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
다음은 18세기 초 서부 독일의 한 시골 귀족이 쓴 글이다.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국제 시장은 나의 고향인 서부 독일 오스나부르크의 독특한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
첫째로, 국제 시장은 그 지역의 전통 경제가 만족시킬 수 없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둘째로, 여타 지역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품들과 경쟁하게 됨으로써 길드의 전통적 생산체제는 근간이 흔들리고, 그것과 얽혀 있는 사회 정치적 토대도 함께 파괴된다.
결국 시장은 문화의 독창성과 다원주의를 파괴한다.
자본주의가 진척됨에 따라, 지역의 문화와 사회구조가 좀 더 광범위해진 시장에 의해 파멸을 맞게 될 것이다.
소도시는 지방 전체에 걸친 시장에 의해, 지방 시장은 국가 전체의 시장에 의해, 국가 시장은 국제 간 무역 시장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
생산과정의 '단순화'를 통해 제작된 상품들은 그 지역의 수공업자가 만든 물건보다 종종 질이 좋고 값도 싼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매상은 이처럼 유행과 사치품에 대한 선호를 조장하면서 번성하고 있다.
또한 소매상은 수공업자에게서 고객을 뺏어 수공업자들의 생계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새로운 국제 경제의 지역 하수인이다.
이렇게 해서 '유행은 지방 소도시의 가장 큰 약탈자'가 되어가고 있다.
토착적 취향이 국제적인 것으로 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지방의 소매상을 용납하지 않았다. 선조들은 시장의 자유 없이 살기를 고집했다.
그들은 우리 지역에서 유대인을 추방시켰다.
- 유스투스 뫼저 (1720~1794)
다음 중 이 글의 저자가 지금도 지지할 만한 명제는?
① "교역은 국제 평화를 만들어내는 체제이기도 하다" - 임마누엘 칸트
② "소비자는 광고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 장 보드리야르
③ "분업이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킨다" - 애덤 스미스
④ "비교우위가 국제 무역의 기본 동인이다" - 데이비드 리카르도
⑤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야 한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해설
이 문제를 대한 수험생 대부분은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오늘날의 논변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반세계화 논변이 이미 18세기에 쓰여졌다는 사실 말이다.
세계화라는 말은 1960년대 이후에 생겨난 말이지만 반세계화 논변은 이미 상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제시문은 18세기 독일의 철학자이며 법학자인 유스투스 뫼저(1720~1794)의 사상을 요약한 글이다.
뫼저는 18세기 자본주의 비판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스나부르크라는 서부 독일의 조그마한 도시에서 옛 전통과 질서가 시장경제의 침투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한탄하고 있다.
반세계화 논변의 전형적인 구조다.
뫼저는 시장경제의 번성과 세계화가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고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이 공공선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미덕의 전통을 몰아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뫼저의 이런 논변은 물론 동시대를 살았던 애덤 스미스에 의해 철저하게 논파당한다.
애덤 스미스는 뫼저가 옹호하는 전통사회야말로 귀족들의 특권을 구조화하고 길드의 수구적 독점체제가 온존하면서 주민들의 생활을 농노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세계화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지배층의 특권구조를 옹호하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 문제의 보기 중 칸트의 주장이 응시자들에게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는데 칸트는 그의 '영구평화론'에서 "국제 교역이 국가간 평화체제를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지속적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도덕철학자인 칸트는 사형제 찬성론으로도 유명하다.
위 보기 중 정답은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인 장 보드리야르이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를 소비사회로 보면서 소비를 충동하는 시장경제 체제를 비판했다.
리카르도와 하이에크는 자유 시장경제 옹호론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정답 ②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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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
배출권 시장의 cap-and-trade
온실가스 감축목표 기준은 1인당 배출량 배정 방식이 공평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온실가스의 감축은 이제 시대적 소명이 되었다.
온실가스의 대종은 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탄산가스다.
탄산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전통적 화석연료를 저탄소 녹색연료로 대체해야 한다.
녹색화 촉진 방안으로 여러 가지가 시행되고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배출권 시장이다.
연중 탄산가스 배출 상한선을 나라별로 책정해 배출권을 배정(cap)하고,배정량보다 더 많은 탄산가스를 배출하려면 여유 있는 다른 나라로부터 배출권을 구입(trade)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cap-and-trade 제도다.
탄산가스를 추가로 배출하려면 돈 들여 배출권을 사와야 하고,저탄소 노력에 성공하면 남는 배출권을 다른 나라에 팔 수 있으니 각국은 탄산가스 배출량을 감소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교토협약(Kyoto Protocol)은 1997년 37개 산업국이 스스로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의무화하도록 규정했는데 그 시행은 2005년부터 시작되었다.
