견해이며, (라)는 어떤 인간의 가능한 현상이 일어나기 위한 인간 보편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 2의 두 제시문 모두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에 수록된 내용으로 인간본성에 대해 인간이 본성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지 아니면 본성은 없으며 행동은 외부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생각하고 하나의 입장을 선택해 다른 입장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기보다는 '비판적 평가'라는 요구에 부응해 다각도의 논의 전개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비판적으로'는 상대방의 견해에 대해 '삐딱하게' 바라보고, 부족한 점을 끄집어내어 곱씹어 보라는 요구이다.
2번 논제 작성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하나 선택하고 다른 하나의 입장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따져보고 궁리해야 한다.
이 논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입장을 선택하되(논제 요구 사항이므로) 유연한 태도로 반대편 입장 의견을 고찰해 봐야 한다.
혹시 일부 인정할 것은 없는지 있다면 어떤 것이고, 이에 대해 재반론은 가능한지 등을 따져볼 수도 있다.
빈 서판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반대편을 공격한다면, 유전학, 선천주의적 입장 등은 우생학을 낳고, 이는 독일 나치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등 인류사에 악한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반면에 그러한 입장이 갖는 약점을 재공격할 수 있다.
즉 '무엇이 어떠하다'라는 사실 판단의 문제, 존재의 문제는 '그것이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 가치 판단의 문제와는 별개라는 반박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여성은 출산의 신체구조를 지녔다. 그러므로 여성의 임무는 출산이다"라는 식의 판단은 오류이다.
(이런 오류를 전문용어로는 '자연주의오류'라고 칭하기도 한다)
'비판적 평가'를 충분하게 이루어내는 게 무척 까다롭고 힘들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제 해결 시도와 경험은 심신의 건강에 큰 이로움이 될 것이다.
⊙ 평가기준
논술의 평가 항목은 대체로 이해력, 논리력, 창의력, 표현력 등으로 구분 가능하다.
이번 경시대회 두 논제 모두 평가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는데 이는 곧 논증을 제대로 구성하라는 요구가 숨겨져 있으며, 따라서 평가 항목에서는 창의력과 논리력 배점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창의력은 나만의 그 무엇을 말한다든지, 비정상적인 어떤 엉뚱한 공상과 같은 것은 모두 창의력과는 상관없다.
논술에서 창의력은 다각도의 입체적 사고력의 문제다. 진부함을 최소화하고 논의 전개의 심도를 가능한 높이는 것이다. 한편 논증력이 뛰어난 글은 전반적으로 충실하고 밀도 높은 글로 완성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주장과 논거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설득력 있고, 조리 있는 글이다.
논술 실력의 정점에는 논증력이 얼마나 우수한가의 문제가 늘 걸려 있게 마련이다.
우수한 논증, 창의력 있는 논증을 위해서 논증 구성에서 반론과 재반론의 구도를 엮어 나가는 방식을 연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박성진 S · 논술 선임연구원 moke@hanmail.net
<실험 준비>
▼예일대 심리학과 스탠리 밀그램 교수 이름으로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를 측정한다는 광고를 지역 신문에 내고 실험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한다. 모집된 대상자들은 실험의 진짜 목적을 모른다.
▼모집 대상은 20~ 50세 평범한 남녀 40명이며 모두 일정액의 실험 참가비를 지급받는다.
▼실험 대상을 교사 역할과 학생 역할로 구분한다. 그러나 학생역할의 피험자는 실험에 대해 미리 알고 있는 조력자이다.
▼전기 충격기는 가짜이며,충격에 대한 반응 역시 학생역할을 하는 조력자의 연기일 뿐이다.
아래 내용은 1960년대 미국 예일대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에 의해 수차례 이루어졌던 인간에 대한 실험 내용과 결과를 기술하고 있다.
<실험 방법 및 진행>
▼실험 참가자는 실험자(E)와 피험자(T · 교사역할),조력자(L · 학생역할)로 구성된다.
▼실험은 삼자 모두 대면할 수 있는 실내 공간에서 이루어지며,E와 T는 동일 공간에,L은 투명 막으로 분리된 공간에 위치한다.
▼E는 T에게 L을 테스트할 문제를,L에게는 암기할 단어를 제시한다.
▼E는 T에게 L을 테스트한 후 L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볼트(V)부터 시작해 450V까지 한번에 15볼트씩의 전기 충격 수준을 한 단계씩 높이라고 지시한다.
