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發 재정위기 후폭풍··· 피치, BNP파리바 한단계 강등

유럽 은행들의 '고난기'가 시작됐다.
[Global Issue] 유럽 은행 '시련의 계절' ··· 자산 부실 우려로 신용등급 '흔들'


그리스발 유럽 재정위기의 후폭풍이 끝내 금융사들에까지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가총액 기준 유럽 3위이자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됐고,유럽 금융계의 화약고인 스페인 은행들에 대한 신용평가사들의 '부정적'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고위 임원마저 "역내 일부 은행들의 차입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며 우려를 표하고 나선 상황이다.

한편 영국의 새 내각은 부가세 등 세금 인상과 정부 복지비용 감축을 골자로 하는 고강도 긴축안을 들고 나왔으나 재계와 서민층이 동시에 반발하고 나섰다.

⊙ 재정위기가 은행 집어삼키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신용평가사 피치는 21일 프랑스 BNP파리바의 신용등급을 종전 'AA'에서 'AA-'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AA-'는 최고등급인 'AAA'보다 세 단계 낮은 등급이다. 피치는 "기업 부문과 투자은행 사업에 치우친 BNP파리바의 사업구조가 신용등급 강등의 이유"라며 "지난해 자산의 질이 현격히 악화됐고,같은 등급의 금융회사에 비해 자기자본비율도 다소 낮아 등급을 하향조정했다"고 설명했다.

BNP파리바의 신용등급 하향은 그리스발 재정적자 위기 발생 이후 첫 유럽 대형은행의 등급하락 사례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BNP파리바는 유럽 재정적자 위기의 진앙지 그리스에 60억파운드의 거액을 대출해 주는 등 소시에테제네랄,크레디아그리콜 등과 함께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에 대한 익스포저(위험 노출)가 가장 많은 은행 중 하나로 꼽혀왔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역시 이날 스페인 양대 은행인 산탄데르은행과 BBVA를 제외한 6개 주요 스페인 은행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발표하면서 "현재 일반적인 예상보다 스페인 은행들의 대출 및 운영 실적이 훨씬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대부분의 은행에 '부정적' 신용전망을 부여했다.

S&P는 라카이하,카하마드리드,방코포퓰라르,방코데사바델,이베르카하,방코인테르 등 스페인 은행들에 대해 현 등급을 유지하면서도 "내년까지 부동산 가치 급락에 따른 은행의 대출 손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몇 년간 스페인 은행들은 어려운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스페인 최대 은행인 산탄데르은행이 '스트레스 테스트(자본충실도 테스트)' 결과 추가적인 자본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스페인 은행들에 대한 위기감이 급증했다.

현재 스페인 주요 은행들은 정상적인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ECB 대출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처럼 유럽은행들에 대한 시장의 경보음이 잇따르는 가운데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이자 ECB 통화정책 이사인 크리스티앙 노이어가 "유럽 은행들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면서 역내 일부 은행들이 차입에 문제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하는 등 유럽 금융가의 위기감이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 "재정적자 못줄이면 유럽의회 투표권 회수"

[Global Issue] 유럽 은행 '시련의 계절' ··· 자산 부실 우려로 신용등급 '흔들'
유럽의 재정위기가 전 세계 민간 금융위기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시장 신뢰회복을 위한 각국의 과감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유럽의회 연설에서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한다는 '성장과 안정화 협약'을 준수하지 못한 국가에 대해선 (유럽의회) 투표권을 한시적으로 박탈하는 것을 포함,가혹한 벌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리셰 총재는 "유럽연합(EU)의 재정기준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에 대해선 현재보다 훨씬 자주 엄격한 재정보고를 강제하는 등 다양한 비경제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리셰 총재는 또 EU 각국이 재정동맹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를 도입해 유로존 각국의 재정수지를 관리하고 문제점도 적극 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영국의 '고강도 긴축안' 후폭풍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2015년 회계연도까지 공공 부문 감축 150억파운드와 증세 100억파운드를 통해 연간 250억파운드씩 절감하는 긴축안을 22일 발표했다.

재정 긴축 규모는 모두 850억파운드에 달하며 이는 최근 30년 동안 최대 규모다.

예산책임청의 앨런 버드 청장은 "지난 3월 말로 끝난 2009년 회계연도의 재정적자는 1560억파운드로,영국 GDP의 11%"라고 말했다.

영국의 적자 규모는 주요 20개국(G20) 중 가장 크며 유럽에서는 아일랜드에 이어 2위다.

이 때문에 EU 등으로부터 추가 긴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새 내각은 식품 등 주요 소비재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현행 17.5%에서 20%로 인상할 계획이다.

영국 정부가 부가세를 올리는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이는 소득세를 3% 올리는 것과 유사하며 연간 120억파운드의 세수 증대가 이뤄진다.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도 현행 18%에서 최대 50%로 높이며 은행세도 신설된다.

정부 예산 감축안에는 복지비용 동결과 감축,지방정부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공무원 퇴직연금 삭감 등이 포함됐다.

부가세 인상 등으로 인한 서민들의 부담 가중은 불가피해졌다.

구호단체와 노동계,지방자치단체 등은 감축안이 서민과 빈곤층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재계도 떨떠름한 반응이다.

영국 재계단체인 영국산업연맹(CBI)은 양도소득세 등 증세가 기업 활동을 저해할 것이라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110개 기업들은 성명을 내고 "공공 부문 감축은 환영하나 일방적인 증세는 소비 위축과 인플레이션 유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