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니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아."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어린이가 위험에 처해질 상황을 가정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우리말에서 '지다'라는 단어가 기여하는 부분은 매우 크다.
'지다'의 주기능은 물론 동사이다.
가령 '낙엽이 지다/얼룩이 지다' 등에서와 같이 자동사로 쓰이거나 '신세를 지다/책임을 지다/빚을 지다'처럼 타동사로 쓰인다.
하지만 '지다'의 진정한 공헌은 접미사나 보조용언으로 쓰일 때 나온다.
앞에 놓이는 말과 어울려 품사를 바꿔주는 등 새로운 역할을 갖게 함으로써 부족한 우리말 어휘를 메워준다.
우선 접미사로 쓰인 '지다'는 명사를 형용사(예:'기름지다/멋지다/값지다/건방지다' 등)나 동사('빚지다/그늘지다')로 만들어준다.
보조용언으로서의 '지다'는 형용사에 붙어 그 말을 동사로 바꿔준다.
'예뻐지다/좋아지다/젊어지다/'빨개지다' 따위가 그런 것이다.
또 '이루어지다/나누어지다'처럼 동사에 붙을 때는 피동 의미를 갖는 말을 만든다.
'지다'의 이런 다양한 기능은 주로 용언(동사 · 형용사)의 어미 '-아(어)' 밑에 쓰여 그 말에 기동(起動) 또는 피동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다.
'지다'는 이같이 많은 기능을 갖고 있어 우리말을 풍성하게 해주긴 하지만 자칫 남용되거나 오용되기 쉬운 경향이 있다.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피동형을 중복으로 쓰는 오류이다.
가령 '나뉘어지다'란 표현을 많이 쓴다.
이 말은 '나뉘+어+지다'의 결합이다.
'나뉘'는 다시 '나누+이'의 구성이다.
타동사 '나누다'에 피동어미 '이'가 붙어 피동사 '나뉘다'가 됐다.
여기에 다시 '-어지다'가 붙은 형태인 것이다.
따라서 이미 피동형인 '나뉘다'가 다시 피동형으로 활용한 꼴이 돼 불필요한 피동 중복인 셈이다.
'나뉘다'로 충분하며 굳이 '-어지다' 꼴을 쓰고 싶다면 '나누어지다'라고 하면 된다.
이런 이중피동 표현을 두고 일각에서는 피동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용법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결함을 중요시하는 보고문이나 설명문,논술문 등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 방식이다.
이제 맨 처음 예문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믿다'를 피동형으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피동접사('이/히/리/기')를 써서 만든 '믿기다'.
다른 하나는 '-어지다'를 붙여 만든 '믿어지다'이다.
'믿겨지다'는 '믿기다+어지다' 형태이므로 이중피동이다.
따라서 '믿겨지지가 않아'라고 하는 건 어색한 표현이고 '믿기지가 않아' 또는 '믿어지지가 않아'라고 하는 게 좋다.
'-어지다'에 의한 이중피동은 글쓰기에서 의외로 많이 보이는데, 모두 불필요한 군더더기일 뿐이다.
가령 '순화되어져야 한다''~라고 불려지고 있다''다리가 놓여질 것이라고 한다''바람에 날려진…' 등에서도 '순화되다,불리다,놓이다,날리다'가 이미 피동형이므로 또다시 '-어지다'를 붙일 필요가 없다.
'찢겨지다,잠겨지다,담겨지다' 등도 같은 오류에 속하는 말이다.
'찢기다,잠기다,담기다' 자체로 충분한 피동 표현이다.
둘째 예문의 '생각되어집니다'는 이중피동도 잘못이지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라 더욱 문제가 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떤 말을 하기 껄끄러운 때가 있다.
또는 내용을 정확히 몰라 자신있게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문장에서 주체를 드러내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예문은 본래 "(나는)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에서 시작된 문장이다.
이를 좀더 완곡하게,유보적으로 표현하면 피동형을 써서 "…있다고 생각됩니다"가 된다.
그래도 여전히 자신이 없을 경우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란 이상한 이중피동형이 나온다.
이를 한 번 더 모호하게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은 "…있다는 생각입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서술어의 주체인 '나'는 사라지고 그 '생각'이 마치 일반 국민이나 불특정 다수의 생각인 것처럼 탈바꿈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나타내야 할 글에서는 피해야 할 표현 방식이다.
셋째 예문에서와 같이 자동사로 써야 할 곳에 무심코 '-어지다'를 붙여 피동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적절치 않은 표현법이다.
'어린이가 위험에 처해질 상황'은 '어린이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처럼 자동사로 쓰면 그만이다.
이는 '처해질'의 자리에 고유어로 바꾼 '빠질'을 넣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경우 '위험에 처하다'란 말도 쓰지만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법은 '위험에 빠지다'이다.
