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으로 가는 패스포트… 국력 과시·대중 외교의 場
세계박람회(엑스포 · Expo)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힌다.
엑스포는 전시회를 뜻하는 'Exposition'의 줄임말.
다음 달 1일부터 6개월간 중국 상하이에선 엑스포가 열린다.
2월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그리고 6월로 예정된 남아공월드컵과 함께 올해는 3대 이벤트가 모두 열리는 셈이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올해 상하이 엑스포를 연다.
세계의 공장, 세계 2위의 무역대국, 세계 최대 규모 외환보유국,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국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중국이 상하이 엑스포를 계기로 '차이나 파워'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 엑스포는 선진국 진입을 위한 패스포트
올림픽과 월드컵은 스포츠를 통해 인간의 능력을 겨루는 '경쟁 이벤트'다.
이에 비해 엑스포는 인간의 능력이 이뤄낸 발전상을 과시하는 '전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엑스포의 효시는 1851년 런던 박람회다.
당시엔 매스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은 때라서 생소한 발명품과 건축물 등이 관람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연극 등 문화공연뿐 아니라 과학기술과 산업도 구경거리가 된 것이다.
이런 강력한 선전 효과를 노려 각국은 앞다퉈 자국의 발전성과를 과시하는 데 엑스포를 적극 활용했다.
20세기 초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로 유럽 선진국들이 엑스포를 통한 국력 과시에 열을 올렸다.
그래서 이런 열강들이 자신들의 뛰어난 과학기술과 산업을 앞세워 제국주의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기회로 삼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으로 엑스포는 첨단기술과 발명품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엑스포는 개최국이 자국 과학기술과 산업의 우수성을 뽐내는 것에 더해 환경오염 지속가능성장 등 인류가 직면한 공동의 문제들에 대해 해결방안과 비전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엑스포엔 '경제 · 문화 올림픽'이란 별칭이 붙게 됐다.
인류가 이룩한 과학적 · 문화적 성과와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는 세계인의 축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엑스포는 전 세계인을 상대로 국가 이미지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대중 외교의 장'이다.
이런 점에서 엑스포는 올림픽과 함께 선진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패스포트'로 불리기도 한다.
올림픽과 엑스포를 치러야 비로소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한 데 이어 1993년 대전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베이징올림픽 2년 만에 다시 엑스포를 개최하는 중국도 선진사회 진입을 위한 패스포트를 얻게 되는 셈이다.
⊙ 엑스포의 역사
증기기관 전화기 자동차 아이스크림 비행기 TV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인류 역사에서 손꼽히는 발명품들이다. 또 한결같이 엑스포를 통해 소개된 '세계박람회의 유산'이다.
증기기관은 1851년 런던 박람회에 전시됐고, 이후 이를 이용한 증기기관차가 널리 보급됐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87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박람회에선 전화기가 선보였다.
1885년 앤트워프 박람회 개최 후 세계 최초의 상용 자동차가 출시됐고,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에서 비행기가 전시됐다.
TV는 1939년 뉴욕 박람회를 통해 시장에 등장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엑스포에선 근대의 신기술과 신제품이 잇따라 나타났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모더니티(근대성 · modernity)'가 더욱 빛을 발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엑스포는 근대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발명품이면서, 다른 근대성의 산물들을 확산시키는 통로의 역할을 했다.
이처럼 근대성이 초기 엑스포의 화두로 떠올랐고, 이에 따라 엑스포는 근대성을 주도한 서구 선진국들의 전유물이 됐다.
19세기 선도적인 산업대국이었던 영국이 1851년 런던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근대 엑스포의 역사를 열었다.
런던 박람회는 1만4000개의 출품작과 600만명의 관람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외교경로를 통해 다른 나라들을 초청했고, 25개국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런던 박람회가 열린 수정궁(Crystal Palace)은 안정성을 갖춘 유리 건축물로 세계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다.
영국에 이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엑스포를 개최했다.
프랑스는 1889년 파리 박람회를 열면서 파리 서부의 연병장 등으로 쓰여 낙후된 지역에 에펠탑을 세웠다.
박람회 개최를 희망하는 국가가 늘면서, 개최국과 참가국 간 갈등이 발생했다.
