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눈에 띄는 이름이 없을까?"
1992년 야심차게 준비해온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삼립식품 경영진은 브랜드 작명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삼립식품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제빵시장의 대표주자였다.
그런 삼립식품이 사업다각화를 위해 과자 생산에 뛰어들면서 내놓는 제품이라 단숨에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이름이 절실했다.
"눈에 띄는 이름? …… 눈에 띄네?" 어느 날 중역회의에서 한 임원이 무심코 중얼거린 이 말에 모두의 귀가 번쩍 틔었다.
"그래,신제품 이름은 '누네띠네'로 하지."
1992년 8월에 처음 생산된 '누네띠네'는 바로 그해부터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이면서 1993년 150억원,1994년 140억원의 매출을 올려 삼립식품의 효자상품으로 떠올랐다.
삼립식품은 당시 안방극장 스타인 탤런트 최수종을 CF 전속 모델로 기용해 적극적인 제품 홍보를 병행해 스낵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크림빵과 함께 삼립식품이 지금도 '전설적인 히트상품' 가운데 하나로 꼽는 '누네띠네'는 이렇게 탄생했다.
'누네띠네'라는 작명은 물론 마케팅에서의 브랜드 작명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연음 처리를 통해 우리말 이름을 마치 영어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특히 '네'라는 음절이 반복되면서 말에 운율을 주고 시각적으로도 대구의 형태를 취해 쉽게 소비자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누네띠네'의 대중적 성공은 우리말의 흐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이후 우리말 논쟁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누네띠네'가 시장에서 호응을 얻자 이후 각종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는 방식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1993년 대전엑스포를 통해 '도우미'가 등장하자 우리말을 흘려 적는 '형태 파괴' 방식이 일상의 말에서도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해 갔다.
특히 문법성을 중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네띠네'나 '도우미' 같은 말이 우리말의 규칙성을 파괴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도우미'는 1993년 대전엑스포가 열리기 전 시민 공모를 통해 태어났다.
처음에는 '도움을 주는 이'를 뜻하는 '도움이'를 발음 그대로 흘려 쓴 것이다.
여기에다 '도움+우아함+미(美)'를 갖춘 사람이란 의미를 담아 앞글자만 따서 합성한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상징화 과정을 거친 단어다.
'도우미'는 이후 보통명사화할 정도로 쓰임이 빈번해지더니 드디어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행사 안내를 맡거나,남에게 봉사하는 요원'이란 뜻풀이로 정식 단어로 올랐다.
이로써 '도우미'는 공식적으론 문법적인 시비를 벗어났으나 우리말 운동가나 연구자들 사이에선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 말의 정당성에 대해 시비가 일었다.
'도우미'는 확실히 '우리말 지킴이' '문화 알림이' 등에서의 '지킴이'나 '알림이' 같은 말과는 다른,형태의 격식을 깬 말이다.
우리말에서 '-이'는 접미사로서,일부 명사나 동사 어간 뒤에 붙어 '사람,사물,일'의 뜻을 더하는 기능을 한다.
이 말은 생산성이 매우 높아 '때밀이/젖먹이/재떨이/옷걸이/목걸이/손톱깎이/손잡이/감옥살이/가슴앓이' 같은 파생어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우미'가 우리 말글살이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역설적이지만 전통적인 조어법을 일탈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신어의 탄생은 단순히 조어법의 잣대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왕 새로 만드는 마당에 '도움이' 또는 '도울이'로 하자는 규범 중시파의 지적도 있었지만,결국 말이란 언중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라 '도우미'가 그대로 단어로 굳어졌다.
조어법에 어긋난다고 해서 우리말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비판만 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도우미'가 몇년 만에 정식 단어로 승격한 데 비해 '누네띠네'는 여전히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단어가 되지 못한 까닭은 그 말이 특정 상표명으로서 제한적이고 한시적으로 쓰이는,유행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글이 반포된 지 564돌을 맞는 해다.
이번 주말의 한글날(10월9일)을 앞두고 신문이나 방송에선 올해도 연례행사처럼 우리말 관련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우리말을 살리고 키우기 위해선 외래어 남용 등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다른 한편으로 우리말에 대한 왜곡되고 그릇된 평가를 걸러내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1992년 야심차게 준비해온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삼립식품 경영진은 브랜드 작명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삼립식품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제빵시장의 대표주자였다.
