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글다’와 ‘여물다’는 같이 쓰는 말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해서 그런지 마음이 영 (찝찝하네/찜찜하네)."

"그의 얘기는 우리 마음을 (덥혀/데워) 주는 훈훈한 미담이야."

"그는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해서/텁수룩해서) 첫 인상이 지저분해 보여."

우리말 가운데는 정서법에 맞는 표현보다 오히려 비표준어를 쓰는 게 더 익숙한 경우가 꽤 있다.

예문에 나오는 '찝찝하다,덥히다,덥수룩하다' 같은 말은 오랫동안 비표준어로 분류돼 정식으로 단어 대접을 받지 못하던 것이다.

하지만 시일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오히려 표준어보다 쓰임새가 더 빈번해지자 지금은 모두 표준어로 승격된 말들이다. 단어로 인정받아 사전에 올랐다는 뜻이다.

'마음에 꺼림칙한 느낌이 있다'란 의미로 쓰는 단어는 예전부터 '찜찜하다'를 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찝찝하다'란 말을 일상적으로 더 많이 쓰게 됐다. '덥히다'와 '데우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덥다'의 사동형,즉 '식었거나 찬 것을 덥게 하다'는 말은 원래 '데우다'이다.

'물을 데우다/음식을 데우다'처럼 쓰인다.

그런데 실제론 '데우다'보다 '덥다'에다 사동접미사 '히'를 붙인 말 '덥히다'가 더 많이 쓰인다.

특히 '가슴을 덥히는 훈훈한 소식' 같은 표현에선 이를 '가슴을 데우는 훈훈한 소식'이라 하면 오히려 어색해 잘 쓰이지 않는다.

이 밖에도 '(날씨가) 후덥지근하다''(곡식이)영글다' 등과 같은 말은 과거에는 표준어법이 아니라고 해서 이들을 '후텁지근하다,여물다'라고 바꿔 써오던 것이지만 지금은 모두 표준어가 됐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없던 말들이 새로 생겨 '찜하다,동선(動線)' 같은 말들이 수용되기도 하고,방언이라 해서 '느닷없이' 정도로 바꿔 써오던 '뜬금없다' 역시 이제는 당당히 표준어로 대접 받고 있다.

'자리매김'이란 말도 예전엔 단어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단어가 됐다.

국립국어원이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을 발간했을 때만 해도 '자리다툼' '자리바꿈'은 표제어로 올렸지만 '자리매김'은 수용하지 않았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활발하게 쓰임새를 보이는 말이었다.

가령 '오는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G20회의는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처럼 쓰인다.

'사회나 사람들의 인식 따위에 어느 정도의 고정된 위치를 차지함'이란 뜻을 담은 '자리매김'은 나중에 <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판에서 정식 단어로 처리돼 표제어로 올랐다.

어떤 말이 단어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일을 빈번하게,광범위한 지역과 계층에서 지속적으로 쓰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