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각자 사회적 역할에 따른 의무를 따라야 한다"
※ <보기>에 등장하는 딥스는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학생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문제에 답하시오.
(1)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딥스가 지닌 문제의 발생 원인을 제시하시오. (400자 내외)
(2) 제시문 (나)와 (다)에 내포된 공통된 함의(含意)에 대하여 논하시오. (400자 내외)
(3) 위 (2)에서 논한 함의에 입각하여, 딥스와 같은 학생을 지도하려면 교사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에 대하여 논하시오. (1000자 내외)
<보기> 어린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자기 외투와 모자를 찾으려고 법석을 부리고 있었지만, 꼬마 딥스는 교실 한 귀퉁이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두 팔로 자기 가슴을 꽉 움켜잡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마치 집으로 간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다른 아이들의 돌아갈 채비를 도와주면서 몰래 딥스를 쳐다보곤 하였다.
이런 일이 날마다 집에 갈 시간만 되면 되풀이되었다.
다른 아이들이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가고 아무도 없을 때 선생님들은 서로 눈짓을 하고 벽 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딥스를 바라보았다.
제인 선생님이 "당신 차례예요"라고 말하며 교실을 나가 버렸다.
"딥스야, 이리 온.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지?"
헤다 선생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하였다. 하지만 딥스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반항은 매우 끈질기고 무서운 것이었다.
헤다 선생님은 다시 딥스의 코트를 들고 "자, 코트 입는 것을 도와줄게" 하며 천천히 다가갔지만 딥스는 벽에다 몸을 잔뜩 기대고서 머리를 두 팔 속에 쿡 처박은 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딥스야, 어서 입어야지. 곧 엄마가 데리러 오실 텐데." 딥스의 어머니는 언제나 늦게 오곤 하였다.
아마도 선생님이 미리 코트와 모자를 입혀놓아 실랑이를 하지 않고도 아이를 조용히 데려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헤다 선생님은 딥스 곁에 가만히 앉아서 등을 어루만지며 말을 걸었다.
"딥스야, 어서 집으로 가지 않으련?"
딥스는 맹수처럼 작은 주먹을 휘두르며, 곧 할퀴고 물 듯 덤벼들면서 "나 집에 안 가" "집에 안 가"하고 소리를 질렀다. 딥스는 매일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울곤 하였다.
-엑슬린(V. M. Axline),「딥스」에서
가물과 불에는 기(氣)는 있어도 생명(生)은 없고, 풀과 나무에는 생명은 있어도 지각(知)이 없으며, 새와 짐승에는 지각은 있어도 의(義)라는 것은 없다.
인간은 기(氣)도, 생명(生)도, 지각(知)도 가지고 있고, 그 위에 또 의(義)를 갖추고 있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무릇 인간의 힘은 소(牛)에 미치지 못하고, 달리는 속도는 말(馬)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소나 말 쪽이 인간의 이용 대상이 되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것은 인간은 사회(群)를 구성할 수 있으나, 소나 말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으로써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회적 역할의 구분(分)에 의해서이다. 사회적 역할의 구분은 무엇으로 실행되는가?
그것은 의(義)에 의해서이다.
의(義)로써 사회적 역할을 실행하면 사람들은 화합하게 되고, 화합하면 하나로 통합되고, 하나로 통합되면 힘이 증가하고 힘이 증가하면 강해지고, 강하게 되면 만물(物)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각자의 집을 짓고 편안하게 사는 것, 사계(四季)의 순환에 따라 일을 하고, 만물을 이용하여 천하에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회적 역할의 구분(分)과 각 역할에 따른 의(義)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사회를 구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사회에 사회적 역할의 구분이 없으면 분쟁이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나면 사회는 혼란해지고, 혼란하면 사람들은 흩어지고, 흩어지면 약해지고, 약해지면 만물을 이길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집을 마련하여 편안하게 살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잠시라도 예의(禮義)를 저버릴 수 없다는 말은 이것을 가리킨다.
어버이를 잘 섬기는 자를 효(孝)라 하고, 형을 잘 섬기는 자를 제(弟)라고 하며, 윗사람(上)을 잘 섬기는 자를 순(順)이라 하고, 아랫사람(下)을 잘 부리는 자를 군(君)이라 한다.
