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김수업 선생의 ‘말꽃’ 실험
"말은 '생각의 집'이기 때문에 참다운 우리말에 담아야 참된 우리 생각일 수 있다. 참다운 우리말로 우리 생각을 담아내야 우리 삶을 밝히는 학문이 된다. (중략) 앞장서는 사람이 있어야 생각을 바꾸는 사람이 생겨나고,생각을 바꾸는 사람이 생겨나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서 큰마음을 먹고 마침내 '문학'도 '말꽃'으로 바꾸어 써보기로 한다."

평생을 우리말 살리기에 이바지한 국어교육학자 김수업 우리말교육대학원장(70)은 2002년 저서 <배달말꽃>을 펴내면서 '말꽃'이란 말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경상대 국어교육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다가 대구가톨릭대 총장,문화관광부 국어심의회 위원장 등을 지낸 사람이다.

"'말꽃'은 '문학'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토박이말이지만 예로부터 써 오던 것이 아니라 요즘 나타난 말이다. 놀이(희곡),노래(시),이야기(소설) 같은 것을 싸잡아 '문학'이라 부른다. 놀이 · 노래 · 이야기 같은 것은 '말의 예술'인데,(중략) '말로써 피워낸 꽃'이니 '말의 예술'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말꽃은 새말이지만 이미 이야기꽃,웃음꽃 같이 정다운 말들이 형제처럼 곁에 있어서 외롭지 않다."

그는 2006년 9월 한 신문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 쓰는 말 '말꽃'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냈다.

그의 토박이말 살려 쓰기 작업은 '말꽃'뿐만 아니라 시를 노래말꽃으로,소설을 이야기말꽃으로,희곡을 놀이말꽃으로 바꿔 쓰는 등 거침이 없었다.

심지어 '예술'은 '삶으로 피워낸 꽃'이란 의미에서 '삶꽃'으로 쓰는 게 마땅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실험을 두고 우리말 학계를 비롯해 여러 관련 단체 등에선 잔잔한 호응과 함께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도 동시에 나왔다.

2003년 당시 남기심 국립국어연구원장(지금의 국립국어원)은 한 학술대회에 참석해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김수업 선생께서 '문학'을 '말꽃'이란 말로 바꿔 썼더니 벌써 백 년 동안이나 써온 말을 생판 낯선 말로 바꾸어도 되느냐,사라진 줄 알았던 국수주의 망령이 도깨비처럼 되살아났구나,'문학'이 '말꽃'이면 '미술'은 '물감꽃'이고,음악은 '소리꽃'이냐 하는 등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그의 말에는 우리말 순화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가 담겨 있다.

남 원장은 광복 직후부터 이어져 온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이 상당한 성과를 거뒀음도 빠뜨리지 않았다.

가령 '화판,자예,웅예,감산,가산' 같은 말을 요즘 쓴다면 이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화판은 지금 꽃잎으로,자예는 암술로,웅예는 수술로,감산은 뺄셈으로,가산은 덧셈으로 누구나 익혀 쓰고 있다.

이처럼 쉽고 아름다운 이름들이 그동안의 말다듬기를 통해 우리 말 속에 정착했다.

우리말 순화운동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셈이다.

말다듬기는 김수업 선생의 지적처럼 당위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론 그것을 실패로 이끄는 요인이 많다.

그 중의 하나는 언중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된 대체어가 제시되느냐 하는 점이다.

'기라성(綺羅星)' 같은 게 그런 경우이다.

'기라성 같은 국가 대표 선수가 많다/각 분야 전문가가 기라성처럼 한자리에 모였다'처럼 쓰이는 이 말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이라는 뜻으로,신분이 높거나 권력이나 명예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를 '빛나는 별'로 순화했다.

그러나 '기라성'은 아쉬운 대로 여전히 입말이나 글말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이를 자연스레 '빛나는 별'로 바꿔 쓰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기라성'은 본래 '반짝반짝'을 뜻하는 일본말 '기라키라(きらきら)'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말이다.

이 '기라'를 한자를 빌려 '綺羅'로 적고 여기에 '星'을 붙여 '반짝이는 별'이란 뜻으로 쓴 게 '기라보시(綺羅星)'이다.

이때 차자한 한자 '기라(綺羅)'는 '곱고 아름다운 비단 또는 그 비단으로 지은 옷'을 말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본래 자기들 말 '기라키라'의 뜻을 정확히 옮긴 게 아닌,어설프게 한자로 바꾼 '기라보시'를 바람직하지 않은 말로 여긴다고 한다.

이 '기라보시'를 그대로 들여와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게 '기라성'이다.

'기라성'의 정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중요한 것은 이를 순화한 말 '빛나는 별'이 언중의 호응을 얻지 못 한다는 점이다.

단어가 아니라 구의 형태라 '기라성'의 대체어가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될 수 있으면 바꿔 쓰기 위해 순화어를 제시하는 것인데,'말다듬기'가 단순히 누구나 알기 쉽게 우리말로 풀어 쓰는 작업이 아님을 간과한 결과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