'공동의,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의 원칙 아래 선진국들은 무거운 감축의무를 지는 반면 개도국들에는 감축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이 협약의 기조였다.
그러나 감축의무를 이행한 뒤에도 여전히 선진국들은 후진국들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전체 배출량은 미국이 1위이고 중국이 2위이지만,2003년 현재 1인당 배출량을 보면 일본과 한국이 각각 9.4t인데 중국은 2.8t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실적을 근거로 해 배출권을 배정할 것이므로 선진국들이 더 많은 1인당 배출권을 배정받을 것이다.
배출권 시장의 cap-and-trade는 미국이 산성비의 원인인 질소산화물(NOx)배출을 줄이기 위하여 NOx 배출 기업들에 일정 한도의 배출권(cap)을 배정하고 거래하도록 한 데서 시작하였다.
과거에 많이 배출하던 업체에 더 많은 cap이 부여되었지만 배출량을 줄이는 데는 가장 효과적이었다는 평판을 얻었다.
이 방식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글로벌 전략으로 그대로 채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배출실적을 반영하는 국별 cap 배정은 불공평하고 인구 1인당 배출량이 같도록 국별 cap을 결정하는 방안이 사실은 더 공평하다.
실적에 따라 cap을 배정하면 선진국은 높은 cap을 배정받지만 고통스런 감축의무를 지는 데 반하여 개도국에 당장 감축 부담은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개도국도 녹색화에 동참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선진국의 녹색기술과 자본이 필요하다.
이것을 싼값에 얻으려는 개도국과 그에 반대한 선진국이 맞선 가운데 코펜하겐 기후회의는 큰 성과 없이 끝났다.
인구 1인당 기준으로 국별 cap을 배정한다면 선진국들은 개도국들로부터 배출권을 대대적으로 구입해야 하므로 감축노력을 배가할 것이다.
또 녹색기술과 자본으로 배출권 구입 대금을 지불한다면 개도국도 항구적 녹색화에 동참할 수 있다.
실적보다 1인당 배출량 기준의 cap 결정 방식이 공평할 뿐 아니라 감축 실효성에서도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shoonlee@snu.ac.kr
다음은 18세기 초 서부 독일의 한 시골 귀족이 쓴 글이다.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국제 시장은 나의 고향인 서부 독일 오스나부르크의 독특한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
첫째로, 국제 시장은 그 지역의 전통 경제가 만족시킬 수 없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둘째로, 여타 지역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품들과 경쟁하게 됨으로써 길드의 전통적 생산체제는 근간이 흔들리고, 그것과 얽혀 있는 사회 정치적 토대도 함께 파괴된다.
결국 시장은 문화의 독창성과 다원주의를 파괴한다.
자본주의가 진척됨에 따라, 지역의 문화와 사회구조가 좀 더 광범위해진 시장에 의해 파멸을 맞게 될 것이다.
소도시는 지방 전체에 걸친 시장에 의해, 지방 시장은 국가 전체의 시장에 의해, 국가 시장은 국제 간 무역 시장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
생산과정의 '단순화'를 통해 제작된 상품들은 그 지역의 수공업자가 만든 물건보다 종종 질이 좋고 값도 싼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매상은 이처럼 유행과 사치품에 대한 선호를 조장하면서 번성하고 있다.
또한 소매상은 수공업자에게서 고객을 뺏어 수공업자들의 생계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새로운 국제 경제의 지역 하수인이다.
이렇게 해서 '유행은 지방 소도시의 가장 큰 약탈자'가 되어가고 있다.
토착적 취향이 국제적인 것으로 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지방의 소매상을 용납하지 않았다. 선조들은 시장의 자유 없이 살기를 고집했다.
그들은 우리 지역에서 유대인을 추방시켰다.
- 유스투스 뫼저 (1720~1794)
다음 중 이 글의 저자가 지금도 지지할 만한 명제는?
① "교역은 국제 평화를 만들어내는 체제이기도 하다" - 임마누엘 칸트
② "소비자는 광고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 장 보드리야르
③ "분업이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킨다" - 애덤 스미스
④ "비교우위가 국제 무역의 기본 동인이다" - 데이비드 리카르도
⑤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야 한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해설
이 문제를 대한 수험생 대부분은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오늘날의 논변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반세계화 논변이 이미 18세기에 쓰여졌다는 사실 말이다.
