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장마는 전국 곳곳에 게릴라성 폭우를 동반하면서 예년보다 길게 이어졌다.
그나마 매년 발생하던 태풍은 아직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큰 피해를 주지 않아 다행이다.
8월 초에 있었던 태풍 '모라꼿'은 중국 상하이 부근에서 소멸했지만 그 영향으로 8월 11~12일 경기도 동두천 지역에 355㎜의 폭우를 뿌리는 등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태풍 '모라꼿'은 2000년 세계기상기구 산하 태풍위원회에서 정한,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태풍의 공식 명칭 140개 가운데 하나이다.
140개의 이름은 남북한과 중국 미국 일본 필리핀 태국 등 태풍 영향권에 있는 14개 회원국에서 각각 10개씩 내어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개미,장미,미리내,노루,제비,너구리,고니,메기 등 부르기 쉽고 친근한 이미지의 단어들을 제출해 사용하고 있고 북한도 기러기,도라지,갈매기,소나무,버들 등 10개가 있다.
따라서 한글로 된 국제적인 태풍 이름이 20개 있는 셈이다.
'모라꼿'은 태국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에메랄드를 뜻하는 말이다.
태풍은 지역에 따라 동남아시아권에선 타이푼(typhoon),인도양 부근에선 사이클론,미국 동남부 해안지방에선 허리케인 등으로 불린다.
'윌리윌리'는 호주 동북부에서 발생하는 태풍을 가리켰으나 최근엔 이 지역에서도 사이클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크건 작건 태풍이 상륙하거나 비껴가기만 해도 대개 엄청난 폭우를 동반하는데,그런 경우 보통 '수마(水魔)가 할퀴고 지나가다'란 표현을 단골손님처럼 쓴다.
그리고 거기에 흔히 따라붙는 말에 '초토화(焦土化)'라는 게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쓰기엔 적절치 않은 점이 있다.
'초토'는 말 그대로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한자 焦가 '(불에)그을리다,불타다'를 뜻한다.
따라서 '초토화'란 말은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현장을 나타낼 때 적합한 표현이다.
'지하 가스시설이 폭발한 공장 안은 순식간에 초토화가 됐다'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초토화됐다'라고 하는 게 전형적인 쓰임새이다.
수재(水災)를 당한 곳이라면 '초토화' 대신 문맥에 따라 좀더 가치중립적인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따위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쑥대밭'은 매우 어지럽거나 못쓰게 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쑥대+밭'의 구성으로 된 합성어이다.
'쑥대'는 물론 쑥의 줄기를 이른다.
쑥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 약간의 수분만 있으면 어떤 토양에서도 군락을 이루며 생겨난다.
그래서 폐허가 된 땅 위에서도 쑥은 잡초와 함께 여기저기 무성하게 자라난다.
'쑥대밭'은 이처럼 쑥대가 어지럽게 우거진 황폐화된 모습에서 생겨난 말이다.
'쑥대'와 어울려 이뤄진 말에는 '쑥대머리'도 있다.
이는 '머리털이 마구 흐트러져 어지럽게 된 머리'를 가리킨다.
'쑥대밭 같은 머리카락'이란 말을 쓰는데,그것이 곧 '쑥대머리'이다.
쑥대머리를 자칫 '쑥+대머리'의 합성으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쑥과 대머리가 어울릴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쑥대머리는 쑥대와 머리가 결합해 만들어진 말이다.
글쓰기에서는 단어마다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자질에 유념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호응' 관계를 살펴야 한다.
단어들의 연쇄로 이뤄지는 문장에서 이 의미자질이나 그에 따른 호응 관계를 잘못 다뤄 비문이 되는 경우가 의외로 꽤 많다.
# 사소한 오해가 싸움의 도화선이 되었다.
# 이번 정부 정책이 집값 안정에 도화선이 되길 바란다.
두 문장에는 똑같이 '도화선'이 쓰였지만 의미상의 자연스러움에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도화선'의 사전적 풀이는 '폭약이 터지도록 불을 붙이는 심지'이다.
여기서 의미가 확장돼 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따라서 이 말은 부정적 의미자질을 갖는 말과 어울린다.
'금융권 위기의 도화선이 되다/갈등과 반목의 도화선이 되다/서울 잠실을 도화선으로 시작된 전셋값 상승' 같은 표현에서 자연스럽다.
그래서 '집값 급락/급등의 도화선'은 괜찮지만 '집값 안정의 도화선'이라 하면 어색하다.
이럴 때는 '집값 안정의 계기/토대/촉매/견인차' 등 상황에 따라 내용에 맞는 표현을 찾아 쓸 수 있을 것이다.
