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대중의 주목받고 싶으면 차라리 시민운동을”

반 “법관윤리 위배여부는 대법원이 판단할 사안”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국회폭력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시국선언 등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이 진보성향 법관들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해체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편향 판결 논란으로 빚어진 ‘사법 사태’의 파문이 법원과 검찰간 갈등을 넘어 정치권으로,또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MBC의 광우병 허위보도 등으로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사법권을 국민의 뜻과 다르게 행사하고 헌법이 지향하는 근본질서를 파괴하는 사법부의 중심에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있다”며 사법권 독립을 핑계로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국민의 뜻에 어긋나도록 판결하는 판사 모임은 해체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우리법연구회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있었으며 법원 내부통신망에 학술단체로 등록하고 공개세미나를 열었는 데도 좌편향 이념단체로 몰아붙이고 있다”며 “연구회 활동이 법관 윤리에 어긋나는 지는 대법원이 판단하고 이에 따른 대책을 결정하는 게 타당하며 정치인이 간섭할 사안은 아니다”고 반박한다.

이번 논란은 단독 판사들의 ‘집단적 편향’이 느껴지는 독단적 판결에서 비롯됐음은 물론이다.

기존의 판례를 뒤엎어 ‘기교사법’이란 신조어까지 나왔을 정도다.

문제는 정치권 등에서 이러한 논란을 불러온 장본인으로 우리법연구회를 지목하고 그 해체를 주장하고 나선 게 과연 타당하냐는 점이다.

우리법연구회 해체를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법관이 대중의 주목받으려면 시민운동하는 게 바람직”

우리법연구회 해체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법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상실하면 국민의 신뢰와 권위도 함께 잃게 되며, 그러한 사법부는 이미 존재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법원이 사법부 독립을 명분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거부한다면 ‘국민’이 아닌 ‘법원’을 위한 독립이 되고 만다는 논리다.

특히 “우리법연구회는 편향된 정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며 “법관은 사회운동가가 아니며 대중의 주목을 받으려면 법복을 벗고 시민운동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꼬집는다.

이들은 또 “우리법연구회가 권위주의정부 시절엔 사법민주화에 일정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세력을 조장하고 인사상 법원의 중요 부분을 구성하는 주류가 됐다”며 튀는 판결을 내는 판사만이 정신적 우월성을 갖는 분위기가 법조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록 우리법연구회가 순수한 연구모임이긴 하지만 이로 인해 법원 전체가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법연구회는 국민과 사법부를 위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반대 측, “연구회활동의 법관윤리 위배여부는 대법원이 판단할 사안”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우리법연구회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있었으며 이 모임 출신 가운데는 한나라당 의원을 지낸 사람도 있다”며 여당이 연구회를 겨냥해 이념공세에 골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연구회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여 학술단체로 등록했으며 올해는 학술논문집을 통해 명단까지 공개할 예정인데도 정치권은 막무가내로 비판만 해댄다고 꼬집는다.

이들은 또 기존의 상급심 판결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국민에게 도움이 될만한 새로운 법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학문연구 모임을 갖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법연구회가 특정 방향의 성향을 가진 법관의 연구모임이라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 부당한 판결이 나온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반박한다.

더구나 강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와 PD수첩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소속도 아닌데 이런 판결이 날 때마다 연구회를 공격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연구회 활동이 법관윤리에 어긋나는 지는 대법원이 판단할 사안이며 판결에 문제가 있다면 항소심에서 바로잡으면 된다는 입장이다.

⊙ 사법부에 대한 총체적 불신사태 몰고올 우리법연구회 해체돼야

편향판결 논란으로 빚어진 ‘사법 사태’와 관련, 사법부 스스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법원내 사조직부터 스스로 해체하는 게 순리다.

논란의 한 가운데 우리법연구회가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법 불신을 초래하게 한 단초가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판결해야 할 법관들이 집단 움직임을 보이고 일련의 판결에 특정 성향을 드러내보이고 있는 것은 사법부의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소속 판사들은 ‘효순·미선양 사건’에 대해 “이곳이 아메리카의 53주라도 된다는 것인지,안방을 점령당하고도…”라며 반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며, 법원내 ‘주류’가 되기위해 ‘세력화’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이러고도 연구회를 ‘순수 학술연구모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연구회의 실체가 명확해진 만큼 더 이상 이를 묵인·방조한다면 사법의 권력화와 이념화 폐해,나아가 사법부에 대한 총체적 불신 사태를 불러올 게 뻔하다.

대법원은 사법부 독립과 신뢰 회복을 위해 연구회해체 문제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우리법연구회

1988년 6·29 선언 후에도 제5공화국의 사법부 수뇌부가 유임되면서 발생한 2차 사법파동으로 창립된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이다.노무현 정부 당시 전체 회원이 140여명에 이르렀으며 박시환 대법관,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요직에 발탁됨으로써 판사들의 정치 사조직 논란을 불러왔다.

기교재판

사실심리와 증거조사 결과에 따라 판결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판사가 맘 속에 이미 판결,즉 결론을 내리고 재판을 하는 것을 말한다.

심급제도

하나의 소송사건에 대하여 서로 다른 계급의 법원에서 반복하여 심판하는 것으로,재판의 적정성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각국이 시행하고 있으며,우리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삼심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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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1월22일자 A14면

여권이 ‘좌편향 불공정 판결’의 배후로 지목한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에 대해 현직 판사가 의문을 제기하는 등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사법부 내에서도 본격화됐다.

21일 법원에 따르면 임희동 의정부지법 포천시법원 판사는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우리법이란 실정법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우리법연구회가 학술활동 목적 연구회라면 무슨 실정법 연구인지 밝히고,코트넷에 등록하고 공개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잘못하면 법관들이 사사로이 모여 세력화할 염려가 있다는 우려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법원에서 목적과 활동을 조사해 염려의 소지가 있다면 해체를 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임 판사의 글에 대해 우리법연구회 전 회장인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코트넷에 학술단체로 등록돼 있으며 헌법과 형법,노동법 등을 연구하는 단체”라며 “박일환 법원행정처장도 국회에 출석해 ‘우리법연구회가 학술연구단체라서 해체하라 말라 요구하기 어렵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서보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