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호 2010년도 서강대학교 수시 기출문제 문제해설과 예시답안

[생글 논술 첨삭노트] (19) 가장 쉬운 제시문부터 접근하라
제가 248호에 '쉽게 풀 수 있을 듯합니다'라고 썼지만,실제로 너무나 어려운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제 입장에서만 생각해서였을까요?

결국 학생들이 갖고 있는 유전적 다양성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 것일까요?

확실히 이번문제는 독해 문제였습니다.

지면관계상 더 자세히 설명을 하지 못하겠지만,많은 수의 학생들이 제시문 (가)의 제퍼슨 관련이야기와,제시문 (다)의 마지막 문장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한 간략한 스킬을 설명해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우선,가장 쉬운 제시문부터 접근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를 중심으로 읽고,재앙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맞지만,(가)를 제대로 읽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나)와 (다)에서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와 (다)를 정확히 이해하기만 하더라도 (가)에 좀 더 쉽게 접근하게 되지요.

가장 쉬운 제시문은 당연히 (나)죠. 우리가 흔히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곤 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떠오르는 제시문이지요.

그렇다면 (가)의 재앙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해서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가)에 제시된 인간의 다양성을 부인한다는 것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뜻이니까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그렇다면 왜 인간의 다양성을 부정할까?

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묻더군요. "그게 제시문에 단어로 나와있나요?"

나와있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몇몇 사례가 제시된 형태로서 단어가 등장하지 않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례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일반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실력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많은 학생들이 재앙을 '비형태적 특징의 차이점이 후천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단정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물론 뜻도 정확히 모르고 쓴 말이겠지만,이렇게 했을 경우 재앙의 의미가 매우 축소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가령 유전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유전적 다양성의 이야기가 없다면 (다)는 접근조차 어렵게 됩니다.

오히려 쉽게 가려면 후천적 조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유전적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하는 것이 훨씬 쉽지요.

그리고 그것이 (가)의 맨 첫 문장에 나와있지요. 잊지 않았다면 기억하실 겁니다.

제시문의 핵심은 맨 앞이나 뒤에 나와 있거나, <그러나>,<따라서>,<즉>,<결국>과 같은 연결어와 관련지어 등장한다는 사실을요.

지면관계상 이에 관련된 배경지식과 자세한 제시문 해석은 할 수가 없겠네요.

대신 메일주세요.

매우 친절한 해설서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예시답안입니다.

제시문 (가)의 재앙이란,유전적 다양성을 부인한 채 인간의 차이가 오로지 후천적 조건화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의해 나타난 문제들을 의미한다.

이는 사람들마다 유전적 차이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권리로서의 평등의 의미를 신체적-유전적 동일함의 의미로 곡해하는 사태와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유전적 차이를 무시하는 재앙은 자신의 사고방식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나타날 수 있다.

제시문 (나)의 노나라의 임금은 새와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간과한 채 인간의 방식으로 새를 대하려는 오류를 보인다. 유전적 차이에 맞는 대우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후천적인 조건화로써 이를 획일화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유전적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차별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유전적 다양성을 무시하기도 한다.

제시문 (다)에 나타나듯,현대 문명사회는 지난 역사를 통해 유전적 차이를 근거로 한 차별 문제의 심각함을 이미 경험했다.

이런 이유로 유전적으로 다양한 조건 대신 후천적 조건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 실전문제

이번주 문제는 2011학년도 중앙대 모의논술문제(인문계열) 중에서 편집해 보았습니다.

전형적인 평가문제와 대안마련 문제가 연결되어 있군요.

문제에 대한 학생글은 7월4일(일)까지 sgsgnot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대신 첨부파일을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

보내주실 때는 학교 / 이름 / 주소 / 전화번호를 같이 써서 보내주세요.

글을 보내주신 모든 학생들에게는 친절한 해설서를 보내드립니다.

또한 기초/중급 논술교재가 필요하신 분들도 메일주세요.

〔문제〕제시문 (나)에 나타난 현대 축제의 문제점을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지적하고,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문 (다)의 논지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논술하시오.(500~500자)

물어물어 처음 가본 손자의 대학은 민 노인에게 우선 크고 넓은 것의 시원함을 댓바람에 안겨 주었다.

거기에는 또,좁은 구석을 맴도는 데만 익숙해진 자를 한꺼번에 위압하고 겁먹게 하는 바람이 불고도 있었다.

그런 세계와는 등지고 살아온 민 노인에게는 한결 그랬다. 미리 교문 근처에 기다리고 있던 성규는,민 노인을 보자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그의 친구들은 한꺼번에 꾸뻑 절을 하더니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를 합창했다.

연습장이라는 운동장 한구석에는,더 많은 연희 출연자들이 제각각의 몸놀림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성규를 통해 얘기를 들었는지,하던 짓을 멈추고 일제히 인사를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성규로부터 대충의 줄거리에 대해 설명을 듣고,종이에 따로 적은 과장(科場)을 훑어본 민 노인은 자기 역할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성규의 어거지 성화에 밀려 온 꼴이기는 해도,가볍게 떠맡고 나선 데 대해 조금은 후회도 되었다.