이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1912년 국제기구 설립 논의가 진행됐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됐다.
이후 1928년엔 31개국 대표가 파리에 모여 '국제박람회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세계박람회기구(BIE, Bureau of International Exposition)를 설립했다.
이 협약 제1조에 따르면 박람회는 일반 대중의 교육과 계몽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인류 노력에 의해 성취된 발전성과를 전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박람회를 '한 시대가 달성한 성과를 확인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무대'로 규정한 것이다.
BIE는 각국의 신청을 받아 박람회를 공인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BIE의 공인 엑스포는 등록(Registered)박람회와 인정(Recognized)박람회로 나뉜다.
등록박람회는 5년마다 한 번씩 열리고, 기간은 6주~6개월이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이에 비해 인정박람회는 2개 등록박람회 사이에 열리며, 기간은 3주~3개월로 짧다. 주제도 특화돼야 한다.
⊙ 도시개발과 인류 공통과제 해결에도 기여
BIE가 공인하는 엑스포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엑스포의 성격도 바뀌었다.
개최국의 국력 과시 목적 외에 엑스포를 계기로 도시를 개발하고, 인류 공통과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유럽 국가들로부터 엑스포 주도권을 넘겨받은 미국은 시카고 LA 뉴욕 등에서 잇따라 박람회를 열었다.
해당 도시에 도서관 미술관 공원 등을 새로 건설하는 등 낙후지역 개발 수단으로 엑스포를 적극 활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엔 엑스포가 리스본 바르셀로나 등 유럽 도시의 쇠퇴지역 중흥을 이끄는 계기로 작용했다.
전쟁으로 파괴된 구도심을 다시 살려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엑스포는 인류 공통의 이슈에 대한 의견을 결집하는 장소로도 부상했다.
인류 공통의 아젠다를 설정해 이것의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왔다.
1970년 일본 오사카 박람회는 '인류의 진보와 화합'이란 주제로 자원을 아끼고 오염을 줄이는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2000년 독일 하노버 박람회는 '인류 자연 과학기술-활기차게 발전하는 새로운 세계'를 주제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강조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세계박람회(엑스포 · Expo)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힌다.
엑스포는 전시회를 뜻하는 'Exposition'의 줄임말.
다음 달 1일부터 6개월간 중국 상하이에선 엑스포가 열린다.
2월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그리고 6월로 예정된 남아공월드컵과 함께 올해는 3대 이벤트가 모두 열리는 셈이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올해 상하이 엑스포를 연다.
세계의 공장, 세계 2위의 무역대국, 세계 최대 규모 외환보유국,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국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중국이 상하이 엑스포를 계기로 '차이나 파워'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 엑스포는 선진국 진입을 위한 패스포트
올림픽과 월드컵은 스포츠를 통해 인간의 능력을 겨루는 '경쟁 이벤트'다.
이에 비해 엑스포는 인간의 능력이 이뤄낸 발전상을 과시하는 '전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엑스포의 효시는 1851년 런던 박람회다.
당시엔 매스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은 때라서 생소한 발명품과 건축물 등이 관람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연극 등 문화공연뿐 아니라 과학기술과 산업도 구경거리가 된 것이다.
이런 강력한 선전 효과를 노려 각국은 앞다퉈 자국의 발전성과를 과시하는 데 엑스포를 적극 활용했다.
20세기 초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로 유럽 선진국들이 엑스포를 통한 국력 과시에 열을 올렸다.
그래서 이런 열강들이 자신들의 뛰어난 과학기술과 산업을 앞세워 제국주의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기회로 삼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으로 엑스포는 첨단기술과 발명품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엑스포는 개최국이 자국 과학기술과 산업의 우수성을 뽐내는 것에 더해 환경오염 지속가능성장 등 인류가 직면한 공동의 문제들에 대해 해결방안과 비전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엑스포엔 '경제 · 문화 올림픽'이란 별칭이 붙게 됐다.
인류가 이룩한 과학적 · 문화적 성과와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는 세계인의 축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엑스포는 전 세계인을 상대로 국가 이미지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대중 외교의 장'이다.