이를 예문에 적용하면 '어린이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라 말하지 이를 '위험에 빠져지는 상황…' 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지다'형이 올 자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어린이가 위험에 처해질 상황을 가정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우리말에서 '지다'라는 단어가 기여하는 부분은 매우 크다.
'지다'의 주기능은 물론 동사이다.
가령 '낙엽이 지다/얼룩이 지다' 등에서와 같이 자동사로 쓰이거나 '신세를 지다/책임을 지다/빚을 지다'처럼 타동사로 쓰인다.
하지만 '지다'의 진정한 공헌은 접미사나 보조용언으로 쓰일 때 나온다.
앞에 놓이는 말과 어울려 품사를 바꿔주는 등 새로운 역할을 갖게 함으로써 부족한 우리말 어휘를 메워준다.
우선 접미사로 쓰인 '지다'는 명사를 형용사(예:'기름지다/멋지다/값지다/건방지다' 등)나 동사('빚지다/그늘지다')로 만들어준다.
보조용언으로서의 '지다'는 형용사에 붙어 그 말을 동사로 바꿔준다.
'예뻐지다/좋아지다/젊어지다/'빨개지다' 따위가 그런 것이다.
또 '이루어지다/나누어지다'처럼 동사에 붙을 때는 피동 의미를 갖는 말을 만든다.
'지다'의 이런 다양한 기능은 주로 용언(동사 · 형용사)의 어미 '-아(어)' 밑에 쓰여 그 말에 기동(起動) 또는 피동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다.
'지다'는 이같이 많은 기능을 갖고 있어 우리말을 풍성하게 해주긴 하지만 자칫 남용되거나 오용되기 쉬운 경향이 있다.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피동형을 중복으로 쓰는 오류이다.
가령 '나뉘어지다'란 표현을 많이 쓴다.
이 말은 '나뉘+어+지다'의 결합이다.
'나뉘'는 다시 '나누+이'의 구성이다.
타동사 '나누다'에 피동어미 '이'가 붙어 피동사 '나뉘다'가 됐다.
여기에 다시 '-어지다'가 붙은 형태인 것이다.
따라서 이미 피동형인 '나뉘다'가 다시 피동형으로 활용한 꼴이 돼 불필요한 피동 중복인 셈이다.
'나뉘다'로 충분하며 굳이 '-어지다' 꼴을 쓰고 싶다면 '나누어지다'라고 하면 된다.
이런 이중피동 표현을 두고 일각에서는 피동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용법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결함을 중요시하는 보고문이나 설명문,논술문 등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 방식이다.
이제 맨 처음 예문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믿다'를 피동형으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피동접사('이/히/리/기')를 써서 만든 '믿기다'.
다른 하나는 '-어지다'를 붙여 만든 '믿어지다'이다.
'믿겨지다'는 '믿기다+어지다' 형태이므로 이중피동이다.
따라서 '믿겨지지가 않아'라고 하는 건 어색한 표현이고 '믿기지가 않아' 또는 '믿어지지가 않아'라고 하는 게 좋다.
'-어지다'에 의한 이중피동은 글쓰기에서 의외로 많이 보이는데, 모두 불필요한 군더더기일 뿐이다.
가령 '순화되어져야 한다''~라고 불려지고 있다''다리가 놓여질 것이라고 한다''바람에 날려진…' 등에서도 '순화되다,불리다,놓이다,날리다'가 이미 피동형이므로 또다시 '-어지다'를 붙일 필요가 없다.
'찢겨지다,잠겨지다,담겨지다' 등도 같은 오류에 속하는 말이다.
'찢기다,잠기다,담기다' 자체로 충분한 피동 표현이다.
둘째 예문의 '생각되어집니다'는 이중피동도 잘못이지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라 더욱 문제가 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떤 말을 하기 껄끄러운 때가 있다.
또는 내용을 정확히 몰라 자신있게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문장에서 주체를 드러내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예문은 본래 "(나는)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에서 시작된 문장이다.
이를 좀더 완곡하게,유보적으로 표현하면 피동형을 써서 "…있다고 생각됩니다"가 된다.
그래도 여전히 자신이 없을 경우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란 이상한 이중피동형이 나온다.
이를 한 번 더 모호하게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은 "…있다는 생각입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서술어의 주체인 '나'는 사라지고 그 '생각'이 마치 일반 국민이나 불특정 다수의 생각인 것처럼 탈바꿈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나타내야 할 글에서는 피해야 할 표현 방식이다.
셋째 예문에서와 같이 자동사로 써야 할 곳에 무심코 '-어지다'를 붙여 피동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적절치 않은 표현법이다.
'어린이가 위험에 처해질 상황'은 '어린이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처럼 자동사로 쓰면 그만이다.
이는 '처해질'의 자리에 고유어로 바꾼 '빠질'을 넣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경우 '위험에 처하다'란 말도 쓰지만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법은 '위험에 빠지다'이다.
이를 예문에 적용하면 '어린이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라 말하지 이를 '위험에 빠져지는 상황…' 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지다'형이 올 자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