▼각 스위치마다 '약한 충격'부터 '위험:심각한 충격'까지 단계별로 언어로 표기되어 있다. 마지막 두 단계는 'XXX'로 표기되어 있다.
▼E는 L에게 평균 3문제 마다 1개씩 틀리도록 미리 요구했다.
▼전기 충격에 반응하는 L 의 음성반응은 전압 수준에 따라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05V까지는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고 약간의 신음소리만 조금 낸다.
120V에서 "고통스럽다"고 불쾌감을 드러낸다.
150V에서는 "나를 내보내 주세요"라고 소리친다.
이후로는 전압이 오를 때마다 계속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를 덧붙인다.
270V쯤에서는 괴로운 비명을 지른다.
300V에서는 더 이상 실험에 응하지 않겠다며 필사적으로 소리친다.
▼E는 T가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면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자극문구'를 사용한다.
이때 단호하면서 상대를 무시하지 않는 어조로 말한다.
① "계속해 주세요. "
② "실험을 위해서는 계속해야 합니다. "
③ "계속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
④ "당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계속해야만 합니다. "
(단,자극 문구는 단계적으로 사용한다. 즉,자극 문구1이 실패할 경우에만 자극 문구2를 사용할 수 있다. )
*특별자극문구사용:L의 반응에 대해 T가 L이 심장마비 등 신체적 상해를 입지 않을 것인지 우려하거나 질문하면 다음과 같은 특별 자극 문구를 사용한다.
"충격은 고통스러울지 모르나,실제로 인체에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닙니다.
안심하고 실험에 응해주시고 만일 무슨 일이 생길 시에는 우리가 책임질 것입니다. "
▼E는 T가 위의 자극문구 ④ 이후에도 명령을 거부하면 실험을 종료한다.
실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 (표 참조 ) -이상 실험 내용 및 표:스탠리 밀그램,<권위에 대한 복종>에서 발췌 및 재구성
인간의 본성은 텅 빈 백지상태이다?
제시문(나)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0년 5월11일 저녁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에서 체포돼 9일 후에 이스라엘로 압송,1961년 4월11일에 예수살렘 지방 법원으로 재판받기 위해 이송된 뒤 15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그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인류에 대한 범죄 및 나치스 통치 기간,특히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그에 대한 재판의 근거가 되는 1950년에 입안된 나치스 및 나치 협력자 처벌법은 "이러한…범죄 가운데 하나라도 범한 자는…사형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각의 죄목에 대해 아이히만은 '기소장이 의미하는 바 대로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아이히만은 무엇보다도 살인죄에 대한 기소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나는 유대인이나 비유대인을 결코 죽인 적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어떤 한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
나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여하튼 난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 그가 나중에 이 내용을 보충 설명하면서,"그 일은 그냥 일어났던 일이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가 죽게 되는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을 받았더라고 그대로 수행했으리라는 데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살인의 방조자로 기소되었다면 유죄라고 인정했을까? 아마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조건을 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은 회고를 할 때만 범죄일 뿐,자기는 언제나 법률을 준수하는 시민이었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최선을 다해 수행한 히틀러의 명령은 제3제국에서는 '법의 효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이히만의 최종 언도가 나왔다. 정의에 대한 그의 희망들은 무산되었다.
비록 그가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했다 하더라도 법정은 그를 믿지 않았다.
법정은 그를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니었고,그는 결코 인류의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죄는 그의 복종에서 나왔지만,복종은 덕목으로 찬양된다.
그의 덕은 나치스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배집단의 일원이 아니었고,그는 희생자였으며,오직 지도자들만 처벌받아야 한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는 오류의 희생자이다"라고 아이히만은 말했다…중략… 이틀 후인 1961년 12월15일 금요일 오전 9시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한나 아렌트,<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제시문 (다)
사상이란 경험에서 비롯되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의견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떤 마음은 진리를 파악할 능력을 갖추었고 다른 마음은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두 마음이 억압되기보다는 관대하게 용인되어야 한다.
로크의 빈 서판* 개념은 또한 세습적인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 토대를 침식시켰다.