-「순자(荀子)」, 왕제(王制)에서
나우리의 언어적 성장과정은 상호 양립성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상호 양립성은 상호작용을 하는 두 주체가 모종의 고정되고 완성된 의미를 주고받거나 공유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각 주체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신의 경험에 부합하는 보다 적절한 의미를 찾으려는 점진적인 조절과정을 통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어린이가 새로운 단어를 배워가는 것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가 처음 새로운 단어에 부여하는 의미는 성인의 의도와는 다소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기대하는 반응을 얻기 위해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통하여 의미를 조정해 나아간다.
이와 같은 단어의 의미 조정과정은 아동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그 단어를 성공적으로 사용한 후에도 자신이 부여한 단어의 의미와 다른 사람이 가진 의미가 서로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많은 경우, 이런 문제는 사전(辭典)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생각은 오히려 단어의 의미라는 것이 개인의 어법에 좌우되지 않는 고정된 실체라는 잘못된 생각을 부추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단어의 의미를 습득하게 되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환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전에서는 한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른 언어로 이루어진 정의와 사례를 활용하며, 그 정의와 사례들을 해석할 수 있을 때에야 의미습득이 가능하다.
- 글레이저즈펠트(von Glasersfeld)의 의미의 구성에 관한 글에서
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꽃」
⊙ 서울교대 출제경향-트렌드와 복고의 절묘한 조합?
2007년 이후로 거의 모든 대학에서 자리잡았던 논술의 트렌드라고 한다면 1600자 내외의 긴 분량을 쓰는 것보다는 짧은 분량을 위주로 독해력과 이해력, 논리력을 주로 평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지금도 그러한 트렌드는 유효하다.
연세대학교는 2011년 모의 논술에서 보여준 것처럼 900자 분량의 문제를 2개 출제했고, 고려대학교 역시 2010년까지의 3문제를 4문제로 나누어 출제했다.
성균관대는 분량 제한은 없지만 실제 600자 이상 쓰는 문제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하며, 서강대는 1200자가 최대 분량이다.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서울교육대학교는 2009년까지 수시 논술에서는 1800자를, 정시 논술에서는 1400자를 출제했다.
이렇게 봤을 때 서울교육대학교 논술은 형식에 있어서는 이른바 트렌드를 따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논제에 다양한 요구사항을 걸기는 했지만, 짧은 글을 위주로 논술을 연습해 왔던 학생들에게 1800자라는 긴 분량은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서울교육대학교도 다른 대학의 트렌드를 따른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주제의 다양화이다.
2008년까지 거의 모든 교육대학의 논술의 주제는 교육으로 수렴되어 왔고, 서울교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서울교대는 2009년 정시에서는 학문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그 해 수시에서는 세계화에 걸맞은 언어관이라는 교대의 트렌드를 벗어나 다른 대학들의 주제를 다뤘다.
정리하자면 형식은 복고를, 주제는 트렌드를 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다시 2010년 서울교대의 수시 논술에서 바뀌게 된다. 1800자라는 분량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형식은 트렌드에 따라, 주제는 복고로 다시 바뀐 것이다. 즉, 문제는 나누고 주제는 교육으로 돌아선 것이다.
전자는 평가의 정확성과 다양성을 위한 것이고 후자는 교대의 정체성을 위한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독해력과 논리력 등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목적과 교대에 걸맞은 인재를 뽑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존재한다.
⊙ 논제 분석
※ <보기>에 등장하는 딥스는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학생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문제에 답하시오.
(1)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딥스가 지닌 문제의 발생 원인을 제시하시오. (400자 내외)
(2) 제시문 (나)와 (다)에 내포된 공통된 함의(含意)에 대하여 논하시오. (400자 내외)
(3) 위 (2)에서 논한 함의에 입각하여, 딥스와 같은 학생을 지도하려면 교사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에 대하여 논하시오. (1000자 내외)
▼1번 문제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딥스가 지닌 문제의 발생 원인을 제시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먼저 보기에 나와 있는 딥스의 상황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실제 보기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며 딥스가 어떤 문제 상황인지 점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제시문 분석에서 자세하게 언급하겠지만, 딥스는 집에 가는 것을 심하게 꺼리는 학생이다.
