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명품을 사고 싶어하는 소비심리는?
숭실대학교 2011학년도 모의 논술은 전년도 기출 논제 대비 글자 수가 늘어나고 논제의 난이도가 소폭 상승했다.
총 3개 논제로 구성된 것은 지난해 기출 논제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3번 논제의 요구 글자 수가 기존 600자에서 1000자로 훌쩍 올라갔다.
(다행스럽게도 1, 2번은 그대로 600자를 유지하고 있다. )
게다가 논제 요구 사항은 논술 수험생들을 무척 당혹스럽게 만드는 바로 '자기 견해 제시'를 요구하는 논제이다.
결국 3번 논제의 체감 난이도는 전년도 대비 몇 배는 증가한 셈이다.
전반적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정도 해볼 만하고 심지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막상 쓰려고 펜을 잡아드는 순간 그렇게 만만하게 술술 풀어 내려갈 논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 전체 문제의 구성
숭실대학교 2011 모의고사 논제는 큰 범주에서는 '집단성'이라는 주제에서 논제가 집약될 수 있고 한 단계 구체화시키면 총 3문항으로 구성되며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출제되어 있다.
첫째는 명품을 소비하는 심리 또는 명품 소비에 대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제시문들은 소비,취향,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집단성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나름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국인의 명품 구입 태도와 이와 관련된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그런 사회현상을 도표로 계량화하여 그것을 적절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두 번째 주제는 국가에 의한 구조적 폭력이다.
2와 3 두 개의 문제가 구조적 폭력이란 주제를 공유하면서 '문제 2를 바탕으로'라는 요구가 있어서 2번 논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3번 논제는 이러한 논제의 요구에서 벗어나기 쉽다.
모두 9개의 제시문이 주어져 있는데 각각의 분량도 많지 않고 대체로 논지 파악이 크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제시문의 개수가 많은 만큼 논제에 필요한 사항을 고려하여 각 제시문별로 내용을 요약 정리해 두고 풀어 나가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 문항별 논제 분석 및 해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는 논제를 펼쳐보자.
우선 한국인의 명품 소비 현상을 소재로 삼은 1번 문제와 제시문은 아래와 같다.
<문제 1>
제시문 (가)~(다)의 내용을 토대로 (라)의 도표에서 드러난 한국의 명품 관련 현상을 분석하시오.(600자 ± 50자 30점)
가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후기 산업사회의 소비자들은 다양한 자극 경험을 위해 새로운 소비대상을 찾아다닌다.
소비를 하나의 유희이자 자기표현(self expression)의 장으로 여기는 소비행동의 특성은 새로운 사회 계층을 형성하면서 소비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 이렇게 주관적인 정서적 만족 추구를 소비 목적으로 삼는 소비행위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소비의 상징성을 띠게 된다.
소비와 관련된 현대인의 욕구는 특정 사물에 대한 구체적 욕구라기보다는 다양한 자극 대상, 자기를 표현해주는 대상, 희소성을 갖는 대상에 대한 욕구를 갖는데, 이는 다름 아닌 '차이에의 욕구'이다.
이것이 후기 산업사회의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소비대상을 찾아다니게 되는 한 가지 이유이며, 그렇게 소비대상을 찾을 때의 기준은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프랑스인들은 직장에서 획일적으로 옷 입는 것을 싫어한다. 영국이나 미국의 회사에서 남자들이 하얀 와이셔츠에 점잖은 색상의 양복을 입고 정장 차림으로 근무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프랑스의 직장에서는 '튀는 색깔'의 넥타이와 와이셔츠, 그리고 색상의 조화를 추구하는 콤비 차림이 많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곧 취향이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취향이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중요한 잣대요, 인간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취향이야말로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는 자유로운 선택이고, 자유로운 선택의 의지를 생각과 행동에 반영하는 것은 문명인의 기본조건이다.
다대체로 우리는 나를 집단적 범주에 의하여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한국 사람이면 '한국 민족의 일원'으로 개인을 완전히 소진시킨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군데, 나를 알아주지 않고……'라는 식의 자기 이해도 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같으면서, 집단적 범주에 의지해서 나를 정의하고 그것을 내세우는 것이지요.