모든 사람이 백지 상태로 출발했다면 왕과 귀족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타고난 지혜나 미덕을 가졌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그것은 또한 노예 제도에 대한 반론이기도 했다. 더 이상 노예를 선천적으로 열등하거나 천한 존재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빈 서판에 따르면 인종,인종 집단,성,개인들 간의 어떤 차이도 선천적 체질 차이가 아니라 경험상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학업 부진,가난,반사회적 행동은 개선될 수 있으며,사실 개선되지 않는 것에는 책임이 없다. 그리고 성이나 인종 집단 등 이른바 선천적 특성들을 근거로 삼아 차별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합리한 일이다.
로크의 연상심리학은 그 후 오늘날까지 유용한 심리학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행동주의의 창시자 존 B 왓슨은 빈 서판을 주장한 20세기 최고의 선언을 발표했다.
나에게 열두 명의 건강한 아이를 주고 내가 직접 하나하나 꾸민 세계에서 그 아기들을 키우게 한다면,장담하건대 나는 어떤 아기라도 그 재능,기호,경향,능력,소질,조상들의 경력과는 무관하게 내가 선택한 유형의 사람-의사,변호사,예술가,상인,심지어 거지나 도둑-으로 길러 낼 수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부인,개인의 마음에 대한 문화의 자율성은 사회학의 창시자 에밀 뒤르켐에 의해서도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사회적 현상이 심리적 현상에 의해 직접적으로 설명될 때마다 우리는 그 설명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확인하게 된다. …집단의 사고,감정,행동 방식은 고립된 구성원들의 그것과는 아주 다르다.
…만약 현상들에 대한 설명을 개인으로 시작한다면,집단적 사건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개인의 본성은 사회적 요소에 의해 형성되고 변형되는 부정형의 재료에 불과하다.
그것의 영향은 오로지 개인의 전반적인 태도에,막연하고 따라서 변화 가능한 성향들에만 국한된다.
"사회적 사실을 결정하는 주요 원인은 개인들의 의식 상태가 아니라 그에 앞선 사회적 사실들에서 찾아야 한다. "
이러한 초유기체 학설은 현대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사회'라는 개념을 마치 특정한 개인처럼 죄악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도덕적 행위자로 구체화해 생각하는 경향의 기초에 그 학설이 놓여 있다.
-스티븐 핑커,<빈 서판> 발췌
*빈 서판(blank slate):빈 서판은 '깨끗이 닦아낸 서판'이라는 뜻의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의역한 것이며,서판(書板)은 서책을 찍어내는 판,글씨를 쓸 때 종이 밑에 받치는 널조각 등을 의미한다.
제시문 (라)
인간의 내면,혹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많은 철학자들이 이전에 해석해왔던 것처럼 텅 빈 백지의 상태는 아니다. 인간의 특정한 행동은 전적으로 외부의 환경이나 체제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저 옛날,맹자가 말한 것처럼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게 되면 누구나 불안하고 걱정되어 손을 뻗어 구해줄 것이다.
마음은 결코 빈 서판이 아니다. 빈 서판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빈 서판은 아무것도 못한다.
서판에 새겨진 무엇인가가 패턴을 인식하고,그 패턴을 다른 때에 학습한 패턴들과 결합하고,그 조합을 이용해 새로운 생각을 서판에 쓰고,그 결과를 읽고 목표를 향해 행동을 이끌어 가야 한다.
확실한 예는 노암 촘스키의 언어 혁명이다. 언어는 창조적이고 가변적인 행동의 축약본이다.
대부분의 발화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새로운 단어 조합이다.
촘스키의 지적에 따르면,언어는 그 엄청난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언어는 규칙과 패턴을 따른다. 그리고 언어의 경우처럼,학습해야 할 문화적 부분들을 학습하는 것도 정신적 연산을 위한 선천적 메커니즘이 없다면 완전히 불가능할 것이다.
다양한 문화에 산재하는 피상적 차이 밑에는 보편적인 정신 메커니즘이 놓여 있다.
-스티븐 핑커,<빈 서판> 발췌
<문제1>
제시문 (가)의 실험 내용 및 결과가 의미하는 바를 서술하고,제시문 (가)의 실험결과를 적용하여 제시문 (나)에 나타난 아이히만의 변론의 요지를 평가하시오.(600~800자)
<문제2>
제시문 (다)와 (라)의 견해를 대비시켜 보고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여 다른 입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시오.(800~1000자)
“논증력 키워야 논술 실력의 정점에 오를수 있다”
⊙ 출제 의도 및 주제 설명
열 번째를 맞이한 이번 생글 경시대회 논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묶일 수 있다.
