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반드시 메모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적자생존이라고 합니다.에디슨은 발명왕이기 전에 메모왕이었어요.그가 죽은 뒤에 연구실에서 발견된 메모가 무려 35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메모의 중요성에 관해 얘기하면서 갑자기 ‘적자생존’이란 말을 썼다.
적자생존(適者生存)?
‘적자생존’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돼 멸망한다’는 뜻인데….
아무리 예나 지금이나 메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쳐도 그렇다고 적자생존이라 하기엔 어색한 문맥인데….
이런 의문은 그의 이어지는 설명에서 곧 풀렸다.
그는 ‘적자생존’을 본래 단어의 뜻이 아닌,‘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새로운 의미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왕에 있는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새로운 뜻을 부여하는 방식은 넓은 의미에서 칼랑부르(동음 이의어)라 할 수 있다.
우리말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와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이런 ‘말 비틀기’ 수법은 ‘고진감래(고생을 진탕하면 감기몸살이 온다),박학다식(박사와 학사는 밥을 많이 먹는다),만사형통(만사는 형을 통해 이뤄진다)’ 식으로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일부 ‘사오정(사십오 세 정년)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같은 말은 사회상을 반영해 제법 지속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쓰이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경우는 넓은 의미에서 신어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본래 수사학에서 전형적인 칼랑부르는 가령 국사(國史) 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國史인가 國死인가’ 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요즘 흔히 쓰이는 말들은 약어(略語)의 수법에 칼랑부르를 혼합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대개 이런 말은 생겨나면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 모은다.
언어에 긴장감을 주어 말하는 이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한순간 끌어 모을 수는 있어도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이런 말이 어느 정도 세력을 얻으면 그것이 바로 유행어이다.
그러나 ‘적자생존’ 같은 것을 비롯해 이런 유의 말장난은 대부분 유행어의 지위조차 얻지 못하고 일시적인 관심이 지나고 나면 곧 사라져 버린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 말들은 우리가 수사적으로 한두 번 쓰고 말뿐,그 정체를 파악하기까지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와 비슷하게 신어의 모습을 가장해 마치 정상적인 단어인 양,또는 원래부터 쓰이던 말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요즘 많이 쓰이는 ‘대략난감(대체로 난감하거나 당황스러움),여유만만(여유가 아주 많음),기대만발(기대가 많이 일어남)’ 같은 게 그런 것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제법 빈번하게 쓰여 단어로서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얼핏 보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법적으로 일탈한 경우도 있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쓰이던 말을 의도적으로 결합해 만든 경우도 있다.
그러니 아직 정식으로 족보에 오른 것은 아니라 사전을 찾아보면 나오지 않는다.(‘야심만만’의 경우 일부 사전에서 다뤘다)
이런 말은 규범의 잣대로만 보면 정상적인 글쓰기에서는 아직 쓸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말의 탄생과 진화는 규범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 언제까지 정체불명의 그릇된 표현으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령 ‘낙장불입’과 ‘일타쌍피’는 단어일까 아닐까?
‘낙장불입(落張不入)’은 ‘판에 한번 내어놓은 패는 물리기 위해 다시 집어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일타쌍피(一打雙皮)’는 ‘한 장을 내고 피 두 장을 한꺼번에 가지고 온다’는 뜻으로 쓰는 고스톱 용어이다.
화투나 카드놀이를 할 때 없으면 안 되는 위력을 발휘하는 이 고전적(?)인 용어들 중 ‘낙장불입’은 정상적인 단어이고 ‘일타쌍피’는 아쉽지만 여전히 단어가 아니다.
둘 다 한자어이지만 사전에서의 대접은 천양지차인 셈이다.
=>다음호에 계속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메모의 중요성에 관해 얘기하면서 갑자기 ‘적자생존’이란 말을 썼다.
적자생존(適者生存)?
‘적자생존’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돼 멸망한다’는 뜻인데….
아무리 예나 지금이나 메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쳐도 그렇다고 적자생존이라 하기엔 어색한 문맥인데….
이런 의문은 그의 이어지는 설명에서 곧 풀렸다.
그는 ‘적자생존’을 본래 단어의 뜻이 아닌,‘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새로운 의미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왕에 있는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새로운 뜻을 부여하는 방식은 넓은 의미에서 칼랑부르(동음 이의어)라 할 수 있다.
우리말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와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이런 ‘말 비틀기’ 수법은 ‘고진감래(고생을 진탕하면 감기몸살이 온다),박학다식(박사와 학사는 밥을 많이 먹는다),만사형통(만사는 형을 통해 이뤄진다)’ 식으로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일부 ‘사오정(사십오 세 정년)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같은 말은 사회상을 반영해 제법 지속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쓰이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경우는 넓은 의미에서 신어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본래 수사학에서 전형적인 칼랑부르는 가령 국사(國史) 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國史인가 國死인가’ 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요즘 흔히 쓰이는 말들은 약어(略語)의 수법에 칼랑부르를 혼합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대개 이런 말은 생겨나면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 모은다.
언어에 긴장감을 주어 말하는 이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한순간 끌어 모을 수는 있어도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이런 말이 어느 정도 세력을 얻으면 그것이 바로 유행어이다.
그러나 ‘적자생존’ 같은 것을 비롯해 이런 유의 말장난은 대부분 유행어의 지위조차 얻지 못하고 일시적인 관심이 지나고 나면 곧 사라져 버린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 말들은 우리가 수사적으로 한두 번 쓰고 말뿐,그 정체를 파악하기까지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와 비슷하게 신어의 모습을 가장해 마치 정상적인 단어인 양,또는 원래부터 쓰이던 말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요즘 많이 쓰이는 ‘대략난감(대체로 난감하거나 당황스러움),여유만만(여유가 아주 많음),기대만발(기대가 많이 일어남)’ 같은 게 그런 것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제법 빈번하게 쓰여 단어로서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얼핏 보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법적으로 일탈한 경우도 있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쓰이던 말을 의도적으로 결합해 만든 경우도 있다.
그러니 아직 정식으로 족보에 오른 것은 아니라 사전을 찾아보면 나오지 않는다.(‘야심만만’의 경우 일부 사전에서 다뤘다)
이런 말은 규범의 잣대로만 보면 정상적인 글쓰기에서는 아직 쓸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말의 탄생과 진화는 규범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 언제까지 정체불명의 그릇된 표현으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령 ‘낙장불입’과 ‘일타쌍피’는 단어일까 아닐까?
‘낙장불입(落張不入)’은 ‘판에 한번 내어놓은 패는 물리기 위해 다시 집어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일타쌍피(一打雙皮)’는 ‘한 장을 내고 피 두 장을 한꺼번에 가지고 온다’는 뜻으로 쓰는 고스톱 용어이다.
화투나 카드놀이를 할 때 없으면 안 되는 위력을 발휘하는 이 고전적(?)인 용어들 중 ‘낙장불입’은 정상적인 단어이고 ‘일타쌍피’는 아쉽지만 여전히 단어가 아니다.
둘 다 한자어이지만 사전에서의 대접은 천양지차인 셈이다.
=>다음호에 계속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