'내가 그래도 교수인데 나를 교수 대접을 안 하고……' 이런다든지, '내가 그래도 국장인데, 계장 네가 어째서 이렇게 날 대하느냐……' 이런다든지와 같이 '내가 누군데'라는 건 사회적 카테고리 또는 집단적 카테고리로 자신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라아래표는 맥킨지 컨설팅회사가 각국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숫자는‘예’라고 응답한 사람 비율) ⊙ 제시문 개요
각 제시문의 요지를 정리해보자.
우선 제시문 (가)는 소비를 사물에 대한 소유욕으로 보지 않고 자기 표현의 기회나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후기 산업사회 소비자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현대 소비자의 이런 욕구는 '차이의 욕구'이며 이러한 소비행동은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는 소비문화를 만들고 있다.
제시문 (나)는 획일성을 거부하고 개인의 취향을 적극 드러내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이 취향을 따르는 것은 취향이란 개인의 특성이며 자유로운 선택이야말로 문명인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시문 (다)는 개인의 특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개인을 드러낼 때는 소속집단의 특성을 빌리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제시문 (라)는 명품 소비에 대한 의식을 국가별로 정리한 그래프이다.
"(1)지난 1년간 명품 구입에 돈을 더 많이 썼다"
"(2)명품을 과시하는 것은 나쁜 취향이다"
"(3)명품 구입에 죄책감을 느낀다"
세 가지 질문에 '예'라고 답한 비율이 한국을 비롯한 5개국에 따라 정리되어 있다.
(라)에서는 주제에 관련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나타낸 그래프를 분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프를 자의적으로 읽어 내라는 요구는 아니고, 앞의 세 제시문의 내용을 토대로 하라는 주문이다.
⊙ 어떻게 써야 할까
논제에서 '분석'을 요구하고 있는데, 분석은 사전적으로는 복잡해 보이는 대상이나 현상을 요소나 성질로 구분함으로써 이해를 명료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어떤 현상을 통계적 자료를 이용해 파악하는 것 역시 분석에 해당한다.
<문제 1>은 제시문 (라)의 그래프를 중심으로 명품 구입에 관한 한국인의 태도를 분석하는 문제다.
그래프 분석에 제시문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사회현상을 계량화시킨 도표의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그러므로 먼저 그래프로 그려 놓은 현상을 파악해야 하고 그래프에 나타난 요소들의 특징을 구분해야 한다.
특히 여기서는 한국의 명품 소비가 분석의 대상이므로 주로 '한국'이 보이는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논제에서 한국의 명품 관련 현상을 분석할 것을 요구하므로, 그래프에서 한국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서술해야 한다.
한국은 (1)번 질문에 '예'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고, (2)와 (3)의 질문에 대해서는 '예'의 비율이 가장 낮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는 한국사람은 명품을 많이 소비하면서 명품을 과시하는 것을 '괜찮다'고 여기며 명품 구입에 대해 죄책감을 덜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프로 나타난 이와 같은 사실에 (가), (나), (다)에서 말하는 것들을 적용해 보면 된다.
한국인이 명품 구입에 많은 돈을 쓴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가)에서처럼 명품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나)에서와 같이 명품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려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를 적용하여 명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그 명품을 소유한 계층에 포함시키려는 욕구를 가진 사람이 많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폭력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처럼 그래프의 각 항목의 결과에 대해 (가), (나), (다) 가운데 어떤 내용을 적용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과에 적용한 설명이 타당해야 하고, 세 개의 항목을 설명하는 것 사이에 논리적 정합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분석 사례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명품의 소비는 (가)에서 지적하듯 '차이의 욕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명품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나)에서와 같은 개인의 취향에 머물지 않고 소비계층을 형성하게 된다.
오히려 명품의 소비란 개인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다)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이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특정 명품을 소유한 집단에 소속시켜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명품 소비에 대한 집단성의 측면이 (라)의 그래프에서 보이는 현상의 근거가 된다.