대상세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탐구 속에 문득 인간이 스스로 던진 질문, 그런데 우리,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해묵은 듯 보이는 선천-후천의 논쟁이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더욱 명료하게 유전-환경, 본성-양육의 구도로 구체화되며 지난 100여 년간 꾸준히 논의되어 온 것이다.
양육에 대한 관점이 지배적이던 상황에서 '유전자'를 내세우며 하버드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인간 본성을 논의하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세상에 제시해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은 다시 여러 학문의 쟁점이 되었다.
에드워드 윌슨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합, '사회생물학'을 주창했듯 이미 주제 자체가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간학문적 성격을 갖고 있어 통합 논술을 지향하는 대입 논술 고사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여러 학교에서 이미 출제된 바 있다.
또한, 인간 게놈 지도 완성, 인간 복제 등 최근 과학 기술의 성과를 반영한 여러 논의거리도 근원적으로는 이러한 질문을 벗어나지 못한다.
간명하게 선천, 후천에 대해 직관적으로 사고를 끌어내며 위와 같은 물음에 대응할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질문인 것도 사실이다.
어느 사회생물학적 입장도 인간의 후천적 특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상, 어느 후천주의자도 유전을 부정하지 않으며 선천주의자 역시 마찬가지로 후천을 부정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도 극단적 이분법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든 꽤나 힘든 주제이고 질문이지만 이를 놓고 입체적 사고와 논증 구성을 시도해보는 것은 논술 실력을 높이는 데 무척 도움이 될 것이다.
⊙ 논제 해설
생글 경시대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라는 요구만큼이나 괴롭고 피하고 싶은 논제, 즉 '평가하기'를 두 문제 모두 요구하는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응시생들은 황량한 들판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홀로 서늘한 바람을 맞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평가하기 논제는 전반적인 이해력을 기반으로 입체적인 논제 접근을 통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며, 이를 표현할 합당한 어휘와 문장을 활용해 자신의 논증으로 구성해 내는 포괄적인 글쓰기 능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견해를 쓰라는 요구와 함께 가장 골치 아픈 논제로 보이지만 그만큼 논술의 종합적인 실력을 높이는 데는 반복해서 시도해 볼 만한 논제이다.
'평가'는 사전적 의미로 보면 어떤 대상의 가치를 규명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교육에서의 평가는 학업 성취 성과의 판단, 골동품 등의 물건의 가치의 판단, 면접 등에 의한 인성의 판단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실시되고 있다. 너무 어려운가. 쉽게 생각해보자.
어제 학교 앞에서 먹은 분식점 떡볶이에 대해 친구들과 평가해보자. 어떻게 말할 것인가?
맛있다, 맛없다는 식의 종합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세부로 들어가면, 떡은 너무 얇아서 씹는 맛이 부족하고, 양념은 너무 달아서 몇 개만 먹으면 곧바로 질리게 된다…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다.
지금 바로 평가를 하고 있는 중이다.
⊙ 1번 문항 해설
나치의 장교들이 어떻게 최고 사령관의 명령을 받들어, 1200만명의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가스를 마시게 하였는지 의문을 던져보자.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이 제시문 (가)에 등장한다.
이어서 (나)에서는 나치 독일의 학살 가담자로 체포돼 사형당한 아이히만의 상황을 분석한 내용이다.
1번 논제는 (가)에 나타난 실험 내용 및 결과를 (나)에 등장하는 아이히만의 변론에 적용시켜 평가해 보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제시문부터 정리해보자.
제시문 (가)는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내용과 결과를 보여준다.
단어 게임에서 전기충격을 가하는 이 실험은 인간이 비합리적이고 억압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이유는 성격이나 본성보다는 상황에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전제로 한 실험이다.
60%가 넘는 피험자들이 최고단계까지 전기충격을 가한 실험 결과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이러한 결과는 단지 심리학적 실험의 꾸며진 분위기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관계에서 관한 좀 더 일반적인 무엇이 작용한 결과인가 또는 실제로 인간 본성 그 자체에 관한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가.
