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변방의 말들 : '대략난감'을 둘러싼 시비
우리말 속에서,특히 신문 · 방송 언어 등 제도권 언어의 틀 속으로 '대략난감'이 들어온 데는 방송 드라마의 힘이 컸다.

2006년 1월 문화방송에서 새 드라마로 선보인 '궁'은 숱한 화제를 몰고 왔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라면'이란 가상의 설정으로 때 아닌 '입헌군주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대략난감' '졸라' 등 당시 인터넷상에 머물던 신세대 용어를 과감히 정규 방송 프로그램에 올려,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이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 MBC 새 드라마 '궁'이 인터넷 통신언어로 논란이 됐다. 여고생 주인공 등 신세대 배우들이 남발하는 '불끈' '대략난감' '므흣' '졸라' 등 인터넷 용어가 안방극장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2006년 1월 13일)

'언어의 실험장'인 인터넷에서 우리 네티즌들은 새로운 말 만들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지만 그 가운데 지속적인 쓰임새를 보여 살아남는 것은 실제론 그리 많지 않다.

한국언론재단에서 운영하는 종합뉴스DB인 '카인즈'를 통해 보면,'대략난감'은 드라마 '궁' 이후 급속도로 단어의 형태를 갖추고 언론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음이 확인된다. 그 전만 해도 신문에서 이 말은,

# 이날 뉴욕증시의 움직임은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전날 장 막판 극적으로 형성됐던 상승 모멘텀이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 요즘 젊은층 표현을 빌리자면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2004년 5월 14일)

#'연예인 눈썹 테러?' 일부 네티즌이 국내 톱스타들의 눈썹을 지운 사진을 만들어 우스갯거리로 삼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최근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연예인이 눈썹 없으면 대략 난감'이라는 제목을 달고 여러 장의 연예인 사진이 올라왔다. (2005년 2월 23일)

식으로 썼을 뿐이었다.

'대략'에 작은 따옴표를 붙인 것은 그 말이 정상적인 쓰임새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는 방식이고,'대략 난감' 식으로 띄어 쓰는 것 역시 당시까지만 해도 이 말을 정식 단어로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대체적으로 상황이 이렇게 하기도 저렇게 하기도 어려워 처지가 딱함'을 뜻하는 '대략난감'은 규범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보도언어의 틀 속으로는 들어왔지만 아직 최종적으로 '사전'이란 관문을 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상적인 우리말 조어법을 벗어난,다소 어색한 결합이라는 일부 지적도 작용하는 것 같다.

이 논란에는 우리말의 탄생 및 진흥과 관련한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기도 하다.

우리말에서 '대략'은 보통 '보고서를 대략 훑어보다/사연을 대략 이야기하다' 식으로 동사를 꾸며주는 부사로 쓰일 때 자연스럽다.

또 '대략 100명으로 추산하다/피해액이 대략 10억 원이 넘는다'에서처럼 어림잡는 숫자와 함께 쓰인다.

반면에 '대략 난감하다/대략 괴롭다/대략 기쁘다' 식으로 형용사를 꾸며주는 말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략난감'은 바람직한 조어가 아니라는 게 비판론을 펴는 사람들의 요지이다.

하지만 새로운 합성어의 탄생은 종종 '규범'을 일탈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경직된 틀 속에서 우리말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사전에 단어로 오른 '몰래카메라(촬영을 당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촬영하는 카메라. 또는 그런 방식. 부사와 명사의 결합으로 이뤄진 말이다)'가 그 선례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이론으로 배운 것처럼 '부사는 동사나 형용사를 꾸며주는 말'이란 규정에만 얽매인다면 여전히 '몰래카메라'는 잘못 만들어진 단어에 불과할 뿐이다.

부사와 명사의 결합이 우리말에서 흔한 것은 아니지만 언중은 '몰래카메라'를 받아들였고 사전에서도 이를 인정해 단어로 올렸다.

그런 점에서 '대략난감' 역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자연스러운 구성은 아니지만 언중의 선택을 받는다면 정식 단어로 사전에 오를 날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혹여 전통적인 조어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잘못 만든 단어로 배척해 스스로 우리말 어휘를 옥죄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