또한 (가)에서 설명하듯 소비가 개인의 정서적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사회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래프에서처럼 명품 소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적을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이러한 분석 이외에도 (라)의 현상을 설명할 때, 제시문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제시문 밖의 논거를 제시한다면 이 역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된다.
이어서 문제 2번, 3번을 살펴보자. 분석을 요구했던 1번 논제에 이어 2번 논제는 비교/대조를 해보라고 한다.
제시문이 긴 관계로 이번 주엔 제시문을 살펴 본 후 제시문 분석 후 다음 주에 이어서 진행하겠다.
<문제 2>
제시문 (마)에서 설명하는 '폭력'의 개념을 활용하여 (바)에서 (자)까지의 입장을 비교, 대조하시오.
(600자 ±50자 30점)
마폭력은 여러 가지 수준에서 정의할 수 있다.
거시적인 사회 구조나 사회 현상에서 폭력은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먼저 가장 근원적인 폭력인 '구조화된 폭력'이다.
구조화된 폭력은 음으로 양으로 사람들의 동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흔히 '폭력'이라는 사실이 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강제적인 힘의 지배라는 점에서 명백히 폭력이다.
국가가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힘,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힘, 우월한 계급이나 계층이 약한 계급이나 계층을 지배하는 힘,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힘, 이 모든 것이 구조적 폭력이다.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든 폭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그 구조적 폭력에 대항하는 '대항 폭력'이 있다.
대항 폭력은 우월한 힘의 지배를 받는 약한 사람들의 대응방식이다.
구조적 폭력의 지배 양상을 뒤집어엎으려는 모든 폭력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것은 대중적인 봉기나 혁명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테러'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흔히 논란을 벌일 때 늘 문제되는 폭력이 바로 이 '대항 폭력'이다.
대항 폭력의 한 형태로서 봉기나 혁명은 성공할 경우 곧바로 정당성을 얻고, 혹 실패했더라도 후대의 역사에서 재평가되어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민족 독립 전쟁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테러'로 불리는 폭력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 정당성이 옹호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좀처럼 그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그 대항 폭력을 응징하는 '진압 폭력'이 있다.
대항 폭력을 문제시하는 만큼 진압 폭력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정당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국가 내에서의 분규나 봉기를 진압하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동의, 그 정당성의 인정은 구조적 폭력을 문제시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구조화된 폭력을 문제시할 것 같으면 진압 폭력은 설 자리가 없다.
폭력적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이루어지는 진압의 폭력은 더욱 가중된 폭력 지배 현상이다.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현실에서 이와 같은 폭력은 악순환하고 있다.
진압으로 폭력은 악순환하고 있다.
진압으로 폭력사태가 단절된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겠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더 강도 높은 폭력사태가 만연하는 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다.
이처럼 답답하고 두려운 현실에서 벗어나는 길이 없을까?
바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해치거나 혹은 그럴 위험이 있는 폭력을 다스려야 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 불가피할 경우 법이 정한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자명하게 보이는 일과의 관련 속에서 우리는 일련의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근원적 폭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사전에 혹은 사후에 억압되어야 할 폭력의 성질을 가늠하는 데 사용되는 규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보다 본질적으로 볼 때, 제도화된 폭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와 그 행사를 정당화시켜 주는 듯이 보이는 사회적 규범 그 자체가 원초적 폭력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은 아마도 너무나 진부한 것이리라. 그러나 고차원적인 반성들이 비롯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진부한 질문에서이다.
제도화된 폭력이 날이 갈수록 더욱 교묘해지는 오늘날에 있어서 이런 질문은 더욱 절실한 것이다.
제도적 폭력의 기교화, 이론화는 비단 국가주의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소산만은 아니다.
그것은 특히 이른바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나라들조차 실천하는 기만, 제거 또는 조작을 위한 극히 고도화된 기술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듯이 여겨진다.
가령 사회에 대해서 해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제도 자체에서 유래된 폭력의 희생자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국가는 사법당국의 직접적인 관여를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교묘한 수단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가 있다.
사복종하지 않고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불복종 역시 정당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강한 자만이 항상 정당하다면 오직 강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런데 힘이 없어지면 함께 없어지고 마는 권리란 대체 무엇일까?
