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결함으로 품질관리 구멍… 대량 리콜사태 휘말려
[Global Issue] 도요타의 ‘굴욕’… 日 장인정신의 자존심 뿌리째 ‘흔들’
'품질 신화의 자부심'으로 세계 자동차업계 1위를 지켜온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대규모 리콜에 휘말리며 그동안 쌓아온 아성이 송두리째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이번 사태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해외사업 확장에만 치중하다가 도요타를 지탱해온 '장인정신의 DNA', 즉 '모노즈쿠리(物作り)'를 잃으면서 품질관리에 구멍이 뚫린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한 주요 언론들은 전했다.

'모노즈쿠리'는 직역하면 '물건 만들기'다.

하지만 이 단어는 단순한 '물건 제조'의 의미가 아니다.

작은 손톱깎이 하나를 만들더라도 장인의 혼을 담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장인정신'이란 말로 의역되는 이유다.

'모노즈쿠리'야말로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제조업체들이 바로 이 '장인정신'으로 세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도요타의 이번 대량 리콜 사태는 이 같은 모노즈쿠리의 정신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번 리콜의 발단은 작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도요타의 '렉서스 ES350'을 타고 가던 일가족 4명이 차량의 폭주로 모두 숨진 이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차량 결함 가능성을 발표한 이후부터다.

특히 지난달 27일엔 미국 ABC방송이 사고 당시의 상황이 담긴 911(한국의 119) 전화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도요타를 향한 미국 내 비난 여론이 더욱 커졌다.

차 안에 있던 가족 중 한 남자가 "가속페달이 제멋대로다"라며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우리는 곤경에 처해 있다"고 소리쳤다.

음성 파일의 마지막 부분에서 남자는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잡아, 잡아. 제발, 제발"하고 비명을 질렀다.

도요타가 밝힌 가속페달 결함은 페달 뒤쪽에 장착된 스프링 성능이 떨어져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은 뒤 발에서 떼도 원위치로 빨리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스프링의 탄성 및 강도가 엔진의 열과 부품 마모 등의 문제로 인해 크게 약해짐에 따라 가속페달이 그대로 눌린 채 속도가 붙어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속페달 결함으로 지난달 25일 미국에서 230만대를 리콜한 도요타는 28일 또다시 같은 원인으로 북미지역에서 110만대를 추가 리콜하고,중국에서도 7만5552대를 신규 리콜 조치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도요타가 지난해 11월부터 바닥 매트와 가속페달 결함으로 리콜 조치에 들어간 차량 수는 현재까지 총 773만여대로 늘었다.

이는 작년 연간 생산(약 700만대)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또 유럽에서도 약 180만대의 추가 리콜 계획이 실행되면 총 리콜 규모는 1000만대에 육박하게 된다.

이번 리콜 사태로 도요타가 입을 경제적 손실은 수조엔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에서 리콜 대상 차량을 소유한 사람들이 도요타를 상대로 소송 등을 제기하면서 사태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미국과 캐나다에서 제기된 도요타 급발진 관련 소송은 10여건에 이른다.

도요타자동차를 소유한 캐나다 소비자들은 1일 도요타와 도요타에 가속페달 부품을 납품한 CTS를 상대로 도요타차 구매 등에 따른 손실과 부상 등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온타리오 고등법원에 제기했다.

미 의회에서도 오는 25일 도요타 리콜사태 관련 청문회를 열 예정이며, 미 교통부는 도요타에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도요타가 대규모 리콜 사태에 휘말린 것은 무분별한 글로벌 확장 전략의 그늘이라는 평가다.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의 판매 확대를 위해 생산공장을 급속히 늘리면서 '도요타다운 품질'이 유지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도요타는 2001~2007년 자동차 생산을 334만대 늘렸다.

자동차 공장의 생산 대수가 보통 연간 30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6년간 공장 11개를 늘린 셈이다.

대부분 해외 공장이었다.

이들 해외 공장에선 비용 절감을 위해 상당수 부품을 현지에서 조달했다.

여기서 품질관리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번에 리콜 대상이 된 자동차는 모두 해외에서 생산된 것이다.

도요타 관계자는 "일본에서와 달리 외국 부품업체에 도요타식 품질관리 시스템인 '가이젠(개선)'을 철저히 요구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차량 결함 관련 사고가 터진 후에도 모르쇠로 일관해 온 도요타 경영진에 대한 질타도 이어지고 있다.

과도한 원가절감에 대해 일선 부서에서 윗선의 눈치를 보느라 품질 개선 문제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앞서 3년 전에도 이번 리콜사태와 유사한 고객 불만 사례를 접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도쿄신문은 2007년에 고객으로부터 도요타 픽업트럭 '툰드라'의 가속페달에 대한 불만이 접수된 적 있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도요타는 "조사 결과 차내 습기가 증가해 부품 일부가 팽창해서 페달이 부드럽게 되돌아오지 않았다"면서 차량결함이 아니라 운전상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리콜 등의 조치를 보류했다.

특히 일본 자동차업계에선 2005년부터 작년까지 도요타 사장으로 재임했던 와타나베 가쓰아키 현 부회장의 독선적 경영 스타일이 불러온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와타나베는 1964년 도요타에 입사한 뒤 구매부문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

1997년 상무,2001년 구매담당 부사장을 거쳐서 2005년에 사장에 취임했다.

'짜고 또 짜내는 방식'으로 제품 원가 절감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사장에 오른 그는 취임 이후에도 부품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했다.

하지만 부품 공통화와 현지화를 통한 원가 절감은 가격 경쟁력 강화와 판매 증가로 이어지면서 도요타를 세계 1위의 자동차업체로 올려놓는데는 성공했지만,이는 결국 제품 결함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창업주 도요다 사카치의 4세로 작년 6월 도요타 사장에 취임한 도요다 아키오는 지난달 29일 대규모 리콜사태와 관련해 사과했다.

그는 NHK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우려를 가능한 한 빨리 없앨 수 있도록 설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2일엔 도요타 일본 본사의 사사키 신이치 부사장(품질담당)이 나고야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리콜 경위를 설명한 뒤 공식 사과했다.

사사키 부사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현장 상황을 먼저 파악하기 위해 주력했으며 대책 발표를 일부러 뒤로 미룬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리콜사태가 터진 지 5일이나 지나서야 회사 차원의 사과 성명과 대책을 내놓은 도요타에 대해 너무나 안이한 늑장 대응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았다.

도요타가 이처럼 고전하는 사이 라이벌 기업들은 '도요타 고객 끌어들이기'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도요타차 고객이 GM차를 구매하면 1000달러의 리베이트와 60개월 장기 무이자 할부를 2월 말까지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