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으로 얼굴을 할켰다'가 틀린 이유

"그 분을 뵈었더니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났다. "

"자네 덕에 생일을 잘 쇠어서 고맙네."

"야외에 나가 바람을 쐬었다. "

"나사가 너무 세게 죄어 있어서 풀기 어렵다. "

말에도 효율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예문에 보이는 말들이 각각 '뵀더니' '쇄서' '쐤다' '좨'로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느슨하거나 헐거운 것을 단단하거나 팽팽하게 하다'란 뜻의 '죄다'는 본말이 '조이다'여서 이런 경우엔 '조여/죄어/좨'가 모두 가능한 표기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가 입말에서 자연스럽게 말이 줄어진다고 모두 줄어든 형태로 적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붙임성이 있어 이웃의 낯선 사람들과도 잘 사귀었다. "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사고를 당했다. "

이때 '사귀었다'나 '바뀌어서'는 실제 발음으로는 [사겼다] [바껴서]로 들린다.

하지만 이를 '사귀었다→사겼다' '바뀌어서→바껴서'로 줄어든 말로 보고 발음 그대로 '사겼다' '바껴서'로 적을 수 없다.

왜냐하면 비록 줄어진 말일지라도 '사겼다' '바껴서'란 표기가 가능하기 위해선 기본형 '사기다' '바끼다'란 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사기+었다→사겼다' '바끼+어서→바껴서'로 줄어드는 게 가능해진다.

하지만 실제론 '사기다'나 '바끼다'란 말은 없으므로 비록 구어에서 말이 줄어들어 [사겼다] [바껴서]로 발음되더라도 이를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이 같은 현상은 이외에도 '할퀴다'나 '튀다, 쉬다, 쥐다' 같은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었다[할켰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도둑은 이미 튀어[텨] 버렸다. " "우리는 잠시 길가에서 쉬었다가[셨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

"그는 무슨 신호를 보내듯이 주먹을 반복해서 쥐었다[졌다] 폈다 했다. " 이들 역시 발음 나는 대로 적으려면 기본형이 각각 '할키다, 티다, 시다, 지다'란 말이 있어야 줄어진 말로 표기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본말의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니므로 줄어진 대로 적을 수 없는 것이다.

'멈추다'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멈추었던[멈췄던/멈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

"그 자리에 멈추어[멈춰/멈쳐]!" 여기서 '멈추다'는 '멈추+었던→멈췄던' '멈추+어→멈춰'까지는 줄어드는 게 가능하지만 '멈쳤던' '멈쳐!'는 불가능하다. '멈치다'란 동사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