이런 점에서 엑스포는 올림픽과 함께 선진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패스포트'로 불리기도 한다.
올림픽과 엑스포를 치러야 비로소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한 데 이어 1993년 대전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베이징올림픽 2년 만에 다시 엑스포를 개최하는 중국도 선진사회 진입을 위한 패스포트를 얻게 되는 셈이다.
⊙ 엑스포의 역사
증기기관 전화기 자동차 아이스크림 비행기 TV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인류 역사에서 손꼽히는 발명품들이다. 또 한결같이 엑스포를 통해 소개된 '세계박람회의 유산'이다.
증기기관은 1851년 런던 박람회에 전시됐고, 이후 이를 이용한 증기기관차가 널리 보급됐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87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박람회에선 전화기가 선보였다.
1885년 앤트워프 박람회 개최 후 세계 최초의 상용 자동차가 출시됐고,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에서 비행기가 전시됐다.
TV는 1939년 뉴욕 박람회를 통해 시장에 등장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엑스포에선 근대의 신기술과 신제품이 잇따라 나타났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모더니티(근대성 · modernity)'가 더욱 빛을 발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엑스포는 근대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발명품이면서, 다른 근대성의 산물들을 확산시키는 통로의 역할을 했다.
이처럼 근대성이 초기 엑스포의 화두로 떠올랐고, 이에 따라 엑스포는 근대성을 주도한 서구 선진국들의 전유물이 됐다.
19세기 선도적인 산업대국이었던 영국이 1851년 런던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근대 엑스포의 역사를 열었다.
런던 박람회는 1만4000개의 출품작과 600만명의 관람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외교경로를 통해 다른 나라들을 초청했고, 25개국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런던 박람회가 열린 수정궁(Crystal Palace)은 안정성을 갖춘 유리 건축물로 세계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다.
영국에 이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엑스포를 개최했다.
프랑스는 1889년 파리 박람회를 열면서 파리 서부의 연병장 등으로 쓰여 낙후된 지역에 에펠탑을 세웠다.
박람회 개최를 희망하는 국가가 늘면서, 개최국과 참가국 간 갈등이 발생했다.
이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1912년 국제기구 설립 논의가 진행됐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됐다.
이후 1928년엔 31개국 대표가 파리에 모여 '국제박람회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세계박람회기구(BIE, Bureau of International Exposition)를 설립했다.
이 협약 제1조에 따르면 박람회는 일반 대중의 교육과 계몽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인류 노력에 의해 성취된 발전성과를 전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박람회를 '한 시대가 달성한 성과를 확인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무대'로 규정한 것이다.
BIE는 각국의 신청을 받아 박람회를 공인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BIE의 공인 엑스포는 등록(Registered)박람회와 인정(Recognized)박람회로 나뉜다.
등록박람회는 5년마다 한 번씩 열리고, 기간은 6주~6개월이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이에 비해 인정박람회는 2개 등록박람회 사이에 열리며, 기간은 3주~3개월로 짧다. 주제도 특화돼야 한다.
⊙ 도시개발과 인류 공통과제 해결에도 기여
BIE가 공인하는 엑스포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엑스포의 성격도 바뀌었다.
개최국의 국력 과시 목적 외에 엑스포를 계기로 도시를 개발하고, 인류 공통과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유럽 국가들로부터 엑스포 주도권을 넘겨받은 미국은 시카고 LA 뉴욕 등에서 잇따라 박람회를 열었다.
해당 도시에 도서관 미술관 공원 등을 새로 건설하는 등 낙후지역 개발 수단으로 엑스포를 적극 활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엔 엑스포가 리스본 바르셀로나 등 유럽 도시의 쇠퇴지역 중흥을 이끄는 계기로 작용했다.
전쟁으로 파괴된 구도심을 다시 살려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엑스포는 인류 공통의 이슈에 대한 의견을 결집하는 장소로도 부상했다.
인류 공통의 아젠다를 설정해 이것의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왔다.
1970년 일본 오사카 박람회는 '인류의 진보와 화합'이란 주제로 자원을 아끼고 오염을 줄이는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2000년 독일 하노버 박람회는 '인류 자연 과학기술-활기차게 발전하는 새로운 세계'를 주제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강조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