게다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며 공격적인 성향까지 보인다.
쉽게 말해 1번 문제는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딥스의 이러한 문제 상황이 왜 발생했는지를 제시문 (가)를 통해 설명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시문 (가)의 논리를 활용하여 딥스의 문제 상황의 원인을 설명해야 한다.
당연히 제시문 (가)의 논리가 무엇인지부터 정리해 가면서 답안을 작성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논술에서 잘 못하는 것 중의 하나는 "제시문 (가)를 활용하여"라는 표현이 나오면, 제시문 (가)를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활용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학생들이 태반인데, 생각해보자. 논술의 주요 평가항목 중의 하나는 독해력이다.
그렇다면 평가자는 제시문 각각을 어떻게 읽어냈는지를 평가하고 싶지 않을까?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증거를 보여주는 방식은 당연히 내가 어떻게 읽어냈는지를 글에서 명확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제시문 (가)를 활용하여"라는 논제의 표현은 제시문 (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자신의 글에서 보여달라는 것이다.
▼2번 문제
제시문 (나)와 (다)에 내포된 공통된 함의를 논하라고 말한다.
쉽게 생각해서 제시문 (나)와 (다)의 공통점을 찾아 그것의 의미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 문제를 접했을 때 어렵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인데, 그 이유는 제시문 (나)는 이른바 비문학 제시문으로 무엇을 설명해 주는 제시문인데 제시문 (다)는 시라는 문학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설명문과 시에서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시문 분석과 답안작성에서 알 수 있듯이 어렵지 않게 공통된 함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3번 문제
2번 문제의 함의를 토대로 딥스와 같은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교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되는지를 묻고 있다.
3번 문제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2번 문제와 3번 문제에 대한 답을 잘 연결시켜야 한다.
따라서 2번 문제를 마음대로 생각나는 대로 쓸 것이 아니라 전체 주제하에서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서울교대 논술의 주제는 이른바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학생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를 학생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물어버리면 평가하기 쉽지 않으니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첫 번째 장치는 딥스의 문제 상황의 원인을 제시문 가의 이해를 바탕으로 찾아내라는 것이고, 두 번째 장치는 딥스의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설명문과 시라는 조금은 연결될 수 없는 제시문 간의 공통점을 통해 찾아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치는 이러한 연관성 안에서 교사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답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3번 문제는 첫째, 2번 문제에서 답한 함의가 가지고 있는 -딥스의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큰 방향을 먼저 제시하고,
둘째,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즉 바람직한 교사의 자세를 서술해야 한다.
⊙ 제시문 분석
<보기>
보기에 나타난 딥스의 상황부터 점검해 보자.
딥스는 수업이 모두 끝난 후 다른 학생들과 달리 집에 가려 하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어머니를 따라 집을 나서려 할 때, 딥스는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하교를 도우려는 선생님에게 무대응을 보이다, 폭력성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도 통제하지 못해 스스로 격해져 울곤 한다.
그런데 딥스의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러 일찍 오지 않는다.
이는 어머니가 바쁘기 때문이 아니다. 딥스의 이러한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에 어머니도 이미 질려 있기 때문이다.
딥스는 습관적으로 집에 귀가하기를 꺼린다.
이유는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만,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어떠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딥스와 어머니는 어떠한 이유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러한 실랑이를 피하고, 다시 말해 이러한 실랑이가 선생님과 모두 이루어져 딥스가 지치길 기다려 늦게 딥스를 데리러 가는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 역시 이러한 문제적인 성향을 보이는 딥스를 서로 맡으려 하지 않고 서로 순서를 정해 피하고 있을 뿐이다.
딥스에게 선생님들도 어머니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며,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문제아라고 여길 뿐이다.
