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은 손이 큰 게 아니다

“농구에서 손이 크면 좀 유리하긴 하겠지만 감각이 없으면 큰손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지요.”

“증권 계좌에 대한 자금 추적 조사를 벌인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큰손들이 증시 주변에서 잠적했습니다.”

두 문장에 쓰인 ‘큰손’은 형태는 같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앞의 ‘큰손’은 글자 그대로 ‘손이 크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때는 ‘관형어+명사’의 결합구조이므로 각각의 단어를 반드시 띄어 써야 한다.

이에 비해 뒤 문장의 ‘큰손’은 경제용어로,증권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 따위에서 시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규모 거래를 하는 개인이나 기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부동산 거래에 대한 잇따른 규제 강화로 투자 관망세가 짙어가는 가운데 일부 큰손들은 기존 자산을 처분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처럼 쓰인다.

이때의 ‘큰손’은 물리적인 손의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비유적인 쓰임새로 의미가 완전히 바뀐 한 단어이다.

두 개의 낱말이 서로 어울려 새로운 의미의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것을 합성어라 하는데,이때는 하나의 단어이므로 띄어 쓰지 않고 항상 붙여 쓴다.

합성어로서의 ‘큰손’은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미 올라있는 말이니,우리 언어생활에서 꽤 오래 전부터 쓰여 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합성어는 붙여 쓴다’는 기초적인 원리를 소홀히 해 여전히 이를 ‘큰 손’ 식으로 띄어 쓰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합성어 가운데서도 ‘큰손’처럼 원래 갖고 있던 각각의 뜻을 벗어나 한 덩어리의 새 뜻을 나타내는 말을 융합합성어라 부른다.

‘흉악한 일기와 순서 고르지 못한 한서의 긴 겨울이 지난 뒤에는 이 강산에도 봄의 따스한 볕이 비치었다.’ (김동인,젊은 그들)

이때 쓰인 ‘강산(江山)’은 강과 산의 뜻을 넘어 우리나라 국토를 뜻하는 말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밤낮’이 항상이란 의미를,‘춘추(春秋)’가 나이를 뜻하는 말이 된 것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