폭력으로 복종을 강요당한다면 반드시 복종해야 할 의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가장 강한 자의 권리라는 말은 폭력과 다름이 없으며, 결국 그 말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권력은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주장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질병도 역시 신으로부터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병들었을 때 의사를 불러서는 안 된다는 뜻인가?
으슥한 숲 속에서 강도에게 습격을 받았을 때, 그의 폭력에 의해 강제로 지갑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경우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돈지갑을 내주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나는 일부러 지갑을 내주어야 할 의무가 있을까?
강도가 든 권총도 역시 하나의 폭력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아국가를 형성하거나 혹은 국가를 유지하는 힘이 현실적으로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능력과 의지라고. 국가권력은 국가가 지배적 세계관과 부합하고 폭력 활동을 하는 분자가 개개의 범죄자적 성질만을 가질 뿐 국가 견해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사상의 대표자로 간주되지 않을 때에 한해 안녕 질서를 보장할 수 있다.
그런 경우 국가는 국가를 위협하는 테러에 대해 몇 세기 동안 어떤 커다란 폭력조치도 활용할 수 있다.
자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이 도시를 비방하는 자들로부터 여러분이 현인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악명의 대가를 받게 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이 도시를 비방하는 자들은 여러분을 비난하고자 할 때, 사실은 내가 현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현명하다고 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방식에 따라 말함으로써 생명을 보존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의 방식대로 말하고 죽는 것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또는 어떤 사람이든 전쟁에 있어서 또는 법률에 있어서 모든 책략을 동원하여 죽음을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만 분명히 싸움터에서 무기를 버리고 추격자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죽음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험에 직면했을 때에도 무슨 말이든 또 무슨 짓이든 다 하기만 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나의 친구여, 죽음의 회피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의를 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정은 죽음보다도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늙고 행동이 둔하기 때문에 느리게 뛰는 자에게 붙잡혔지만 예리하고 기민한 나의 고발자들은 빨리 달리는 자, 곧 불의에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러분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받기 위해 떠나갑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내린 판결을 감수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은 숙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진 S · 논술 선임 연구원 moke@hanmail.net
총 3개 논제로 구성된 것은 지난해 기출 논제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3번 논제의 요구 글자 수가 기존 600자에서 1000자로 훌쩍 올라갔다.
(다행스럽게도 1, 2번은 그대로 600자를 유지하고 있다. )
게다가 논제 요구 사항은 논술 수험생들을 무척 당혹스럽게 만드는 바로 '자기 견해 제시'를 요구하는 논제이다.
결국 3번 논제의 체감 난이도는 전년도 대비 몇 배는 증가한 셈이다.
전반적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정도 해볼 만하고 심지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막상 쓰려고 펜을 잡아드는 순간 그렇게 만만하게 술술 풀어 내려갈 논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 전체 문제의 구성
숭실대학교 2011 모의고사 논제는 큰 범주에서는 '집단성'이라는 주제에서 논제가 집약될 수 있고 한 단계 구체화시키면 총 3문항으로 구성되며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출제되어 있다.
첫째는 명품을 소비하는 심리 또는 명품 소비에 대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제시문들은 소비,취향,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집단성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나름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국인의 명품 구입 태도와 이와 관련된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그런 사회현상을 도표로 계량화하여 그것을 적절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두 번째 주제는 국가에 의한 구조적 폭력이다.
2와 3 두 개의 문제가 구조적 폭력이란 주제를 공유하면서 '문제 2를 바탕으로'라는 요구가 있어서 2번 논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3번 논제는 이러한 논제의 요구에서 벗어나기 쉽다.
모두 9개의 제시문이 주어져 있는데 각각의 분량도 많지 않고 대체로 논지 파악이 크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제시문의 개수가 많은 만큼 논제에 필요한 사항을 고려하여 각 제시문별로 내용을 요약 정리해 두고 풀어 나가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 문항별 논제 분석 및 해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는 논제를 펼쳐보자.
우선 한국인의 명품 소비 현상을 소재로 삼은 1번 문제와 제시문은 아래와 같다.