▼제시문 (가)
제시문 (가)는 순자의 글로,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기와 생명, 지각과 의(義)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다른 동물과 달리 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자연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순자는 이러한 사회는 역할로 구분되며, 이는 의라는 것으로 실행된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각자 맡은 사회적 역할에 맞는 의, 즉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 원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해지고 인간의 삶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식이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은 효라는 의를 행해야 하며, 신하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은 순이라는 의를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제시문 (가)는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야 하는 인간은 각자의 사회적 역할에 따른 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그것을 잘 따라야 사회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시문 (나)
제시문 (나)에서는 인간이 언어의 의미를 배우는 과정을 설명한다.
즉, 인간은 언어의 의미를 알기 위해 사전을 찾아서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평생 동안 언어의 의미를 알아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완성되어 있는 언어의 의미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부합하는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상호 양립성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제시문 나는 표현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인간은 관계 속에서 과정으로서 언어의 의미를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한 어린아이가 사과를 딸기라고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해보자.
어린아이가 기대하는 것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어머니의 칭찬 혹은 관심일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연하게도 정색을 하거나 혹은 친절하게 "그건 딸기가 아니라 사과"라고 말해 줄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기대했던 반응과는 사뭇 다른 어머니의 반응을 통해 혼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사과를 딸기라고 불러본다.
당연히 어미니의 반응은 비슷하거나 좀 더 짜증스레 "그건 딸기가 아니라 사과라니까"라고 말을 할 것이다.
이제야 아이는 자신이 딸기라고 말한 대상이 사과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제시문 (나)는 이러한 과정이 단지 유아기에서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생각해보자.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단어의 의미나 개념이 잘못되었을 경우 어떻게 수정해 나가는지.
아주 자연스럽게도 누군가 알려주는 것을 통해 그러한 단어의 의미를 수정해 간다.
그것이 책이 될 수도 있고, 선생님이 될 수도 있으며,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제시문 (나)는 언어적 성장과정에는 끊임없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시문 (다)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이다.
시의 첫 부분부터 잘 나와 있듯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라는 상대는 나에게는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않는 몸짓에 불과하지만, 내가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그는 이제 나에게 의미가 있는 꽃이 된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무의미한 자신도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결국 제시문 (다)는 제시문 (나)와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인간의 존재양식을 말하려 한다.
강현정 S · 논술 선임 연구원 basekanggun@lycos.co.kr
※ <보기>에 등장하는 딥스는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학생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문제에 답하시오.
(1)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딥스가 지닌 문제의 발생 원인을 제시하시오. (400자 내외)
(2) 제시문 (나)와 (다)에 내포된 공통된 함의(含意)에 대하여 논하시오. (400자 내외)
(3) 위 (2)에서 논한 함의에 입각하여, 딥스와 같은 학생을 지도하려면 교사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에 대하여 논하시오. (1000자 내외)
<보기> 어린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자기 외투와 모자를 찾으려고 법석을 부리고 있었지만, 꼬마 딥스는 교실 한 귀퉁이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두 팔로 자기 가슴을 꽉 움켜잡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마치 집으로 간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다른 아이들의 돌아갈 채비를 도와주면서 몰래 딥스를 쳐다보곤 하였다.
이런 일이 날마다 집에 갈 시간만 되면 되풀이되었다.
다른 아이들이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가고 아무도 없을 때 선생님들은 서로 눈짓을 하고 벽 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딥스를 바라보았다.
제인 선생님이 "당신 차례예요"라고 말하며 교실을 나가 버렸다.
"딥스야, 이리 온.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지?"
헤다 선생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하였다. 하지만 딥스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반항은 매우 끈질기고 무서운 것이었다.
헤다 선생님은 다시 딥스의 코트를 들고 "자, 코트 입는 것을 도와줄게" 하며 천천히 다가갔지만 딥스는 벽에다 몸을 잔뜩 기대고서 머리를 두 팔 속에 쿡 처박은 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딥스야, 어서 입어야지. 곧 엄마가 데리러 오실 텐데." 딥스의 어머니는 언제나 늦게 오곤 하였다.
아마도 선생님이 미리 코트와 모자를 입혀놓아 실랑이를 하지 않고도 아이를 조용히 데려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헤다 선생님은 딥스 곁에 가만히 앉아서 등을 어루만지며 말을 걸었다.
"딥스야, 어서 집으로 가지 않으련?"
