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머리에서 말로만 '다문화'를 논하는 시기는 지난 지 오래다. 앞서서 미래를 열어야 할 담당 공무원의 다문화 의식은 옅고 현실에 맹목인 채 목소리만 높다. '우리의 참여 없이 우리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 말아 달라!'"
'다문화 사회'가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된 지도 오래 됐다.
한국을 찾는 해외 입양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설립된 '뿌리의 집'(www.koroot.org) 원장 김도현 목사.
그가 최근 한 언론매체를 통해 주장한 이 대목은 우리 사회에서 구호만 요란한 '다문화 정책'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의 표현대로 '다문화'를 책상머리에서 말로만 논하는 것을 한마디로 하면 '탁상공론'이다.
'탁상(卓上)'이란 말 그대로 책상,식탁,탁자 따위의 위를 말하는 것이고,'공론(空論)'은 실속이 없는 빈 논의를 뜻한다.
그러니 '탁상공론'이란 현실성 없는 허황한 이론이나 논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공리공론(空理空論 · 실천이 따르지 아니하는,헛된 이론이나 논의)'도 같이 쓸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이 정부 관료들의 현실적이지 못한 행정을 빗댄 경우일 때는 특히 '탁상행정'이라고 한다.
모두 사전에 정식으로 올라 있는 단어이다.
현장 실태는 제대로 모르면서 책상머리에만 앉아서 하는 행정이란 뜻에서 '탁상행정'을 다른 말로 '책상머리 행정'이라고도 한다.
1922년에 발표된 염상섭의 <만세전>에는 '인생이 어떠하니,인간성이 어떠하니,사회가 어떠하니 하여야 다만 심심파적으로 하는 탁상의 공론에 불과한 것은 물론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탁상공론'은 그만큼 오래 전부터 쓰이던 표현이다.
이에 비해 '탁상행정'은 1992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큰사전>에서도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아 비교적 최근에 단어로 인정된 말임을 알 수 있다.
'탁상공론으로 끝난 회의/탁상공론에 그치다'처럼 쓰인다.
이를 북한에선 '탁상리론(卓上理論)'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식으로 적으면 '탁상이론'이지만 두음법칙을 버린 문화어(남한의 표준어에 해당)에서는 '-리론'으로 적는 것이다.
북한에선 또 '입공론(-空論)'이란 말도 쓰는데 이는 '입으로만 말하는 빈 이론이나 논의'라는 뜻이다.
'탁상공론' '공리공론' '입공론' 모두 비슷하게 쓰는 말이다.
'탁상공론'이나 '탁상행정'을 속담으로 표현하면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쯤 될 것이다.
한자로는 '묘두현령(猫頭懸鈴)'이다.
이 말은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뜻으로,실행할 수 없는 헛된 논의를 가리킨다.
쥐들이 고양이에게 잡혀먹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을 의논했으나,결국 아무도 방울을 달지 못했다는 우화에서 유래한다.
똑같은 '공론'이지만 탁상공론 같은 공론(空論)이 아니라 제대로 여럿이 모여 의논한다는 뜻의 말이 있다.
'공론(公論)'이 그것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안건을 공론에 부쳤다"라고 할 때의 '공론'이 그런 경우이다.
그래서 '공론(空論)'은 피해야 하지만 '공론(公論)'은 필요하고 좋은 것이다.
특히 '난상공론(爛商公論)'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현대 사회에서 그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난상공론'은 '충분히 의견을 나누어 의논함/낱낱이 들어 잘 토의함'을 뜻한다.
하지만 이보다 대개는 '난상토론/난상토의'란 말이 더 익숙할 것이다.
모두 같은 말이다.
'충분히 의논하다'는 뜻인 '난상(爛商)'은 '무르익을 란,헤아릴 상'으로 이뤄진 단어로,'숙의(熟議)'와 비슷한 말이다.
물론 공론(公論) 중에서도 드러내 놓지 않고 끼리끼리 수군거리는 공론이 있다.
이를 '숙덕공론'이라 한다.
'숙덕공론'은 '여러 사람이 모여 저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의견을 나눔, 또는 그런 의논'을 말한다.
'쑥덕공론'이라 적기도 하는데,이는 '숙덕공론'의 센말이다.
이때 '숙덕'이나 '쑥덕'은 '숙덕거리다/쑥덕거리다'의 어근에 해당하는 말이다.
여기서 갈라져 나온 '숙덕숙덕'이나 그 센말 '쑥덕쑥덕'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이다.
'뒷공론'이란 말도 그다지 좋지 않은 어감으로 쓰인다.
'일이 끝난 뒤에 쓸데없이 이러니저러니 다시 말함' 또는 '겉으로 떳떳이 나서지 않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시비조로 말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미 결정된 일에 대해 더 이상 뒷공론을 벌이지 말아라." "사람들은 갑자기 부자가 된 그에 대해 뒷공론하기 일쑤였다" 식으로 쓰인다.
