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고전읽기] 69. 다니엘부어스틴「이미지와 환상」
이미지,우리를 둘러싼 감옥


1962년에 출간된 '이미지와 환상'의 원제목은 '이미지: 미국 가짜 사건에 대한 안내(The Image:A Guide to Pseudo-events in America)'이다.

다니엘 부어스틴은 미국다운 것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학자다.

그의 책은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로 쓰일 정도로 미국인들이 모르는 미국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타임지는 그를 비방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은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 선도국가로서 미국의 본질을 알려고 하는 많은 곳에서 그를 객원교수로 초대하여 미국사에 대한 강의를 맡겼다.

그런데 그가 바라보는 미국의 오늘날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매체가 발전하면서 이제 실제 사건보다 대중매체에 보도되어야 하는 사건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부어스틴은 가짜사건(의사사건 · pseudo-event)이라고 말한다.

가짜사건이란 항상 새로운 기사를 실어야하는 언론이 만들어 내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짜사건은 진짜사건보다 더 잘 정리되어 있고 진짜사건보다 더 잘 전달될 수 있다.

왜냐하면 미리 충분히 구성하고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짜사건은 진짜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이고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인다.

이러한 가짜사건이 상업적 논리나 권력과 결합하게 될 때 큰 파괴력을 가진다.

숙명여대에서는 상업적 논리로 만들어진 가짜사건에 대해서 문제가 출제되었다.

⊙ 숙명여대 2006 수시2 인문계 문제

다음 글에 직 · 간접적으로 서술된 것을 바탕으로 '의사사건'의 일반적인 특징 두 가지를 적으시오.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의사사건의 예 하나를 제시하되,그것을 의사사건으로 볼 수 있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서술하시오.

의사사건(擬似事件 · pseudo-event)의 전형적인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에드워드 버나이스(Edward Bernays)가 1923년에 쓴 '여론을 밝힌다'에는 다음과 같은 예가 소개되어 있다.

한 호텔의 공동 소유주들이 홍보 전문가와 상담하였다.

호텔 소유주들은 홍보 전문가에게 호텔의 명성을 높이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덜 복잡한 시대였으므로 홍보 전문가의 방안은 아마도 새로운 요리사의 고용,배관 시설 교체,호텔 룸 재단장,로비에 화려한 장식등 설치 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홍보 전문가가 제안한 방안은 좀 더 간접적인 것이었다.

그는 호텔 측에 호텔 개장 30주년 기념식을 열 것을 제안했다.

이에 그 호텔은 그 지역 최고 은행장,사교계 여자 거물 · 유명 변호사 · 목사 등으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했고,호텔이 그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연회 형식의 '이벤트'를 기획하였다.

기념 연회가 열리는 동안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이 행사가 언론에 널리 보도되었으며,호텔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이것이 바로 의사사건이다.

이 사례는 여러모로 의사사건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형태의 기념 행사는 다소간 대중을 오도(誤導)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만약에 그 호텔이 정말로 지역 사회에 기여한 바가 없다면,호텔은 지역 유지들로 기념 행사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지 말았어야 했다.

반면에 호텔이 진정으로 지역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호텔은 홍보 전문가에 의해 기획된 그런 거창한 행사를 마련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념 행사는 요란하게 진행되었고,그 기념 행사 자체가 호텔이 그 지역 사회에 정말 중요한 기관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다. 그

행사가 현실적으로 호텔에 그럴 듯한 명성을 부여한 것이다.

또한 그런 기념 행사의 가치를 높인 것은 전적으로 신문 · 잡지 · 텔레비전 · 라디오 등에 소개된 사진과 기사들이다.

그 이벤트에 미래의 잠재 고객을 사로잡을 힘을 준 것은 바로 언론 보도이다.

언론에 보도될 만한 사건을 만드는 힘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만들어 내는 힘과 같다.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전투에 나서기를 꺼리는 장군에게 나폴레옹이라면 아마 다음과 같은 가상의 말을 했을 것이다.

"야! 나는 얼마든지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어!"

20세기 의사사건의 창조자는 바로 홍보 전문가이며,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현대 홍보 전문가의 큰소리는 나폴레옹의 허세와 비슷하다.

호텔의 의사사건을 예시한 버나이스는 "홍보 전문가는 뉴스 가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뉴스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보 전문가들은 사건의 창조자이다.

- 다니엘 부어스틴, '이미지와 환상'

⊙ 이미지와 권력

부어스틴은 정치권력의 문제에서 다양한 가짜사건의 사례를 들고 있다.

그 중에서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벌어졌던 케네디와 닉슨의 대통령 후보자 TV토론을 들고 있다.

TV토론에서는 2분30초 안에 질문과 답변을 해야 했다.

두 후보자 모두 정치 ·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2분 안에 제대로 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서 복잡한 문제는 은근슬쩍 다른 주제로 돌려버렸다.

이 방송을 시청한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게 되는데 이것은 후보자가 얼마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적당한가보다는 실제로 TV라는 매체가 주는 복잡한 상황과 스트레스에 얼마나 잘 대처했느냐에 따라 판가름 나게 된다.

결국 TV토론이라는 가짜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진정한 능력이 아니라 가짜자질을 부각시키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가짜사건은 다른 가짜사건을 낳게 되는데 TV토론 전과 후의 여론조사를 통해 지지도를 조사함으로써 TV토론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는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실제로 이 TV토론은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서 실제 후보자들은 이제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보다 오히려 TV토론이 요구하는 순발력을 키우고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가 더 중요한 것으로 자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현대인들은 정확하게 자각하고 있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부어스틴은 현대인은 가짜사건만 유일하게 중요한 사건이라 믿고 있고 가짜사건이 과장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짜사건은 다양한 변주를 거친다.

이제 TV에 나오는 사람은 유명인사가 되어 실제의 삶보다 TV적 삶이 더 중요한 삶이 되어 버린다.

여행은 관광이 되어 볼거리가 풍부한 관광이 마치 그 나라를 여행하고 온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책은 해체되어 요약된 것이 원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쳐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책들이 중요한 읽을거리가 된다.

이러한 현실은 부어스틴이 바라본 1960년대 미국의 상황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우리의 상황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미지는 보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부에서 기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이르기까지 이미지는 전략이며 생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이미지가 본질을 대체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보다나은 이미지를 위해 자신의 진정성을 내다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광고다.

광고의 질서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강제로서 작동한다. 광고가 제공하는 이미지에 맞추어 살다보면 어느새 자신을 잃어버리고 광고의 감옥,이미지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

그러나 이미지는 소비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회적 산물일 뿐이다.

결국 현실을 망각하고 이미지에 몰입하면 할수록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이미지에 의해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지금 · 여기에서 자신을 정립하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최첨단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300년 전 칸트가 말한 자신의 이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용기를 가지라는 계몽의 요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법성 S · 논술 선임연구원 greennam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