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폐쇄 조치로 물품공급 부족 초래… 되레 인플레이션 키워
[Focus] 화폐 개혁 ‘긁어 부스럼’… 북한 경제 파탄 나나
북한은 지난해 11월30일을 기해 전격적인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개혁의 핵심은 구권과 신권의 교환이었다. 교환비율은 100 대 1로서,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교환해줬는데, 가구당 10만원(구화폐 기준)까지만 교환할 수 있도록 한도를 뒀다.

교환기간은 화폐 개혁 당일부터 12월6일까지 단 일주일간. 이 기간 내에 바꾸지 못한 돈과 비합법적으로 외국에 나가 있는 돈은 모두 무효처리됐다.

화폐개혁 관련 정보는 북한 당국의 보도통제 때문에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됐다.

2002년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는 7 · 1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 화폐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목적과 사회주의식 분배체제를 강화하려는 정책적 의도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개방조치에 따라 생겨난 '돈주(큰 상인)' 들의 자금을 중심으로 암거래시장에서 유통 중인 지하자금을 끌어내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로부터 4개월, 화폐개혁은 북한 주민들의 반발을 초래하고 물가 폭등을 유발하는 등 북한 사회에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북한의 화폐개혁은 과연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북한경제 글로벌포럼'은 화폐개혁의 성패 여부와 개혁 이후 북한의 향방 등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오갔다.

⊙ 북한 화폐개혁은 절반의 성공인가, 완전한 실패인가?

이날 토론은 북한의 화폐개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놓고 입장이 갈렸다.

경제정책상으로 볼 때 북한의 화폐개혁은 이후의 추이를 볼 때 결과적으로 실패라는 평가가 내려진 반면 정치 · 사회적 효과를 함께 볼 때는 절반의 성공 정도의 평점을 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완전한 실패'론을 요약하면 "화폐개혁은 시장기능을 정지시킴으로써 물자공급을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촉발함으로써 당초 의도한 물가 안정을 기하지 못한 실패작"이라는 것이다.

스콧 스나이더 한미정책센터 소장 등은 화폐개혁이 애초 동기와 목적에서부터 잘못된 실패였다고 단언했다.

북한당국은 화폐개혁을 통해 1960년대 계획경제 · 배급제로의 복귀를 시도했지만, 북한주민의 부(富)를 몰수하는 시대착오적인 강압조치가 거센 반발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경제에 대한 당의 통제 강화와 개인재산 몰수라는 화폐개혁의 동기 자체가 처음부터 빗나간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목적에도 불구하고 시장 폐쇄조치로 물품공급 부족을 자초했고, 이 때문에 도리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정책의 잘못도 화폐개혁 실패의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실제로 국영상점의 공급능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주민들이 자체 생산한 물품을 예전처럼 선뜻 시장에 내놓지 못하게 돼 물가 폭등을 더욱 키웠다.

주펑 베이징대 교수는 이것을 두고 "북한은 공급을 늘리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을 잡기 어렵다는 기초적인 경제학 지식도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북한 관련 소식통들에 따르면 주민들의 반발은 폭동설이 나돌 정도로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상당한 현금을 갖고 있던 '돈주'등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결국 가구당 10만원을 한도로 했던 신권교환금액을 50만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정치 · 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일정한 효과를 거둔 '절반의 성공작'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경제적으로 볼땐 실패했을지 몰라도 사회적으로 민주주의가 싹트게 하는 자각효과를 불러왔다"는 평가다(김미덕 일 다마대 교수).

당의 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자생적인 저항이 조직적으로 표출된 것이 단적인 사례다.

⊙ 역효과만 낳은 국가통제 강화

북한 화폐개혁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입장은 크게 갈렸지만, 시장경제를 억누르고 주민과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조치였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화폐개혁은 당초 의도와 달리 주민들의 불만을 폭증시킴으로써 국가통제력 약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북한주민의 60% 정도가 생계를 꾸려온 터전인 암시장을 계획경제에 묶어 하나로 통제하려는 것이 북한당국의 의도였는데, 현실은 반대로 움직였다.

무엇보다 국영 배급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화폐개혁은 모든 시장참여자를 범죄자로 만들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주민뿐만 아니라 권력집단인 관료조직에까지도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김병연 교수(서울대)는 "시장에서 뇌물을 받거나 무역 이익을 챙겨온 엘리트 관료집단에서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면서 "화폐개혁은 시장의 힘을 과소평가한 큰 실수"라고 단정했다.

북한의 현상황은 기존의 경제적 해체에 이어 정치적 해체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것이다.

북한주민의 동요도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참석자들은 지적했다.

"과거에는 북한이 모든 문제를 미국 탓으로 돌렸으나, 이번 화폐개혁을 계기로 북한주민들은 그들의 지도자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체제유지를 위협할 만한 사회적 동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번 화폐개혁을 주도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의 실각과 처형설도 아직 미확인 정보이긴 하지만, 주민의 동요에 대한 북한 당국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 북한체제 붕괴 가능성 있나

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이든 절반의 성공이든, 북한체제가 이를 계기로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됐다.

무엇보다 북한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주펑 교수는 가장 적극적으로 북한체제의 조기붕괴론을 제기했다.

"북한체제가 화폐개혁 실패만으로 붕괴되는 일은 없겠지만, 화폐개혁의 실패와 교역침체로 말미암아 체제 붕괴가 빨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으로 몇 달내 북한이 붕괴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조만간 붕괴할 가능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물론 신중론도 있었다. 스나이더 소장은 "현재 북한정권은 김정일 지지자로 구성돼 있어 김정일 부재 시 정권의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다"고 전제한 다음 "그래도 지난 20년간 끊임없는 북한 붕괴설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버텨왔다"고 설명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볼 때 화폐개혁 실패로 인한 경제파탄 위기와 정치권력의 해체를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북한당국이 6자회담을 비롯 국제사회에 조기 복귀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어떤 경우든 북한체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종근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