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1일 0시.
경인년 새해가 열리는 순간 서울 퇴계로 제일병원과 강남차병원에선 모두 5명의 새 생명이 동시에 탄생했다.
이미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데다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白虎)의 해 첫 아이란 의미가 더해져 이들의 탄생은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사회적 조명을 받는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집에다 특별한 장식을 함으로써 그 아기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금줄'을 내거는 풍습이 그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기를 낳고 금줄을 매다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금줄의 재료인 새끼줄을 구하기도 어렵고,특히 악귀를 쫓는다는 미신에 뿌리를 둔 풍습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금줄 문화도 보기 힘들어졌다.
더불어 그 말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말의 대상이 없어지면 그 말도 소멸되는 게 말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금줄(禁-)'의 사전적 풀이는 '부정한 것의 침범이나 접근을 막기 위해 문이나 길 어귀에 건너질러 매거나 신성한 대상물에 매다는 새끼줄'이다.
태어난 아이가 아들일 때는 금줄에 빨간 고추를 숯과 함께 매달고,딸일 때는 솔가지를 매달았다.
이 줄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했는데,예로부터 아이를 낳았을 때,장 담글 때,잡병을 쫓고자 할 때,신성 영역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 사용했다.
이를 다른 말로 '인줄(人-)'이라고도 한다.
일부 지방에서는 '검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검줄은 버리고 '금줄'을 쓰도록 했다.
갓난아기가 없는 집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금줄을 공연히 쳐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은 '헛금줄'이라 부른다.
'금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이 '세이레'다.
이 말 역시 금줄 문화가 쇠퇴하면서 덩달아 잘 안 쓰게 된 말이다.
세이레는 '아기가 태어난 지 스무하루(21일)가 되는 날'을 뜻한다.
'이레(7일,즉 일곱 날을 가리키는 말)'가 세 개라는 뜻에서 붙은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태어난 지 이레가 되는 날은 '첫이레(또는 한이레)',열나흘(14일) 되는 날은 '두이레'라고 부른다.
세이레를 다른 말로 '삼칠일'이라고도 했다. '칠일'이 세 개라는 뜻이다.
의학이나 위생수준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던 옛날에는 아이가 열 명 태어나면 그 중 절반만 살아남아도 다행이었다.
특히 갓 태어나 세이레 동안은 아기가 면역력이 거의 없어 극히 조심했다.
이때는 친인척일지라도 집안 방문이 금지됐다.
이 동안 산모 역시 미역국을 먹으면서 산후 조리를 함께 했으며 집안의 다른 식구들도 몸가짐을 조심했다.
지역에 따라,집안 사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는 세이레가 되면 비로소 금줄을 거뒀다.
예로부터 흔히 '아기가 이제 막 세이레를 넘겼다' '산모는 적어도 세이레 미역국을 먹게 돼 있다'란 표현을 써온 것을 보면 아이를 낳고 세이레 동안을 매우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세이레를 무사히 넘겨 100일째 되는 날 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백일 상을 차리고 1년이 지나면 돌잔치를 열었다.
유교사상이 들어오기 전부터 행하던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민속인데,지금의 의학 상식으로 보아도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 과학이라 할 만하다.
특정한 날을 가리키는 말을 삼칠일 또는 세이레 식으로 부르는 방식은 '사십구재(四十九齋)'를 '칠칠재(七七齋)'라 부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사십구재'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 지내는 제사인데,이를 다른 말로 '칠칠재'라 한다.
이때 '재(齋)'는 가정에서 지내는 일반적인 제사와는 다른 것으로,본래 불교에서의 성대한 불공이나 죽은 이를 천도(薦度)하는 법회를 뜻한다.
한마디로 죽은 이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드리는 일종의 '불공'인 셈이다.
이런 유래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일반적인 제사를 연상해 자칫 '사십구제' '칠칠제' 식으로 쓰기 쉬운데 이는 잘못이다.
'재'는 일종의 제사 절차이긴 하지만 본래 불교에서 행하던 의식이라 '-제'라 하지 않고 반드시 '-재'라 하는 것이다.
또 남녀의 한창 젊은 때를 가리키는 말인 '이팔청춘'도 같은 방식에 의한 것이다.
'이팔청춘'은 팔(8)이 두 개이니 열여섯 살을 가리킨다. 이를 줄여 '이팔'이라고도 한다.
'금줄'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점차 잊혀져가 이제 우리 생활 주변에서 보기조차 힘들게 됐다.
하지만 금줄 문화에 담긴 조상들의 생활 속 지혜와 마음가짐은 오늘 되새겨 보아도 손색이 없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저출산 대책이 국가적 화두가 된 요즘 금줄 문화 살리기 운동이라도 펼쳐볼 만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경인년 새해가 열리는 순간 서울 퇴계로 제일병원과 강남차병원에선 모두 5명의 새 생명이 동시에 탄생했다.