이러한 밀그램의 실험은 평범한 사람이 어떤 권위와 체계 내에 위치하게 되면 쉽게 권위에 복종해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일(이러한 일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비도덕적으로 받아들일 것임에도)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어서 권위와 복종, 심지어 인간 본성에 관해 그리고 인간 본성 중 어느 정도가 내부적인 요인에 따른 것인지 또는 외부 환경에 따른 것인지에 관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다음은 한나 아렌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일부가 수록된 제시문 (나)를 보자. 제시문에 나타난 아이히만의 변론은 한마디로 자신은 결코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명령하는 체계, 권위에 복종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가)실험을 아이히만의 경우에 적용하면, 아이히만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잘못된 것이고, 오히려 그러한 행동을 유발한 체계, 상황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평가를 하라고 요구했으니, 이러한 아이히만의 변론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 결점은 없는지 등 넓은 견지에서 두루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면 아이히만의 변론에 대해서 옹호의 견해를 보일 수 있으나 반면에, 아무리 체계 속에 억압당하고 있었다고 해도 자신의 자유의지를 발휘해 충분히 벗어날 수 있지 않은가, 군인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농부가 될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반문도 가능할 수 있다.
⊙ 2번 문항 해설
다음으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베스트셀러 <빈 서판> 내용을 통해 인간 본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문항 2를 살펴보자.
겉보기에 1번과 분리된 논제로 구성돼 있으나, 실제로는 1번 문항도 논거로 활용 또한 평가하며 자신의 견해를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명시적인 요구가 아니기 때문에 1번 논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해도 문제될 소지는 없다.
기본적으로 제시문(다), (라)는 서로 상반되는 입장이다.
(다)는 인간 본성은 마치 백지와 같다는 입장으로 어떤 특정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견해이며, (라)는 어떤 인간의 가능한 현상이 일어나기 위한 인간 보편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 2의 두 제시문 모두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에 수록된 내용으로 인간본성에 대해 인간이 본성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지 아니면 본성은 없으며 행동은 외부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생각하고 하나의 입장을 선택해 다른 입장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기보다는 '비판적 평가'라는 요구에 부응해 다각도의 논의 전개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비판적으로'는 상대방의 견해에 대해 '삐딱하게' 바라보고, 부족한 점을 끄집어내어 곱씹어 보라는 요구이다.
2번 논제 작성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하나 선택하고 다른 하나의 입장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따져보고 궁리해야 한다.
이 논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입장을 선택하되(논제 요구 사항이므로) 유연한 태도로 반대편 입장 의견을 고찰해 봐야 한다.
혹시 일부 인정할 것은 없는지 있다면 어떤 것이고, 이에 대해 재반론은 가능한지 등을 따져볼 수도 있다.
빈 서판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반대편을 공격한다면, 유전학, 선천주의적 입장 등은 우생학을 낳고, 이는 독일 나치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등 인류사에 악한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반면에 그러한 입장이 갖는 약점을 재공격할 수 있다.
즉 '무엇이 어떠하다'라는 사실 판단의 문제, 존재의 문제는 '그것이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 가치 판단의 문제와는 별개라는 반박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여성은 출산의 신체구조를 지녔다. 그러므로 여성의 임무는 출산이다"라는 식의 판단은 오류이다.
(이런 오류를 전문용어로는 '자연주의오류'라고 칭하기도 한다)
'비판적 평가'를 충분하게 이루어내는 게 무척 까다롭고 힘들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제 해결 시도와 경험은 심신의 건강에 큰 이로움이 될 것이다.
⊙ 평가기준
논술의 평가 항목은 대체로 이해력, 논리력, 창의력, 표현력 등으로 구분 가능하다.
이번 경시대회 두 논제 모두 평가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는데 이는 곧 논증을 제대로 구성하라는 요구가 숨겨져 있으며, 따라서 평가 항목에서는 창의력과 논리력 배점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창의력은 나만의 그 무엇을 말한다든지, 비정상적인 어떤 엉뚱한 공상과 같은 것은 모두 창의력과는 상관없다.
논술에서 창의력은 다각도의 입체적 사고력의 문제다. 진부함을 최소화하고 논의 전개의 심도를 가능한 높이는 것이다. 한편 논증력이 뛰어난 글은 전반적으로 충실하고 밀도 높은 글로 완성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주장과 논거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설득력 있고, 조리 있는 글이다.
논술 실력의 정점에는 논증력이 얼마나 우수한가의 문제가 늘 걸려 있게 마련이다.
우수한 논증, 창의력 있는 논증을 위해서 논증 구성에서 반론과 재반론의 구도를 엮어 나가는 방식을 연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박성진 S · 논술 선임연구원 mok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