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이라는 용어에서 관치금융 시대의 느낌이 난다. '금융회사'로 용어를 변경하는 것을 검토해 보라."
"과거 금융이 정부 소유였을 때 금융기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지금 시대에 적합한 용어인지 의문이다. "
2009년 5월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법제처장으로부터 '금융기관 관련 법률 개정안'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금융기관'이란 용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금융기관'이나 '금융회사'는 그동안 시중에서 혼용해 써오던 말이다.
전통적으로 언론이나 금융권에서 '금융기관'이란 말을 써왔으나 대략 2000년대 들어서면서 언론에서 '금융회사'란 말을 간간이 쓰기 시작했다.
'금융기관'의 사전적 풀이는 '예금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기업이나 개인에게 대부하거나 증권 투자 따위를 하는 기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은행,신탁 회사,보험 회사,농협,수협,증권 회사,상호 신용 금고 따위가 있다.
이에 비해 '금융회사'는 '공채 · 사채 · 주식 따위의 유가 증권이 발행되는 경우에,이를 맡아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일을 하는 회사'를 뜻한다.
단자 회사,투자 금융 회사,증권 회사 등을 가리킨다.
그러니 사전적 풀이만 보면 금융기관과 금융회사는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두 말에는 두 가지 큰 차이가 있다.
하나는 금융의 공적 기능을 얼마나 강조하느냐에 따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언어 의식에서 느끼는 '권위주의'의 부정적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것이다.
은행 등을 '금융기관'이라 부를 땐 전통적으로 강조돼온 공공성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비해 '금융회사'란 말에는 주식회사로서의 영리추구 활동을 부각시킬 수 있는 말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두 관점의 차이는 2007년에도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해 5월 당시 윤증현 금융감독원장과 은행장들의 간담회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은행을 금융회사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하면서 때 아닌 호칭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금융기관'을 '금융회사'로 바꾸려는 노력은 다른 측면에선 말에 담긴 권위주의의 그림자를 털어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이는 주로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를 통해 이뤄져 왔다.
'기관'의 일반적인 의미는 '사회생활의 영역에서 일정한 역할과 목적을 위해 설치한 기구나 조직'을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정보기관'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오랜 언어 경험에서 '기관'은 강제적이고 권위적인, 그래서 부정적 이미지의 상징으로 자리 잡혀온 게 사실이다.
언론에선 그래서 비교적 일찍부터 특히 시중은행을 가리킬 때 금융기관 대신 금융회사를 써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기사검색 사이트인 KINDS를 통해 보면 신문에서 '금융회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0년 들어서이며 2005년께부터는 매우 활발하게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언어 습관은 뿌리 깊은 것이어서 지금도 무심코 민영은행을 금융기관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지만 이도 점차 금융회사란 말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일이다.
권위주의를 담는 언어적 장치는 1차적으론 대부분 단어 차원에서 만들어진다.
글쓰기에서 이보다 더 눈에 띄지 않게,더 효과적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기법은 문장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방식이 피동구문이다.
(가)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고발권이 일반 국민에게도 부여된다.
(나)일반 국민도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해 고발권을 갖게 된다.
(가)와 (나)는 표층구조에서는 서로 다른 문장이지만 심층구조에서는 같은 의미를 갖는 하나의 문장이다.
누구나 (가)에 비해 (나)가 훨씬 자연스럽고 읽기에 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와 같은 문장을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주어를 무엇으로 잡았는가에 있다.
'국민'이란 주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와 같은 형식의 문장이 쓰이는 것은 '피치자로서의 국민'이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나)로 써야 할 문장이 (가)의 문장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실에 대한 해석을 '시혜'의 시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에서 특수한 가치를 갖고 있는 용어나 문장 형태는 그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과거 금융이 정부 소유였을 때 금융기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지금 시대에 적합한 용어인지 의문이다. "
2009년 5월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법제처장으로부터 '금융기관 관련 법률 개정안'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금융기관'이란 용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금융기관'이나 '금융회사'는 그동안 시중에서 혼용해 써오던 말이다.
전통적으로 언론이나 금융권에서 '금융기관'이란 말을 써왔으나 대략 2000년대 들어서면서 언론에서 '금융회사'란 말을 간간이 쓰기 시작했다.
'금융기관'의 사전적 풀이는 '예금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기업이나 개인에게 대부하거나 증권 투자 따위를 하는 기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은행,신탁 회사,보험 회사,농협,수협,증권 회사,상호 신용 금고 따위가 있다.
이에 비해 '금융회사'는 '공채 · 사채 · 주식 따위의 유가 증권이 발행되는 경우에,이를 맡아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일을 하는 회사'를 뜻한다.
단자 회사,투자 금융 회사,증권 회사 등을 가리킨다.
그러니 사전적 풀이만 보면 금융기관과 금융회사는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두 말에는 두 가지 큰 차이가 있다.
하나는 금융의 공적 기능을 얼마나 강조하느냐에 따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언어 의식에서 느끼는 '권위주의'의 부정적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것이다.
은행 등을 '금융기관'이라 부를 땐 전통적으로 강조돼온 공공성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비해 '금융회사'란 말에는 주식회사로서의 영리추구 활동을 부각시킬 수 있는 말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두 관점의 차이는 2007년에도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해 5월 당시 윤증현 금융감독원장과 은행장들의 간담회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은행을 금융회사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하면서 때 아닌 호칭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금융기관'을 '금융회사'로 바꾸려는 노력은 다른 측면에선 말에 담긴 권위주의의 그림자를 털어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이는 주로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를 통해 이뤄져 왔다.
'기관'의 일반적인 의미는 '사회생활의 영역에서 일정한 역할과 목적을 위해 설치한 기구나 조직'을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정보기관'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오랜 언어 경험에서 '기관'은 강제적이고 권위적인, 그래서 부정적 이미지의 상징으로 자리 잡혀온 게 사실이다.
언론에선 그래서 비교적 일찍부터 특히 시중은행을 가리킬 때 금융기관 대신 금융회사를 써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기사검색 사이트인 KINDS를 통해 보면 신문에서 '금융회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0년 들어서이며 2005년께부터는 매우 활발하게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언어 습관은 뿌리 깊은 것이어서 지금도 무심코 민영은행을 금융기관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지만 이도 점차 금융회사란 말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일이다.
권위주의를 담는 언어적 장치는 1차적으론 대부분 단어 차원에서 만들어진다.
글쓰기에서 이보다 더 눈에 띄지 않게,더 효과적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기법은 문장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방식이 피동구문이다.
(가)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고발권이 일반 국민에게도 부여된다.
(나)일반 국민도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해 고발권을 갖게 된다.
(가)와 (나)는 표층구조에서는 서로 다른 문장이지만 심층구조에서는 같은 의미를 갖는 하나의 문장이다.
누구나 (가)에 비해 (나)가 훨씬 자연스럽고 읽기에 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와 같은 문장을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주어를 무엇으로 잡았는가에 있다.
'국민'이란 주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와 같은 형식의 문장이 쓰이는 것은 '피치자로서의 국민'이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나)로 써야 할 문장이 (가)의 문장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실에 대한 해석을 '시혜'의 시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에서 특수한 가치를 갖고 있는 용어나 문장 형태는 그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