<문제 1>
제시문 (가)~(다)의 내용을 토대로 (라)의 도표에서 드러난 한국의 명품 관련 현상을 분석하시오.(600자 ± 50자 30점)
가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후기 산업사회의 소비자들은 다양한 자극 경험을 위해 새로운 소비대상을 찾아다닌다.
소비를 하나의 유희이자 자기표현(self expression)의 장으로 여기는 소비행동의 특성은 새로운 사회 계층을 형성하면서 소비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 이렇게 주관적인 정서적 만족 추구를 소비 목적으로 삼는 소비행위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소비의 상징성을 띠게 된다.
소비와 관련된 현대인의 욕구는 특정 사물에 대한 구체적 욕구라기보다는 다양한 자극 대상, 자기를 표현해주는 대상, 희소성을 갖는 대상에 대한 욕구를 갖는데, 이는 다름 아닌 '차이에의 욕구'이다.
이것이 후기 산업사회의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소비대상을 찾아다니게 되는 한 가지 이유이며, 그렇게 소비대상을 찾을 때의 기준은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프랑스인들은 직장에서 획일적으로 옷 입는 것을 싫어한다. 영국이나 미국의 회사에서 남자들이 하얀 와이셔츠에 점잖은 색상의 양복을 입고 정장 차림으로 근무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프랑스의 직장에서는 '튀는 색깔'의 넥타이와 와이셔츠, 그리고 색상의 조화를 추구하는 콤비 차림이 많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곧 취향이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취향이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중요한 잣대요, 인간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취향이야말로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는 자유로운 선택이고, 자유로운 선택의 의지를 생각과 행동에 반영하는 것은 문명인의 기본조건이다.
다대체로 우리는 나를 집단적 범주에 의하여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한국 사람이면 '한국 민족의 일원'으로 개인을 완전히 소진시킨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군데, 나를 알아주지 않고……'라는 식의 자기 이해도 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같으면서, 집단적 범주에 의지해서 나를 정의하고 그것을 내세우는 것이지요.
'내가 그래도 교수인데 나를 교수 대접을 안 하고……' 이런다든지, '내가 그래도 국장인데, 계장 네가 어째서 이렇게 날 대하느냐……' 이런다든지와 같이 '내가 누군데'라는 건 사회적 카테고리 또는 집단적 카테고리로 자신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라아래표는 맥킨지 컨설팅회사가 각국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숫자는‘예’라고 응답한 사람 비율) ⊙ 제시문 개요
각 제시문의 요지를 정리해보자.
우선 제시문 (가)는 소비를 사물에 대한 소유욕으로 보지 않고 자기 표현의 기회나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후기 산업사회 소비자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현대 소비자의 이런 욕구는 '차이의 욕구'이며 이러한 소비행동은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는 소비문화를 만들고 있다.
제시문 (나)는 획일성을 거부하고 개인의 취향을 적극 드러내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이 취향을 따르는 것은 취향이란 개인의 특성이며 자유로운 선택이야말로 문명인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시문 (다)는 개인의 특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개인을 드러낼 때는 소속집단의 특성을 빌리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제시문 (라)는 명품 소비에 대한 의식을 국가별로 정리한 그래프이다.
"(1)지난 1년간 명품 구입에 돈을 더 많이 썼다"
"(2)명품을 과시하는 것은 나쁜 취향이다"
"(3)명품 구입에 죄책감을 느낀다"
세 가지 질문에 '예'라고 답한 비율이 한국을 비롯한 5개국에 따라 정리되어 있다.
(라)에서는 주제에 관련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나타낸 그래프를 분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프를 자의적으로 읽어 내라는 요구는 아니고, 앞의 세 제시문의 내용을 토대로 하라는 주문이다.
⊙ 어떻게 써야 할까
논제에서 '분석'을 요구하고 있는데, 분석은 사전적으로는 복잡해 보이는 대상이나 현상을 요소나 성질로 구분함으로써 이해를 명료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어떤 현상을 통계적 자료를 이용해 파악하는 것 역시 분석에 해당한다.