북을 끼고 둥둥 치면서 더 그랬다.

그런 한편으로 멀리 내던져 여간해서는 만나지 못할 것으로 여겼던 자기 체온이 듬뿍 스민 옷을 다시 걸쳐 입는 순간의 감동을 맛보기도 했다.

낯선 장면과 마주쳐 다소 어리벙벙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빽빽 소리를 질러 대며 팔과 다리를 흥겹게 올리고 내려놓는 아이들과,따지고 보면 북가락의 이웃 동네인 꽹과리나 피리 소리에 섞여 팔에 힘을 모아 북을 두드리는 동안,그런 무색함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민 노인은 하루 연습만으로는 실력이 부쳐 안 되겠다며 며칠 더 나올 것을 자청했고,그러자 아이들은 환영의 박수를 쳤다.

연습이 끝나고 막걸리 집으로 옮겨 갔을 때도,아이들은 민 노인을 에워싸고 역시 성규 할아버지의 북소리는 우리 같은 졸개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명인의 경지라고 추어올렸다.

그것이 입에 발린 칭찬일지라도,민 노인으로서는 듣기 싫지 않았다.

잊어버렸던 세월을 되일으켜 주는 말이기도 했다.

일찍 점심을 먹고,여느 날의 걸음걸이로 집을 나선 민 노인은,이에 어울리지 않는 설렘으로 흔들렸다.

아직은 눈치를 채지 못한 아들 내외에 대한 심적 부담보다는,자기가 맡은 일 때문이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어우러져 돌아가는 춤판에 영감쟁이 하나가 낀다는 사실이,새삼스럽게 어색하기도 하고,모처럼의 북가락이 그런 모양으로 밖에는 선보일 수 없다는 데 대한,엷은 적막감도 씻어 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젊은 훈김들이 뿜어내는 학교 마당에 서자 그런 머뭇거림은 가당찮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시간이 되어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 속에 섞여 원진(圓陣)을 이루고 있는 구경꾼들을 대하자,그런 생각들은 어디론지 녹아 내렸다.

그 구경꾼들의 눈이 자기에게 쏠리는 것도 자신이 거쳐 온 어느 날의 한 대목으로 치면 그만이었다.

노장(老長)이 나오고 취발이가 등장하는가 하면,목중들이 춤을 추며 걸쭉한 음담패설 등을 쏟아 놓을 때마다,관중들은 까르르 웃었다.

민 노인의 북은 요긴한 대목에서 둥둥 울렸다.

깨지는 소리를 내는 꽹과리며 장구에 파묻혀 제값을 하지는 못해도,민 노인에게는 전혀 괘념할 일이 아니었다.

그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공연 전에 마신 술기운도 가세하여,탈바가지들의 손끝과 발목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북소리는 턱 턱 꽂혔다.

그새 입에서는 얼씨구!

소리도 적시에 흘러나왔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가락과 소리와,그것을 전체적으로 휩싸는 달착지근한 장단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현대 사회로 들어서면서 전통 사회가 갖고 있던 축제의 기반은 붕괴되었다.

합리화,기능화,효율화는 현대 생활의 가치이자 덕목이지만 축제의 적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개인화와 매스컴의 범람도 축제의 주역이었던 적극적인 마을 사람들(민중 · 공동체 구성원)을 수동적인 자리로 물러나 앉게 만들어 버렸다.

오락 산업이 엔터테이너들을 전면으로 내세워 놓을 뿐만 아니라 조작된 자유 시간을 만들어 내어 민중은 단순한 관객이 되거나 청중으로 몰락한다.

문화 기층의 축제가 지녔던 종교적 의미,그 거룩함과 장난스러움의 오묘한 상관관계가 하나로 통합되던 바탕도 즐거움을 좇는 세속화된 축제의 집행과 오락성 때문에 원래의 빛이 바래 버렸다.

자연의 리듬을 탔던 전통 사회의 아름다운 신화와 역사를 극화시켜 그것을 환상적으로 재현하고 재연했던 지난날의 민중의 잔치들은 문화적으로 오염된 환경 때문에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든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놀이는 순수한 생리 현상이나 심리적 반사 작용 이상의 것이다.

놀이는 순수한 물리적 또는 순수한 생물학적 행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놀이는 하나의 의미 기능이다.

즉 놀이에는 뜻이 있다는 말이다.

놀이 속에는 생활의 직접적인 욕구를 초월하고 동시에 생활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놀고 있는(at play)'어떤 것이 있다.

놀이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역동적인 원칙을 단지 '본능'이라고 말해 버린다면,아무 설명도 되지 못한다.

반면 이것을 '정신'이나 '의지'라고 규정하는 것 역시 지나친 일이 된다.

인간에게 놀이가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계속 우주 속에서 인간이 점유한 실존적 위치의 초논리적 특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동물은 논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동물은 기계적인 물체 이상이다.

인간은 놀며,논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분명 인간은 이성적 존재 이상이다.

왜냐하면 놀이란 비이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준 S · 논술 선임 연구원 sgsgnot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