'경기회복의 도화선이 되어/우승의 도화선이 되었다/성공의 도화선이다' 같은 표현이 어색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의미자질이 서로 어울리게 써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그나마 매년 발생하던 태풍은 아직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큰 피해를 주지 않아 다행이다.
8월 초에 있었던 태풍 '모라꼿'은 중국 상하이 부근에서 소멸했지만 그 영향으로 8월 11~12일 경기도 동두천 지역에 355㎜의 폭우를 뿌리는 등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태풍 '모라꼿'은 2000년 세계기상기구 산하 태풍위원회에서 정한,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태풍의 공식 명칭 140개 가운데 하나이다.
140개의 이름은 남북한과 중국 미국 일본 필리핀 태국 등 태풍 영향권에 있는 14개 회원국에서 각각 10개씩 내어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개미,장미,미리내,노루,제비,너구리,고니,메기 등 부르기 쉽고 친근한 이미지의 단어들을 제출해 사용하고 있고 북한도 기러기,도라지,갈매기,소나무,버들 등 10개가 있다.
따라서 한글로 된 국제적인 태풍 이름이 20개 있는 셈이다.
'모라꼿'은 태국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에메랄드를 뜻하는 말이다.
태풍은 지역에 따라 동남아시아권에선 타이푼(typhoon),인도양 부근에선 사이클론,미국 동남부 해안지방에선 허리케인 등으로 불린다.
'윌리윌리'는 호주 동북부에서 발생하는 태풍을 가리켰으나 최근엔 이 지역에서도 사이클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크건 작건 태풍이 상륙하거나 비껴가기만 해도 대개 엄청난 폭우를 동반하는데,그런 경우 보통 '수마(水魔)가 할퀴고 지나가다'란 표현을 단골손님처럼 쓴다.
그리고 거기에 흔히 따라붙는 말에 '초토화(焦土化)'라는 게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쓰기엔 적절치 않은 점이 있다.
'초토'는 말 그대로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한자 焦가 '(불에)그을리다,불타다'를 뜻한다.
따라서 '초토화'란 말은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현장을 나타낼 때 적합한 표현이다.
'지하 가스시설이 폭발한 공장 안은 순식간에 초토화가 됐다'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초토화됐다'라고 하는 게 전형적인 쓰임새이다.
수재(水災)를 당한 곳이라면 '초토화' 대신 문맥에 따라 좀더 가치중립적인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따위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쑥대밭'은 매우 어지럽거나 못쓰게 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쑥대+밭'의 구성으로 된 합성어이다.
'쑥대'는 물론 쑥의 줄기를 이른다.
쑥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 약간의 수분만 있으면 어떤 토양에서도 군락을 이루며 생겨난다.
그래서 폐허가 된 땅 위에서도 쑥은 잡초와 함께 여기저기 무성하게 자라난다.
'쑥대밭'은 이처럼 쑥대가 어지럽게 우거진 황폐화된 모습에서 생겨난 말이다.
'쑥대'와 어울려 이뤄진 말에는 '쑥대머리'도 있다.
이는 '머리털이 마구 흐트러져 어지럽게 된 머리'를 가리킨다.
'쑥대밭 같은 머리카락'이란 말을 쓰는데,그것이 곧 '쑥대머리'이다.
쑥대머리를 자칫 '쑥+대머리'의 합성으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쑥과 대머리가 어울릴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쑥대머리는 쑥대와 머리가 결합해 만들어진 말이다.
글쓰기에서는 단어마다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자질에 유념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호응' 관계를 살펴야 한다.
단어들의 연쇄로 이뤄지는 문장에서 이 의미자질이나 그에 따른 호응 관계를 잘못 다뤄 비문이 되는 경우가 의외로 꽤 많다.
# 사소한 오해가 싸움의 도화선이 되었다.
# 이번 정부 정책이 집값 안정에 도화선이 되길 바란다.
두 문장에는 똑같이 '도화선'이 쓰였지만 의미상의 자연스러움에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도화선'의 사전적 풀이는 '폭약이 터지도록 불을 붙이는 심지'이다.
여기서 의미가 확장돼 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따라서 이 말은 부정적 의미자질을 갖는 말과 어울린다.
'금융권 위기의 도화선이 되다/갈등과 반목의 도화선이 되다/서울 잠실을 도화선으로 시작된 전셋값 상승' 같은 표현에서 자연스럽다.
그래서 '집값 급락/급등의 도화선'은 괜찮지만 '집값 안정의 도화선'이라 하면 어색하다.
이럴 때는 '집값 안정의 계기/토대/촉매/견인차' 등 상황에 따라 내용에 맞는 표현을 찾아 쓸 수 있을 것이다.
'경기회복의 도화선이 되어/우승의 도화선이 되었다/성공의 도화선이다' 같은 표현이 어색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의미자질이 서로 어울리게 써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