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이요, 모르는 것은 역선택이다
[경제교과서 뛰어넘기] (25) 역선택
대학에 입학해서 첫 전공수업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수업에 들어오신 경제학과 교수님은 왜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느냐?

경제학은 배워서 뭐하려고 하냐? 라는 등의 질문을 통해서 학생들이 경제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물어보셨다.

그리고 나서 앞으로 4년 동안 경제학을 배워야 하는 학생들에게 경제학이 무엇이며, 경제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용한 학문인지 소개하기 위해 개념 하나를 소개하겠다고 하셨다.

그때 교수님이 경제학을 소개하기 위해 던진 화두가 바로 '역선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수님이 역선택을 통해서 경제학의 화두를 던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역선택이란 거래와 관련하여 불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경제 주체가 부족한 정보로 인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경제 주체와 거래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학이란 학문의 많은 부분이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논의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역선택을 통해 경제학이 어떠한 특성을 가진 학문인지 소개한 교수님의 선택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더불어 역선택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경제학적 지식이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함께 알려줄 수 있었다.

이제 역선택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뷔페 음식점을 운영하는 주인이 있다고 하자. 뷔페식당은 일정 금액만 내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따라서 뷔페식당 주인은 적게 먹는 손님을 더욱 선호할 것이다. 어차피 모든 손님에게 동일한 금액을 받게 되는데 당연히 적게 먹는 손님이 방문해야 이익이 더 많이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 뷔페 음식점을 주로 이용하는 손님들은 식성이 좋은 손님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자신의 식성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일반 음식점에 갈 경우 배부르게 먹으려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하지만 뷔페 음식점을 이용할 경우 일정 금액만 내면 마음껏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뷔페 음식점을 더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뷔페 주인이 손님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다면 식성이 좋은 손님들에게는 식당 이용료를 추가로 받을 수 있겠지만, 손님들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식당 주인은 별 수 없이 역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위의 사례가 판매자가 구매자에 비해 정보가 부족할 때 발생하는 역선택이라면 그와는 반대로 구매자가 판매자에 비해 정보가 부족할 때도 역선택은 발생할 수 있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혈액은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혈액을 돈 주고 사는 매매를 법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혈액의 공급은 오직 헌혈을 통해서만 조달하고 있도록 법규화했다.

이 역시 역선택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혈액 거래에 있어 병원은 혈액을 공급받는 입장이므로 구매자라고 할 수 있다.

구매자인 병원은 혈액을 공급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

혈액 공급자들의 건강에 대한 상황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혈액 시장에서는 구매자가 공급자보다 더 적은 정보를 갖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혈액시장을 통해서 공급된 혈액들은 나쁜 혈액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조사에 의하면 자신의 혈액을 판매해서 돈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의 경우 정상인에 비해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건강하지 못해 직장을 잡기도 힘들고 해서 혈액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혈액이 거래되던 당시 심장 수술을 받은 환자의 30%가 수혈받은 혈액으로부터 간염에 감염됐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 역시 병원이 혈액 공급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선택에 직면한 것이다.

역선택의 문제는 비단 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나 기업, 기관에서도 얼마든지 역선택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금융시장의 역선택 사례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금융시장에서 자금에 대한 초과수요가 발생하면 은행들은 금리를 올려 추가 수익을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자금의 수요자인 기업의 특성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는 대출을 통해 이익이 대출 이자보다 높을 거라는 판단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사업의 경우에는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큰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에는 위험한 사업에 진출하여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기업만이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안전하지만 수익률이 낮은 기업들은 목표한 수익률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높은 이자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대출을 꺼리게 될 것이다.

즉, 은행이 금리를 올릴 경우에는 위험한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들이 주로 대출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사업의 부도나 파산으로 인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 또한 높아지게 된다.

결국 금리를 높이면 은행은 추가적인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과 위험한 사업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주로 대출을 받게 되어 원금과 이자 비용이 회수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부정적인 측면 모두 갖게 된다.

따라서 은행은 금리를 인상할 경우 얻어질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어떤 요인 더 큰지를 면밀히 분석,금리를 결정한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자.

교수님은 이러한 역선택의 개념과 사례를 통해 경제학이 가진 유용성과 학문적 흥미로움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역선택을 소개하며 대학생활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셨다.

고용주가 근로자를 채용할 때, 생산성이 높은 근로자라면 높은 임금을 주고라도 회사에 채용할 용의가 있지만,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라면 낮은 임금만 주려 들 것이다.

하지만 고용주는 처음 보는 근로자가 생산성이 높은 근로자인지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인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평균적인 생산성에 근거하여 평균적인 임금을 지급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높은 생산성을 보유한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게 되므로, 더 이상 근무할 이유가 없어 이직을 하게 된다.

결국 회사에는 낮은 생산성을 보유한 사원만 남게 되고, 고용주는 이에 다시 추가적으로 임금을 낮추게 된다. 이 경우 그나마 남아 있던 생산성 높은 직원마저 회사를 떠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역선택의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법 또한 제시해 준다고 교수님은 설명해 주셨다.

그것은 첫째, 정보가 부족한 측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획득하거나 둘째, 정보가 충분한 측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교수님은 노동 시장의 경우에는 높은 학점을 통해서 혹은 자격증이나 높은 영어 성적 등을 통해서 자신이 높은 생산성을 보유한 노동자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시며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해서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때 수업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그 뒤로 경제 관련 질문이나 강의 도중에서 역선택 부분이 나오면 곧잘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그것은 당시 역선택을 통해서 경제학의 유용성과 필요성이 나에게 생생하게 전해졌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느낌이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인 것 같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