<문제 1>은 제시문 (라)의 그래프를 중심으로 명품 구입에 관한 한국인의 태도를 분석하는 문제다.
그래프 분석에 제시문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사회현상을 계량화시킨 도표의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그러므로 먼저 그래프로 그려 놓은 현상을 파악해야 하고 그래프에 나타난 요소들의 특징을 구분해야 한다.
특히 여기서는 한국의 명품 소비가 분석의 대상이므로 주로 '한국'이 보이는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논제에서 한국의 명품 관련 현상을 분석할 것을 요구하므로, 그래프에서 한국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서술해야 한다.
한국은 (1)번 질문에 '예'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고, (2)와 (3)의 질문에 대해서는 '예'의 비율이 가장 낮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는 한국사람은 명품을 많이 소비하면서 명품을 과시하는 것을 '괜찮다'고 여기며 명품 구입에 대해 죄책감을 덜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프로 나타난 이와 같은 사실에 (가), (나), (다)에서 말하는 것들을 적용해 보면 된다.
한국인이 명품 구입에 많은 돈을 쓴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가)에서처럼 명품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나)에서와 같이 명품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려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를 적용하여 명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그 명품을 소유한 계층에 포함시키려는 욕구를 가진 사람이 많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폭력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처럼 그래프의 각 항목의 결과에 대해 (가), (나), (다) 가운데 어떤 내용을 적용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과에 적용한 설명이 타당해야 하고, 세 개의 항목을 설명하는 것 사이에 논리적 정합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분석 사례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명품의 소비는 (가)에서 지적하듯 '차이의 욕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명품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나)에서와 같은 개인의 취향에 머물지 않고 소비계층을 형성하게 된다.
오히려 명품의 소비란 개인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다)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이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특정 명품을 소유한 집단에 소속시켜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명품 소비에 대한 집단성의 측면이 (라)의 그래프에서 보이는 현상의 근거가 된다.
또한 (가)에서 설명하듯 소비가 개인의 정서적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사회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래프에서처럼 명품 소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적을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이러한 분석 이외에도 (라)의 현상을 설명할 때, 제시문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제시문 밖의 논거를 제시한다면 이 역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된다.
이어서 문제 2번, 3번을 살펴보자. 분석을 요구했던 1번 논제에 이어 2번 논제는 비교/대조를 해보라고 한다.
제시문이 긴 관계로 이번 주엔 제시문을 살펴 본 후 제시문 분석 후 다음 주에 이어서 진행하겠다.
<문제 2>
제시문 (마)에서 설명하는 '폭력'의 개념을 활용하여 (바)에서 (자)까지의 입장을 비교, 대조하시오.
(600자 ±50자 30점)
마폭력은 여러 가지 수준에서 정의할 수 있다.
거시적인 사회 구조나 사회 현상에서 폭력은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먼저 가장 근원적인 폭력인 '구조화된 폭력'이다.
구조화된 폭력은 음으로 양으로 사람들의 동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흔히 '폭력'이라는 사실이 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강제적인 힘의 지배라는 점에서 명백히 폭력이다.
국가가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힘,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힘, 우월한 계급이나 계층이 약한 계급이나 계층을 지배하는 힘,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힘, 이 모든 것이 구조적 폭력이다.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든 폭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그 구조적 폭력에 대항하는 '대항 폭력'이 있다.
대항 폭력은 우월한 힘의 지배를 받는 약한 사람들의 대응방식이다.
구조적 폭력의 지배 양상을 뒤집어엎으려는 모든 폭력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것은 대중적인 봉기나 혁명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테러'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흔히 논란을 벌일 때 늘 문제되는 폭력이 바로 이 '대항 폭력'이다.
대항 폭력의 한 형태로서 봉기나 혁명은 성공할 경우 곧바로 정당성을 얻고, 혹 실패했더라도 후대의 역사에서 재평가되어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민족 독립 전쟁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테러'로 불리는 폭력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 정당성이 옹호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좀처럼 그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그 대항 폭력을 응징하는 '진압 폭력'이 있다.