딥스는 맹수처럼 작은 주먹을 휘두르며, 곧 할퀴고 물 듯 덤벼들면서 "나 집에 안 가" "집에 안 가"하고 소리를 질렀다. 딥스는 매일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울곤 하였다.
-엑슬린(V. M. Axline),「딥스」에서
가물과 불에는 기(氣)는 있어도 생명(生)은 없고, 풀과 나무에는 생명은 있어도 지각(知)이 없으며, 새와 짐승에는 지각은 있어도 의(義)라는 것은 없다.
인간은 기(氣)도, 생명(生)도, 지각(知)도 가지고 있고, 그 위에 또 의(義)를 갖추고 있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무릇 인간의 힘은 소(牛)에 미치지 못하고, 달리는 속도는 말(馬)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소나 말 쪽이 인간의 이용 대상이 되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것은 인간은 사회(群)를 구성할 수 있으나, 소나 말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으로써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회적 역할의 구분(分)에 의해서이다. 사회적 역할의 구분은 무엇으로 실행되는가?
그것은 의(義)에 의해서이다.
의(義)로써 사회적 역할을 실행하면 사람들은 화합하게 되고, 화합하면 하나로 통합되고, 하나로 통합되면 힘이 증가하고 힘이 증가하면 강해지고, 강하게 되면 만물(物)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각자의 집을 짓고 편안하게 사는 것, 사계(四季)의 순환에 따라 일을 하고, 만물을 이용하여 천하에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회적 역할의 구분(分)과 각 역할에 따른 의(義)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사회를 구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사회에 사회적 역할의 구분이 없으면 분쟁이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나면 사회는 혼란해지고, 혼란하면 사람들은 흩어지고, 흩어지면 약해지고, 약해지면 만물을 이길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집을 마련하여 편안하게 살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잠시라도 예의(禮義)를 저버릴 수 없다는 말은 이것을 가리킨다.
어버이를 잘 섬기는 자를 효(孝)라 하고, 형을 잘 섬기는 자를 제(弟)라고 하며, 윗사람(上)을 잘 섬기는 자를 순(順)이라 하고, 아랫사람(下)을 잘 부리는 자를 군(君)이라 한다.
-「순자(荀子)」, 왕제(王制)에서
나우리의 언어적 성장과정은 상호 양립성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상호 양립성은 상호작용을 하는 두 주체가 모종의 고정되고 완성된 의미를 주고받거나 공유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각 주체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신의 경험에 부합하는 보다 적절한 의미를 찾으려는 점진적인 조절과정을 통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어린이가 새로운 단어를 배워가는 것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가 처음 새로운 단어에 부여하는 의미는 성인의 의도와는 다소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기대하는 반응을 얻기 위해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통하여 의미를 조정해 나아간다.
이와 같은 단어의 의미 조정과정은 아동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그 단어를 성공적으로 사용한 후에도 자신이 부여한 단어의 의미와 다른 사람이 가진 의미가 서로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많은 경우, 이런 문제는 사전(辭典)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생각은 오히려 단어의 의미라는 것이 개인의 어법에 좌우되지 않는 고정된 실체라는 잘못된 생각을 부추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단어의 의미를 습득하게 되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환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전에서는 한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른 언어로 이루어진 정의와 사례를 활용하며, 그 정의와 사례들을 해석할 수 있을 때에야 의미습득이 가능하다.
- 글레이저즈펠트(von Glasersfeld)의 의미의 구성에 관한 글에서
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꽃」
⊙ 서울교대 출제경향-트렌드와 복고의 절묘한 조합?
2007년 이후로 거의 모든 대학에서 자리잡았던 논술의 트렌드라고 한다면 1600자 내외의 긴 분량을 쓰는 것보다는 짧은 분량을 위주로 독해력과 이해력, 논리력을 주로 평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지금도 그러한 트렌드는 유효하다.
연세대학교는 2011년 모의 논술에서 보여준 것처럼 900자 분량의 문제를 2개 출제했고, 고려대학교 역시 2010년까지의 3문제를 4문제로 나누어 출제했다.
