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다양성 정책, 또 다른 우대인가? 사회적 약자 보호인가?
지난 14일 미국 필라델피아의 줄리아 매스터맨 스쿨.

새 학기를 맞아 이 고등학교를 찾은 버락오바마 대통령은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누구이며 내 인생에 아버지가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 했었다”며

“인생의 아름다움은 다양성에 있으며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관용을 베풀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구별짓게 만든 것에 당황해서는 안 되며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며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를 다르게 만들고 오늘의 자신을 만들며 특별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날로 복잡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다양성(Diversity)’은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나와 다른 인종이나 성,민족,사상을 존종하는 다양성은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살찌우는 거름으로 평가 되고있으며, 이런 차원에서 소수 인종이나 민족,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정책들이 속속 추진된다.

하지만 다양성이라는 이름아래 취해지는 각종 우대정책이 혜택에서 소외된 계층에는 또 다른 차별이며 오히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적지않다.

일부에서는 다양성에 대한 주장이 정신적 사치나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과도할 경우 '기준'이 없어 지적 무정부주의 '함정'에 빠질수도


⊙ "베네통 인종광고로 효과"

이탈리아 의류회사인 베네통은 인종 광고로 유명하다.

피부색이 다른 흑인과 백인,아시아계 모델을 등장시켜 다양한 인종이 모여 조화롭게 사는 평화로운 지구촌을 갈망한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성(性)이 다르더라도 같은 인간이므로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다양성의 철학은 현실적으로 존재해온 사회적 차별을 바로 잡는 강력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나 여성 해방운동 등을 통해 인류는 인종이나 성,민족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으며 현재까지도 그러한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흑인이나 여성,소수민족 등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취업이나 대학 입시 때 우대해주는 것이다.

미국 대학들은 입학시험에서 흑인이나 멕시코계 미국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게 가산점을 줘 이들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발짝 더 나아가 의회나 기업 이사회에 여성의 최저비율을 법으로 정해 놓은 나라들도 있다.

노르웨이 스페인 프랑스의 경우 이사회의 일정 비율 이상을 여성으로 채우도록 하는 법률이 만들어졌다.

이는 회사나 조직에서 뿌리 깊게 존재하는 성 차별로 인해 여성이 일정 직급 이상으로 승진하거나 고위 경영진에 합류하는 걸 가로막는 이른바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깨기 위한 것이다.

또 한국의 공직선거법은 여성의 정치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각 정당이 국회의원 선거구마다 광역 · 기초의원 지역구 후보 1명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도록 의무화했으며,정당이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지방 의회의원 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할 때는 50% 이상을 여성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소수자 우대정책은 배타적 영역을 허물어뜨리고 관용과 존중의 정신을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다양성은 또 다른 신화일 뿐"

하지만 이 같은 사회적 약자 우대정책이 또 다른 차별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 보스턴대의 인류학 교수인 피터 우드는 민주주의적 이상에 대한 지향이 사회통합적 다양성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다양성에 대한 편견 혹은 왜곡일 수 있으며 다양성이 때론 불평등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양성을 통계학적으로 존재하는 구체적인 다양성(다양성 1)과 사람들이 그러하다고 믿는 '이상'으로서의 개념(다양성 2)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개념으로의 다양성이 때론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실력이 흑인이나 아시아인보다 월등한데도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거나,공부를 잘해도 부모 소득이 높다는 이유 때문에 저소득층 자녀에게 주어지는 입시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양성 정책이 오히려 차별 정책이고 인종 편애주의일 수 있다.

능력이 뛰어난데도 역시 남성이라는 이유로 취업에 실패하거나 이사회 멤버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드는 다양성은 올바른 여건만 조성된다면 삶에 향기를 불어넣지만 때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위협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또 대학이 인종,민족 혹은 다른 조건을 달아 인원을 할당하는 건 다양성의 파멸적 행태이며 인위적인 다양성에 대한 그릇된 확신과 헛된 노력은 우리를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 논란 거센 소수자 우대정책
[Cover Story] 다양성 정책, 또 다른 우대인가? 사회적 약자 보호인가?
인류 역사에서 다양성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고양시킨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성은 또 다른 우대를 정당화할 수 있고 상황을 오히려 나쁘게 만들 수 있다.

다양성을 반대하는 측은 흑인 노예제 등 과거 세대가 저지른 실수를 지금의 세대가 보상받으려면 일종의 '집단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과연 집단권리에 근거한 사회를 만드는 게 바람직한가라고 묻는다.

집단의 권리만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라는 인류의 오랜 진로에서 벗어나 전제정치와 구속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다양성의 원칙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개인의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이나,개인적 혹은 보편적 인간성보다 집단의 정체성이 더 실질적이고 강력하다는 정서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보편적 기준을 무시하게 되고 지적 무정부주의,도덕의 니힐리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을 한 사회 집단,예를 들어 흑인이나 백인 혹은 특정한 인위적 규정으로 구획지은 집단에 속한 하나의 부품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비인간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회적 약자 우대정책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처럼 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소수세력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없는 사회라면 약자 우대정책은 또 다른 차별일 가능성이 크고,반대로 유리천장이 두꺼운 닫힌 사회라면 약자 우대정책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맞는 차별의 시정이 될 것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