세계화라는 말은 1960년대 이후에 생겨난 말이지만 반세계화 논변은 이미 상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제시문은 18세기 독일의 철학자이며 법학자인 유스투스 뫼저(1720~1794)의 사상을 요약한 글이다.
뫼저는 18세기 자본주의 비판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스나부르크라는 서부 독일의 조그마한 도시에서 옛 전통과 질서가 시장경제의 침투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한탄하고 있다.
반세계화 논변의 전형적인 구조다.
뫼저는 시장경제의 번성과 세계화가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고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이 공공선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미덕의 전통을 몰아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뫼저의 이런 논변은 물론 동시대를 살았던 애덤 스미스에 의해 철저하게 논파당한다.
애덤 스미스는 뫼저가 옹호하는 전통사회야말로 귀족들의 특권을 구조화하고 길드의 수구적 독점체제가 온존하면서 주민들의 생활을 농노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세계화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지배층의 특권구조를 옹호하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 문제의 보기 중 칸트의 주장이 응시자들에게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는데 칸트는 그의 '영구평화론'에서 "국제 교역이 국가간 평화체제를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지속적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도덕철학자인 칸트는 사형제 찬성론으로도 유명하다.
위 보기 중 정답은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인 장 보드리야르이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를 소비사회로 보면서 소비를 충동하는 시장경제 체제를 비판했다.
리카르도와 하이에크는 자유 시장경제 옹호론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정답 ②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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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
배출권 시장의 cap-and-trade
온실가스 감축목표 기준은 1인당 배출량 배정 방식이 공평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온실가스의 감축은 이제 시대적 소명이 되었다.
온실가스의 대종은 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탄산가스다.
탄산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전통적 화석연료를 저탄소 녹색연료로 대체해야 한다.
녹색화 촉진 방안으로 여러 가지가 시행되고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배출권 시장이다.
연중 탄산가스 배출 상한선을 나라별로 책정해 배출권을 배정(cap)하고,배정량보다 더 많은 탄산가스를 배출하려면 여유 있는 다른 나라로부터 배출권을 구입(trade)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cap-and-trade 제도다.
탄산가스를 추가로 배출하려면 돈 들여 배출권을 사와야 하고,저탄소 노력에 성공하면 남는 배출권을 다른 나라에 팔 수 있으니 각국은 탄산가스 배출량을 감소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교토협약(Kyoto Protocol)은 1997년 37개 산업국이 스스로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의무화하도록 규정했는데 그 시행은 2005년부터 시작되었다.
'공동의,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의 원칙 아래 선진국들은 무거운 감축의무를 지는 반면 개도국들에는 감축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이 협약의 기조였다.
그러나 감축의무를 이행한 뒤에도 여전히 선진국들은 후진국들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전체 배출량은 미국이 1위이고 중국이 2위이지만,2003년 현재 1인당 배출량을 보면 일본과 한국이 각각 9.4t인데 중국은 2.8t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실적을 근거로 해 배출권을 배정할 것이므로 선진국들이 더 많은 1인당 배출권을 배정받을 것이다.
배출권 시장의 cap-and-trade는 미국이 산성비의 원인인 질소산화물(NOx)배출을 줄이기 위하여 NOx 배출 기업들에 일정 한도의 배출권(cap)을 배정하고 거래하도록 한 데서 시작하였다.
과거에 많이 배출하던 업체에 더 많은 cap이 부여되었지만 배출량을 줄이는 데는 가장 효과적이었다는 평판을 얻었다.
이 방식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글로벌 전략으로 그대로 채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배출실적을 반영하는 국별 cap 배정은 불공평하고 인구 1인당 배출량이 같도록 국별 cap을 결정하는 방안이 사실은 더 공평하다.
실적에 따라 cap을 배정하면 선진국은 높은 cap을 배정받지만 고통스런 감축의무를 지는 데 반하여 개도국에 당장 감축 부담은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개도국도 녹색화에 동참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선진국의 녹색기술과 자본이 필요하다.
이것을 싼값에 얻으려는 개도국과 그에 반대한 선진국이 맞선 가운데 코펜하겐 기후회의는 큰 성과 없이 끝났다.
인구 1인당 기준으로 국별 cap을 배정한다면 선진국들은 개도국들로부터 배출권을 대대적으로 구입해야 하므로 감축노력을 배가할 것이다.
또 녹색기술과 자본으로 배출권 구입 대금을 지불한다면 개도국도 항구적 녹색화에 동참할 수 있다.
실적보다 1인당 배출량 기준의 cap 결정 방식이 공평할 뿐 아니라 감축 실효성에서도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shoon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