'公論의 場'은 마음껏 펼쳐야 하지만 '空論의 場'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다문화 사회'가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된 지도 오래 됐다.
한국을 찾는 해외 입양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설립된 '뿌리의 집'(www.koroot.org) 원장 김도현 목사.
그가 최근 한 언론매체를 통해 주장한 이 대목은 우리 사회에서 구호만 요란한 '다문화 정책'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의 표현대로 '다문화'를 책상머리에서 말로만 논하는 것을 한마디로 하면 '탁상공론'이다.
'탁상(卓上)'이란 말 그대로 책상,식탁,탁자 따위의 위를 말하는 것이고,'공론(空論)'은 실속이 없는 빈 논의를 뜻한다.
그러니 '탁상공론'이란 현실성 없는 허황한 이론이나 논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공리공론(空理空論 · 실천이 따르지 아니하는,헛된 이론이나 논의)'도 같이 쓸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이 정부 관료들의 현실적이지 못한 행정을 빗댄 경우일 때는 특히 '탁상행정'이라고 한다.
모두 사전에 정식으로 올라 있는 단어이다.
현장 실태는 제대로 모르면서 책상머리에만 앉아서 하는 행정이란 뜻에서 '탁상행정'을 다른 말로 '책상머리 행정'이라고도 한다.
1922년에 발표된 염상섭의 <만세전>에는 '인생이 어떠하니,인간성이 어떠하니,사회가 어떠하니 하여야 다만 심심파적으로 하는 탁상의 공론에 불과한 것은 물론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탁상공론'은 그만큼 오래 전부터 쓰이던 표현이다.
이에 비해 '탁상행정'은 1992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큰사전>에서도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아 비교적 최근에 단어로 인정된 말임을 알 수 있다.
'탁상공론으로 끝난 회의/탁상공론에 그치다'처럼 쓰인다.
이를 북한에선 '탁상리론(卓上理論)'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식으로 적으면 '탁상이론'이지만 두음법칙을 버린 문화어(남한의 표준어에 해당)에서는 '-리론'으로 적는 것이다.
북한에선 또 '입공론(-空論)'이란 말도 쓰는데 이는 '입으로만 말하는 빈 이론이나 논의'라는 뜻이다.
'탁상공론' '공리공론' '입공론' 모두 비슷하게 쓰는 말이다.
'탁상공론'이나 '탁상행정'을 속담으로 표현하면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쯤 될 것이다.
한자로는 '묘두현령(猫頭懸鈴)'이다.
이 말은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뜻으로,실행할 수 없는 헛된 논의를 가리킨다.
쥐들이 고양이에게 잡혀먹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을 의논했으나,결국 아무도 방울을 달지 못했다는 우화에서 유래한다.
똑같은 '공론'이지만 탁상공론 같은 공론(空論)이 아니라 제대로 여럿이 모여 의논한다는 뜻의 말이 있다.
'공론(公論)'이 그것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안건을 공론에 부쳤다"라고 할 때의 '공론'이 그런 경우이다.
그래서 '공론(空論)'은 피해야 하지만 '공론(公論)'은 필요하고 좋은 것이다.
특히 '난상공론(爛商公論)'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현대 사회에서 그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난상공론'은 '충분히 의견을 나누어 의논함/낱낱이 들어 잘 토의함'을 뜻한다.
하지만 이보다 대개는 '난상토론/난상토의'란 말이 더 익숙할 것이다.
모두 같은 말이다.
'충분히 의논하다'는 뜻인 '난상(爛商)'은 '무르익을 란,헤아릴 상'으로 이뤄진 단어로,'숙의(熟議)'와 비슷한 말이다.
물론 공론(公論) 중에서도 드러내 놓지 않고 끼리끼리 수군거리는 공론이 있다.
이를 '숙덕공론'이라 한다.
'숙덕공론'은 '여러 사람이 모여 저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의견을 나눔, 또는 그런 의논'을 말한다.
'쑥덕공론'이라 적기도 하는데,이는 '숙덕공론'의 센말이다.
이때 '숙덕'이나 '쑥덕'은 '숙덕거리다/쑥덕거리다'의 어근에 해당하는 말이다.
여기서 갈라져 나온 '숙덕숙덕'이나 그 센말 '쑥덕쑥덕'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이다.
'뒷공론'이란 말도 그다지 좋지 않은 어감으로 쓰인다.
'일이 끝난 뒤에 쓸데없이 이러니저러니 다시 말함' 또는 '겉으로 떳떳이 나서지 않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시비조로 말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미 결정된 일에 대해 더 이상 뒷공론을 벌이지 말아라." "사람들은 갑자기 부자가 된 그에 대해 뒷공론하기 일쑤였다" 식으로 쓰인다.
'公論의 場'은 마음껏 펼쳐야 하지만 '空論의 場'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