대항 폭력을 문제시하는 만큼 진압 폭력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정당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국가 내에서의 분규나 봉기를 진압하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동의, 그 정당성의 인정은 구조적 폭력을 문제시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구조화된 폭력을 문제시할 것 같으면 진압 폭력은 설 자리가 없다.
폭력적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이루어지는 진압의 폭력은 더욱 가중된 폭력 지배 현상이다.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현실에서 이와 같은 폭력은 악순환하고 있다.
진압으로 폭력은 악순환하고 있다.
진압으로 폭력사태가 단절된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겠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더 강도 높은 폭력사태가 만연하는 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다.
이처럼 답답하고 두려운 현실에서 벗어나는 길이 없을까?
바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해치거나 혹은 그럴 위험이 있는 폭력을 다스려야 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 불가피할 경우 법이 정한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자명하게 보이는 일과의 관련 속에서 우리는 일련의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근원적 폭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사전에 혹은 사후에 억압되어야 할 폭력의 성질을 가늠하는 데 사용되는 규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보다 본질적으로 볼 때, 제도화된 폭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와 그 행사를 정당화시켜 주는 듯이 보이는 사회적 규범 그 자체가 원초적 폭력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은 아마도 너무나 진부한 것이리라. 그러나 고차원적인 반성들이 비롯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진부한 질문에서이다.
제도화된 폭력이 날이 갈수록 더욱 교묘해지는 오늘날에 있어서 이런 질문은 더욱 절실한 것이다.
제도적 폭력의 기교화, 이론화는 비단 국가주의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소산만은 아니다.
그것은 특히 이른바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나라들조차 실천하는 기만, 제거 또는 조작을 위한 극히 고도화된 기술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듯이 여겨진다.
가령 사회에 대해서 해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제도 자체에서 유래된 폭력의 희생자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국가는 사법당국의 직접적인 관여를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교묘한 수단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가 있다.
사복종하지 않고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불복종 역시 정당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강한 자만이 항상 정당하다면 오직 강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런데 힘이 없어지면 함께 없어지고 마는 권리란 대체 무엇일까?
폭력으로 복종을 강요당한다면 반드시 복종해야 할 의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가장 강한 자의 권리라는 말은 폭력과 다름이 없으며, 결국 그 말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권력은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주장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질병도 역시 신으로부터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병들었을 때 의사를 불러서는 안 된다는 뜻인가?
으슥한 숲 속에서 강도에게 습격을 받았을 때, 그의 폭력에 의해 강제로 지갑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경우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돈지갑을 내주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나는 일부러 지갑을 내주어야 할 의무가 있을까?
강도가 든 권총도 역시 하나의 폭력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아국가를 형성하거나 혹은 국가를 유지하는 힘이 현실적으로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능력과 의지라고. 국가권력은 국가가 지배적 세계관과 부합하고 폭력 활동을 하는 분자가 개개의 범죄자적 성질만을 가질 뿐 국가 견해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사상의 대표자로 간주되지 않을 때에 한해 안녕 질서를 보장할 수 있다.
그런 경우 국가는 국가를 위협하는 테러에 대해 몇 세기 동안 어떤 커다란 폭력조치도 활용할 수 있다.
자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이 도시를 비방하는 자들로부터 여러분이 현인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악명의 대가를 받게 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이 도시를 비방하는 자들은 여러분을 비난하고자 할 때, 사실은 내가 현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현명하다고 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방식에 따라 말함으로써 생명을 보존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의 방식대로 말하고 죽는 것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또는 어떤 사람이든 전쟁에 있어서 또는 법률에 있어서 모든 책략을 동원하여 죽음을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만 분명히 싸움터에서 무기를 버리고 추격자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죽음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험에 직면했을 때에도 무슨 말이든 또 무슨 짓이든 다 하기만 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나의 친구여, 죽음의 회피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의를 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정은 죽음보다도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늙고 행동이 둔하기 때문에 느리게 뛰는 자에게 붙잡혔지만 예리하고 기민한 나의 고발자들은 빨리 달리는 자, 곧 불의에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러분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받기 위해 떠나갑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내린 판결을 감수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은 숙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진 S · 논술 선임 연구원 mok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