그런 삼립식품이 사업다각화를 위해 과자 생산에 뛰어들면서 내놓는 제품이라 단숨에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이름이 절실했다.
"눈에 띄는 이름? …… 눈에 띄네?" 어느 날 중역회의에서 한 임원이 무심코 중얼거린 이 말에 모두의 귀가 번쩍 틔었다.
"그래,신제품 이름은 '누네띠네'로 하지."
1992년 8월에 처음 생산된 '누네띠네'는 바로 그해부터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이면서 1993년 150억원,1994년 140억원의 매출을 올려 삼립식품의 효자상품으로 떠올랐다.
삼립식품은 당시 안방극장 스타인 탤런트 최수종을 CF 전속 모델로 기용해 적극적인 제품 홍보를 병행해 스낵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크림빵과 함께 삼립식품이 지금도 '전설적인 히트상품' 가운데 하나로 꼽는 '누네띠네'는 이렇게 탄생했다.
'누네띠네'라는 작명은 물론 마케팅에서의 브랜드 작명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연음 처리를 통해 우리말 이름을 마치 영어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특히 '네'라는 음절이 반복되면서 말에 운율을 주고 시각적으로도 대구의 형태를 취해 쉽게 소비자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누네띠네'의 대중적 성공은 우리말의 흐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이후 우리말 논쟁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누네띠네'가 시장에서 호응을 얻자 이후 각종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는 방식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1993년 대전엑스포를 통해 '도우미'가 등장하자 우리말을 흘려 적는 '형태 파괴' 방식이 일상의 말에서도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해 갔다.
특히 문법성을 중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네띠네'나 '도우미' 같은 말이 우리말의 규칙성을 파괴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도우미'는 1993년 대전엑스포가 열리기 전 시민 공모를 통해 태어났다.
처음에는 '도움을 주는 이'를 뜻하는 '도움이'를 발음 그대로 흘려 쓴 것이다.
여기에다 '도움+우아함+미(美)'를 갖춘 사람이란 의미를 담아 앞글자만 따서 합성한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상징화 과정을 거친 단어다.
'도우미'는 이후 보통명사화할 정도로 쓰임이 빈번해지더니 드디어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행사 안내를 맡거나,남에게 봉사하는 요원'이란 뜻풀이로 정식 단어로 올랐다.
이로써 '도우미'는 공식적으론 문법적인 시비를 벗어났으나 우리말 운동가나 연구자들 사이에선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 말의 정당성에 대해 시비가 일었다.
'도우미'는 확실히 '우리말 지킴이' '문화 알림이' 등에서의 '지킴이'나 '알림이' 같은 말과는 다른,형태의 격식을 깬 말이다.
우리말에서 '-이'는 접미사로서,일부 명사나 동사 어간 뒤에 붙어 '사람,사물,일'의 뜻을 더하는 기능을 한다.
이 말은 생산성이 매우 높아 '때밀이/젖먹이/재떨이/옷걸이/목걸이/손톱깎이/손잡이/감옥살이/가슴앓이' 같은 파생어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우미'가 우리 말글살이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역설적이지만 전통적인 조어법을 일탈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신어의 탄생은 단순히 조어법의 잣대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왕 새로 만드는 마당에 '도움이' 또는 '도울이'로 하자는 규범 중시파의 지적도 있었지만,결국 말이란 언중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라 '도우미'가 그대로 단어로 굳어졌다.
조어법에 어긋난다고 해서 우리말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비판만 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도우미'가 몇년 만에 정식 단어로 승격한 데 비해 '누네띠네'는 여전히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단어가 되지 못한 까닭은 그 말이 특정 상표명으로서 제한적이고 한시적으로 쓰이는,유행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글이 반포된 지 564돌을 맞는 해다.
이번 주말의 한글날(10월9일)을 앞두고 신문이나 방송에선 올해도 연례행사처럼 우리말 관련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우리말을 살리고 키우기 위해선 외래어 남용 등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다른 한편으로 우리말에 대한 왜곡되고 그릇된 평가를 걸러내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