성균관대는 분량 제한은 없지만 실제 600자 이상 쓰는 문제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하며, 서강대는 1200자가 최대 분량이다.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서울교육대학교는 2009년까지 수시 논술에서는 1800자를, 정시 논술에서는 1400자를 출제했다.
이렇게 봤을 때 서울교육대학교 논술은 형식에 있어서는 이른바 트렌드를 따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논제에 다양한 요구사항을 걸기는 했지만, 짧은 글을 위주로 논술을 연습해 왔던 학생들에게 1800자라는 긴 분량은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서울교육대학교도 다른 대학의 트렌드를 따른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주제의 다양화이다.
2008년까지 거의 모든 교육대학의 논술의 주제는 교육으로 수렴되어 왔고, 서울교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서울교대는 2009년 정시에서는 학문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그 해 수시에서는 세계화에 걸맞은 언어관이라는 교대의 트렌드를 벗어나 다른 대학들의 주제를 다뤘다.
정리하자면 형식은 복고를, 주제는 트렌드를 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다시 2010년 서울교대의 수시 논술에서 바뀌게 된다. 1800자라는 분량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형식은 트렌드에 따라, 주제는 복고로 다시 바뀐 것이다. 즉, 문제는 나누고 주제는 교육으로 돌아선 것이다.
전자는 평가의 정확성과 다양성을 위한 것이고 후자는 교대의 정체성을 위한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독해력과 논리력 등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목적과 교대에 걸맞은 인재를 뽑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존재한다.
⊙ 논제 분석
※ <보기>에 등장하는 딥스는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학생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문제에 답하시오.
(1)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딥스가 지닌 문제의 발생 원인을 제시하시오. (400자 내외)
(2) 제시문 (나)와 (다)에 내포된 공통된 함의(含意)에 대하여 논하시오. (400자 내외)
(3) 위 (2)에서 논한 함의에 입각하여, 딥스와 같은 학생을 지도하려면 교사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에 대하여 논하시오. (1000자 내외)
▼1번 문제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딥스가 지닌 문제의 발생 원인을 제시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먼저 보기에 나와 있는 딥스의 상황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실제 보기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며 딥스가 어떤 문제 상황인지 점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제시문 분석에서 자세하게 언급하겠지만, 딥스는 집에 가는 것을 심하게 꺼리는 학생이다.
게다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며 공격적인 성향까지 보인다.
쉽게 말해 1번 문제는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딥스의 이러한 문제 상황이 왜 발생했는지를 제시문 (가)를 통해 설명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시문 (가)의 논리를 활용하여 딥스의 문제 상황의 원인을 설명해야 한다.
당연히 제시문 (가)의 논리가 무엇인지부터 정리해 가면서 답안을 작성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논술에서 잘 못하는 것 중의 하나는 "제시문 (가)를 활용하여"라는 표현이 나오면, 제시문 (가)를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활용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학생들이 태반인데, 생각해보자. 논술의 주요 평가항목 중의 하나는 독해력이다.
그렇다면 평가자는 제시문 각각을 어떻게 읽어냈는지를 평가하고 싶지 않을까?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증거를 보여주는 방식은 당연히 내가 어떻게 읽어냈는지를 글에서 명확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제시문 (가)를 활용하여"라는 논제의 표현은 제시문 (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자신의 글에서 보여달라는 것이다.
▼2번 문제
제시문 (나)와 (다)에 내포된 공통된 함의를 논하라고 말한다.
쉽게 생각해서 제시문 (나)와 (다)의 공통점을 찾아 그것의 의미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 문제를 접했을 때 어렵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인데, 그 이유는 제시문 (나)는 이른바 비문학 제시문으로 무엇을 설명해 주는 제시문인데 제시문 (다)는 시라는 문학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설명문과 시에서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시문 분석과 답안작성에서 알 수 있듯이 어렵지 않게 공통된 함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3번 문제
2번 문제의 함의를 토대로 딥스와 같은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교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되는지를 묻고 있다.
3번 문제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2번 문제와 3번 문제에 대한 답을 잘 연결시켜야 한다.
