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바라보다’ 를 삼킨 ‘쳐다보다’


지난 10월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식에서 화젯거리는 단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등장한 셋째 아들 김정은이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을 통해 생중계한 이날 행사에서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옆에서 열병식을 참관했다.

이튿날 우리 신문들은 일제히 두 사람이 함께 서있는 사진을 실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 열병식에서 옆에 앉은 셋째 아들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쳐다보고 있다.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일인 10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을 참관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인 아들 김정은을 바라보고 있다.

신문마다 문장 형식은 다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서로 대동소이했다. 위의 두 문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쓰임새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개의 단어가 눈에 띈다. '쳐다보다'와 '바라보다'가 그것이다.

'바라보다'는 말 그대로 '어떤 대상을 똑바로 향하여 보다'란 뜻이다. '바라다보다'라고도 한다.

'정면을 바라보다/불러도 돌아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고 뛰어라/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처럼 쓰인다.

이에 비해 '쳐다보다'는 '위를 향하여 올려 보다'란 뜻의 말이다.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다/단상 위의 교장 선생님을 쳐다보다'라고 하는 게 전형적인 쓰임새다.

두 말의 결정적 차이는 대등한 눈높이에서 보느냐, 눈을 위로 올려다보느냐에 따른 것이다.

이는 단어를 형성하는 말을 살펴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우선 '바라보다'는 '바라-+-아+보다'의 구성이다.

'바라다'는 몇 가지 뜻이 있지만 이때의 쓰임은 '어떤 것을 향하여 보다'란 뜻이다.

'우리는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 앞만 보고 달렸다'가 그 쓰임새이다.

'쳐다보다'는 '치어다보다'의 준말이다. 이 말은 '치-(어간)+-어다(어미)+보-(어간)+-다(어미)'로 분석된다.

국립국어원의 국어 상담 자료(온라인 가나다)에 따르면 '치-'는 과거에는 어근이었다가 오늘날에는 접두사화한 것으로 설명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치-'를 (일부 동사 앞에 붙어) '위로 향하게' 또는 '위로 올려'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풀고 있다.

가령 '치뜨다/치닫다/치받다/치솟다' 같은 데 붙은 '치-'가 모두 '위로 향하다'란 의미를 더해주는 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두 말의 의미상 차이와 쓰임새가 분명히 구별된다.

하지만 <표준…>은 올림말 '쳐다보다'에 '얼굴을 들어 바로 보다'란 풀이도 더해놓았다.

또 그 용례로 '창밖을 쳐다보다/눈을 쳐다보며 이야기하다/버스 안의 손님들이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를 제시했다.

결국 '바라보다'나 '쳐다보다'나 의미와 쓰임새에서 별 차이가 없게 된 셈이다.

그러니 김정일이 김정은을 '바라보는' 모습을 두고 '쳐다본다'고 해도 틀렸다고 말할 근거가 없어진 것이다.

본래 '쳐다보다'는 쓰임새가 제한적인 말이었다. 금성판 <훈민정음 국어사전>(2004년)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는 '쳐다보다'를 첫째 '(사람이 눈의 위치보다 높은 곳에 있는 대상을) 고개를 들어서 보다',둘째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반항하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보다'로 풀고 있다.

둘째 의미의 용례로 '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를 들었다.

민중서관의 <새로나온 국어대사전>(2005년)에선 '쳐다보다'를 '고개를 들고 치떠보다'로,한글학회 역시 <우리말 큰사전>(1992년)에서 '얼굴을 들고 치떠보다'로 못 박아 놨다.

그러니 '바라보다'와 '쳐다보다'는 엄연히 쓰임새가 다른 말이었던 것이다.

<표준…>이 '쳐다보다'의 풀이에 '바라보다'의 의미를 넣은 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쓰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표준…>에는 이 말 외에도 같은 이유로 사전에 올린 사례가 더러 있다.

'경우'와 '경위'의 구별이 없어진 것도 한 예이다.

'그 이는 경우가 참 바르다'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이때의 '경우'는 그동안 '경위'를 바른 말로 해온 말이다.

'경위(涇渭)'란 '사리의 옳고 그름이나 이러하고 저러함에 대한 분별'을 뜻하는 말로, 중국 징수이(涇水) 강의 물은 항상 흐리고 웨이수이(渭水) 강의 물은 맑아 뚜렷이 구별된다는 데서 온 말이다.

'경위가 밝다' '경위가 없다'와 같이 쓰인다.

그런데 <표준…>에서 올림말 '경우(境遇)'에 이 풀이를 올려놨다.

그래서 이제는 '경우가 밝다'라는 말도 가능하게 됐다. 본래 '경우'는 '놓여 있는 조건이나 놓이게 된 형편,사정'이란 뜻으로 '만일의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처럼 쓰이는 말이다.

두 말의 쓰임새가 다르므로 구별해 써야 할 말이고 구별해 써 왔던 것이다. <표준…>에서는 이를 본래의 쓰임새에서는 벗어났지만 현실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많이 굳어졌다고 판단해 표준어로 수용한 듯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우'와 '경위','바라보다'와 '쳐다보다'를 구별해 사용해온 사람들에겐 당혹스러운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