이미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데다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白虎)의 해 첫 아이란 의미가 더해져 이들의 탄생은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사회적 조명을 받는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집에다 특별한 장식을 함으로써 그 아기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금줄'을 내거는 풍습이 그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기를 낳고 금줄을 매다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금줄의 재료인 새끼줄을 구하기도 어렵고,특히 악귀를 쫓는다는 미신에 뿌리를 둔 풍습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금줄 문화도 보기 힘들어졌다.
더불어 그 말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말의 대상이 없어지면 그 말도 소멸되는 게 말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금줄(禁-)'의 사전적 풀이는 '부정한 것의 침범이나 접근을 막기 위해 문이나 길 어귀에 건너질러 매거나 신성한 대상물에 매다는 새끼줄'이다.
태어난 아이가 아들일 때는 금줄에 빨간 고추를 숯과 함께 매달고,딸일 때는 솔가지를 매달았다.
이 줄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했는데,예로부터 아이를 낳았을 때,장 담글 때,잡병을 쫓고자 할 때,신성 영역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 사용했다.
이를 다른 말로 '인줄(人-)'이라고도 한다.
일부 지방에서는 '검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검줄은 버리고 '금줄'을 쓰도록 했다.
갓난아기가 없는 집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금줄을 공연히 쳐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은 '헛금줄'이라 부른다.
'금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이 '세이레'다.
이 말 역시 금줄 문화가 쇠퇴하면서 덩달아 잘 안 쓰게 된 말이다.
세이레는 '아기가 태어난 지 스무하루(21일)가 되는 날'을 뜻한다.
'이레(7일,즉 일곱 날을 가리키는 말)'가 세 개라는 뜻에서 붙은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태어난 지 이레가 되는 날은 '첫이레(또는 한이레)',열나흘(14일) 되는 날은 '두이레'라고 부른다.
세이레를 다른 말로 '삼칠일'이라고도 했다. '칠일'이 세 개라는 뜻이다.
의학이나 위생수준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던 옛날에는 아이가 열 명 태어나면 그 중 절반만 살아남아도 다행이었다.
특히 갓 태어나 세이레 동안은 아기가 면역력이 거의 없어 극히 조심했다.
이때는 친인척일지라도 집안 방문이 금지됐다.
이 동안 산모 역시 미역국을 먹으면서 산후 조리를 함께 했으며 집안의 다른 식구들도 몸가짐을 조심했다.
지역에 따라,집안 사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는 세이레가 되면 비로소 금줄을 거뒀다.
예로부터 흔히 '아기가 이제 막 세이레를 넘겼다' '산모는 적어도 세이레 미역국을 먹게 돼 있다'란 표현을 써온 것을 보면 아이를 낳고 세이레 동안을 매우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세이레를 무사히 넘겨 100일째 되는 날 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백일 상을 차리고 1년이 지나면 돌잔치를 열었다.
유교사상이 들어오기 전부터 행하던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민속인데,지금의 의학 상식으로 보아도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 과학이라 할 만하다.
특정한 날을 가리키는 말을 삼칠일 또는 세이레 식으로 부르는 방식은 '사십구재(四十九齋)'를 '칠칠재(七七齋)'라 부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사십구재'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 지내는 제사인데,이를 다른 말로 '칠칠재'라 한다.
이때 '재(齋)'는 가정에서 지내는 일반적인 제사와는 다른 것으로,본래 불교에서의 성대한 불공이나 죽은 이를 천도(薦度)하는 법회를 뜻한다.
한마디로 죽은 이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드리는 일종의 '불공'인 셈이다.
이런 유래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일반적인 제사를 연상해 자칫 '사십구제' '칠칠제' 식으로 쓰기 쉬운데 이는 잘못이다.
'재'는 일종의 제사 절차이긴 하지만 본래 불교에서 행하던 의식이라 '-제'라 하지 않고 반드시 '-재'라 하는 것이다.
또 남녀의 한창 젊은 때를 가리키는 말인 '이팔청춘'도 같은 방식에 의한 것이다.
'이팔청춘'은 팔(8)이 두 개이니 열여섯 살을 가리킨다. 이를 줄여 '이팔'이라고도 한다.
'금줄'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점차 잊혀져가 이제 우리 생활 주변에서 보기조차 힘들게 됐다.
하지만 금줄 문화에 담긴 조상들의 생활 속 지혜와 마음가짐은 오늘 되새겨 보아도 손색이 없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저출산 대책이 국가적 화두가 된 요즘 금줄 문화 살리기 운동이라도 펼쳐볼 만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