따라서 2번 문제를 마음대로 생각나는 대로 쓸 것이 아니라 전체 주제하에서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서울교대 논술의 주제는 이른바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학생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를 학생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물어버리면 평가하기 쉽지 않으니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첫 번째 장치는 딥스의 문제 상황의 원인을 제시문 가의 이해를 바탕으로 찾아내라는 것이고, 두 번째 장치는 딥스의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설명문과 시라는 조금은 연결될 수 없는 제시문 간의 공통점을 통해 찾아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치는 이러한 연관성 안에서 교사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답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3번 문제는 첫째, 2번 문제에서 답한 함의가 가지고 있는 -딥스의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큰 방향을 먼저 제시하고,
둘째,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즉 바람직한 교사의 자세를 서술해야 한다.
⊙ 제시문 분석
<보기>
보기에 나타난 딥스의 상황부터 점검해 보자.
딥스는 수업이 모두 끝난 후 다른 학생들과 달리 집에 가려 하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어머니를 따라 집을 나서려 할 때, 딥스는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하교를 도우려는 선생님에게 무대응을 보이다, 폭력성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도 통제하지 못해 스스로 격해져 울곤 한다.
그런데 딥스의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러 일찍 오지 않는다.
이는 어머니가 바쁘기 때문이 아니다. 딥스의 이러한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에 어머니도 이미 질려 있기 때문이다.
딥스는 습관적으로 집에 귀가하기를 꺼린다.
이유는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만,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어떠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딥스와 어머니는 어떠한 이유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러한 실랑이를 피하고, 다시 말해 이러한 실랑이가 선생님과 모두 이루어져 딥스가 지치길 기다려 늦게 딥스를 데리러 가는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 역시 이러한 문제적인 성향을 보이는 딥스를 서로 맡으려 하지 않고 서로 순서를 정해 피하고 있을 뿐이다.
딥스에게 선생님들도 어머니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며,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문제아라고 여길 뿐이다.
▼제시문 (가)
제시문 (가)는 순자의 글로,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기와 생명, 지각과 의(義)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다른 동물과 달리 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자연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순자는 이러한 사회는 역할로 구분되며, 이는 의라는 것으로 실행된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각자 맡은 사회적 역할에 맞는 의, 즉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 원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해지고 인간의 삶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식이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은 효라는 의를 행해야 하며, 신하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은 순이라는 의를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제시문 (가)는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야 하는 인간은 각자의 사회적 역할에 따른 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그것을 잘 따라야 사회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시문 (나)
제시문 (나)에서는 인간이 언어의 의미를 배우는 과정을 설명한다.
즉, 인간은 언어의 의미를 알기 위해 사전을 찾아서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평생 동안 언어의 의미를 알아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완성되어 있는 언어의 의미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부합하는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상호 양립성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제시문 나는 표현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인간은 관계 속에서 과정으로서 언어의 의미를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한 어린아이가 사과를 딸기라고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해보자.
어린아이가 기대하는 것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어머니의 칭찬 혹은 관심일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연하게도 정색을 하거나 혹은 친절하게 "그건 딸기가 아니라 사과"라고 말해 줄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기대했던 반응과는 사뭇 다른 어머니의 반응을 통해 혼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사과를 딸기라고 불러본다.
당연히 어미니의 반응은 비슷하거나 좀 더 짜증스레 "그건 딸기가 아니라 사과라니까"라고 말을 할 것이다.
이제야 아이는 자신이 딸기라고 말한 대상이 사과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제시문 (나)는 이러한 과정이 단지 유아기에서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생각해보자.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단어의 의미나 개념이 잘못되었을 경우 어떻게 수정해 나가는지.
아주 자연스럽게도 누군가 알려주는 것을 통해 그러한 단어의 의미를 수정해 간다.
그것이 책이 될 수도 있고, 선생님이 될 수도 있으며,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제시문 (나)는 언어적 성장과정에는 끊임없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시문 (다)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이다.
시의 첫 부분부터 잘 나와 있듯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라는 상대는 나에게는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않는 몸짓에 불과하지만, 내가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그는 이제 나에게 의미가 있는 꽃이 된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무의미한 자신도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결국 제시문 (다)는 제시문 (나)와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인간의 존재양식을 말하려 한다.
강현정 S · 논술 선임 연구원 basekanggu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