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금 11조원 투입 등 정상화 나섰지만 회생 가능성 불투명

[Global Issue] JAL(일본항공)의 몰락… 국영기업式 방만 경영이 부실 키웠다
'하늘의 일본'으로 불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공기업 일본항공(JAL)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자력 생존이 불가능해지면서 사실상 무너진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개입하게 된 이후 경영 정상화가 순조롭게 추진돼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공적자금 지원 9000억엔(약 11조원),금융권의 채권 탕감 3585억엔(약 4조4000억원) 등 모두 1조2500여억엔의 지원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국내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부실 기업인 일본항공의 신용을 국내외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무제한 지원을 선언한 셈이다.

하지만 일본항공의 정상화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최근 몇 년간 글로벌 항공업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경영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 최고경영자가 항공업에는 문외한이라는 점,의사 결정 구조가 복잡하게 되어 있는 것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 국영기업 관습에 경영파탄

일본의 자존심으로 여겨졌던 일본항공이 경영 파탄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수십년간 뿌리 깊게 박힌 국영기업의 체질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자민당 정권은 지역 주민들의 표를 의식해 일본항공을 국영기업으로 취급하면서 채산성 없는 지방 공항에도 취항을 강요하고, 지방공항의 유지 및 관리를 위해 공항사용료를 과도하게 징수했다.

경영진에는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가 투입됐고 경영실적은 고려하지 않고 퇴직자들은 두둑한 연금을 챙겼다.

1951년 설립된 일본항공은 반관반민의 형태로 운영되다가 1987년 완전 민영화됐지만 껍데기만 민영화일 뿐 경영진이나 경영 방식은 '국토교통성의 하부 기관' 체질을 벗지 못했던 것이다.

금융회사들도 정부가 뒤에 버티고 있는 '하늘의 일본' 일본항공이 설마 망하기야 하겠느냐며 묻지마대출을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항공의 부채는 2조3200억엔까지 불어났고 자산을 초과한 부채액이 8700억엔이나 됐다.

즉 가지고 있는 재산보다 빚이 훨씬 많은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된 것이다.

2008년 하반기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로 항공 수요는 급감했고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플루가 전 세계 대유행하면서 승객이 뚝 떨어졌다.

이에 일본항공은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자력으로 갚아내기 어려운 부실 기업으로 전락했다.

일본항공의 부실은 관료주의에 사로잡힌 정부와 무능한 경영진,채권 금융회사,기업 근로자들의 방만한 경영과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공적자금 9000억엔 투입해 국유화

일본 정부는 일본항공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 19일 성명을 통해 "일본항공의 경영이 정상화할 때까지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항공의 국내외 신용을 유지해 그동안 충성도가 높은 대규모 거래선과 고객의 이탈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사실상 정부가 빚을 지급보증하겠다는 선언이어서 정부가 특정 기업에 스스로 발목을 잡히는 자충수를 둔 셈이 됐다.

일본 정부를 대신한 기업재생지원기구는 일본항공에 3000억엔을 출자하고 경영자금 6000억엔을 융자하는 등 총 9000억엔을 지원하기로 했다.

퇴직자 연금 삭감과 채권단의 채권 탕감 등으로 7300억엔의 부채도 깎아주기로 했다.

금융회사의 채권 탕감액은 3585억엔에 달한다.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 인력을 현재의 5만1862명에서 3만6201명으로 1만5600여명 줄이기로 했다.

또 채산성이 떨어지는 국내외 노선도 정비해 지난해 말 현재 229개 노선을 2012년까지 198개 노선으로 축소한다.

이런 지원과 구조조정을 통해 정부는 일본항공의 경영을 3년 내에 정상화해 영업이익을 508억엔 적자(2009년 3월 말 기준)에서 904억엔 흑자(2013년 3월 말 기준)로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 3년 내 회생 가능성 불투명

하지만 정부의 계획대로 일본항공의 경영 정상화가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도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

글로벌 경제가 회복기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회복 속도가 느린 데다 국제 항공산업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과 올해 초 일본항공의 국제선 이용객 수는 전년 대비 11.8% 감소한 반면,국내 경쟁사인 전일본공수(ANA)는 8.7% 늘었다.

일본항공이 경영 불안으로 휘청이면서 승객들이 빠르게 경쟁사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항공의 최고경영자 겸 회장으로 임명돼 경영 정상화를 주도할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77)이 항공사 경영 경험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나모리 회장이 전자부품 기업인 교세라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 '경영의 신'으로 불리고 있지만 항공업은 생소한 데다 고령에 일본항공 정상화라는 격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원들이 얼마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느냐도 관건이다.

서비스 업종이라는 항공사의 특성상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안전운항을 보증하고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본격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될 경우 근로자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서비스의 질 하락이 불을 보듯 뻔해 고객들의 신뢰를 다시 찾아오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법정관리로 정상화가 추진되면서 의사 결정이 늦어질 것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급속히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시급한 사안에 대해 경영진의 신속한 판단과 사업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법정관리를 받는 구조 속에서 의사 결정 시스템이 정부 · 법원-기업재생지원기구-일본항공으로 복잡해지면서 경영 리더십의 부재가 우려되고 있다.

리더십이 부족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기업이 살아남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