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든 원천징수세도 A사가 부담한다."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의 중재판정부는 2009년 6월 서울에서 300억원대의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를 둘러싼 분쟁에 판정을 내렸다.
국내 건설 대기업 A사와 항만 준설 하청을 맡은 유럽 기업 B사 간의 이 세금 분쟁에서 A사가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인 단서는 계약서 문구에 담긴 조사 '-도'였다.
B사에서는 "한국어 조사 '도'는 '또한(also)'이라는 의미이니,'원천징수세 또한 A사가 부담한다'는 뜻인 만큼 원천징수세 아닌 다른 세금도 A사가 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A사 측은 "한국어에서 '어떤 ~도'는 강조의 의미를 담은 것이란 점에서 '또한'과는 다르다"며 "문제의 문구는 원천징수세만 부담하면 된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팽팽히 맞선 두 주장은 결국 중재판정부가 A사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승패가 갈렸다.
세금 300억원을 놓고 한판 붙은 이 분쟁의 향방을 가른 것은 다름 아닌 조사 '도'였다.
이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를 가져오는 것은 의외의 아주 작은 결함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말에서 조사 '-도'는 체언이나 부사어,연결어미 등의 뒤에 붙어 특별한 의미를 더해주는 기능을 한다.
특히 주격,서술격,목적격,보격,관형격,부사격,호격 등 문장 안에서 일정한 자격을 나타내는 격조사와 구별해 보조사라 부른다.
보조사는 여러 조사 중에서 일정한 격을 띠지 않는 것을 따로 분류해 가리키는 말이다.
특수조사라고도 한다.
가령 '-도'의 경우 주격이나 목적격 등 하나의 격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주격도 됐다가 목적격도 됐다가 하는 식으로 여러 개의 격으로 쓰인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에서는 주격을,'친구와 영화를 보고 밥도 먹었다'에선 목적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보조사에는 이외에도 '은,는,만,까지,마저,조차,부터' 따위가 있다.
그 중에서도 '-도'는 '까지,마저,조차'와 함께 '무언가 더해줌'을 나타내는 의미자질이 비슷해 서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도'를 비롯해 '까지,마저,조차'가 공통적으로 '이미 어떤 것이 포함되고 그 위에 더함의 뜻을 나타내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우선 '-도'는 다른 말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편성이 있고 넓게 쓰인다.
'밥만 먹지 말고 반찬도 먹어라/내년에도 또 놀러 오렴' 같은 게 있다.
'또한'의 의미로 쓰인다고 기억해두면 편하다.
또 예외성이나 의외성을 강조해,'너는 신문도 안 읽니?''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꼴도 보기 싫다'처럼 쓰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까지'는 이미 어떤 것이 포함되고 그 위에 더함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같지만,'-도'보다 좀 더 극단적인 한계성이란 뉘앙스를 담는다.
"너도 나를 못 믿냐?"라는 것보다 "너까지 나를 못 믿냐?"라고 하는 게 더 한계와 강조의 의미를 띠는 것이다.
'-마저'는 '도'와 '까지'에 더해 '하나 남은 마지막임'을 나타내는 의미를 갖는다.
"너마저 나를 떠나는구나"라고 하면 "너도~"나 "너까지~"라 했을 때보다 마지막 남은 하나라는 의미가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저'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는 이 말이 '남김없이 모두'란 뜻의 부사로도 쓰이는 데서 확인된다.
가령 "하던 일을 마저 끝내라"라고 하면 '마지막,끝'의 의미를 더해주는 표현이다.
'-조차'는 동사 '좇다'에서 온 말이다.
어원에서도 드러나듯이 무언가 더해지되 일반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극단의 경우까지 포함함을 나타낸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식들에게조차 버림받았다"라고 하면 극단적인 의외성을 내포하는 뉘앙스가 된다.
'조차'는 특히 긍정문에도 쓰이지만 부정문에 더 잘 어울린다는 특성도 있다.
'…조차 …않다/못 하다' 식으로 어울려 쓰인다.
로마 공화정 말기 집정관인 줄리어스 시저가 정적들에게 암살당할 때 그의 양자인 부르투스도 그들 틈에 끼어 있었다.
시저가 죽어가면서 남겼다는 외마디 "부르투스,너마저도!"는 지금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심정'을 상징하는 말로 많이 인용된다.
이 말을 '-도'와 '까지,마저,조차'로 써보면 이들의 뉘앙스 차이가 잘 드러난다.
시저가 믿고 일을 맡긴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만일 그가 "부르투스,너도…"라고 했다면 그것은 시저가 믿었던 주위의 많은 사람 가운데 부르투스가 단순한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부르투스,너까지…"라고 했다면 이는 시저가 그러지 않으리라 믿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부르투스이었음을 암시하게 된다.
시저가 실제로 한 말 "부르투스, 너마저…"에서는 부르투스가 시저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아주 극소수의 인물 몇 명 중의 한 명이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를 "부르투스,너조차…"라고 했다면 이는 부르투스가 반역의 범주에 들 만한 사람이 아닌,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사람'이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의 중재판정부는 2009년 6월 서울에서 300억원대의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를 둘러싼 분쟁에 판정을 내렸다.
국내 건설 대기업 A사와 항만 준설 하청을 맡은 유럽 기업 B사 간의 이 세금 분쟁에서 A사가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인 단서는 계약서 문구에 담긴 조사 '-도'였다.
B사에서는 "한국어 조사 '도'는 '또한(also)'이라는 의미이니,'원천징수세 또한 A사가 부담한다'는 뜻인 만큼 원천징수세 아닌 다른 세금도 A사가 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A사 측은 "한국어에서 '어떤 ~도'는 강조의 의미를 담은 것이란 점에서 '또한'과는 다르다"며 "문제의 문구는 원천징수세만 부담하면 된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팽팽히 맞선 두 주장은 결국 중재판정부가 A사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승패가 갈렸다.
세금 300억원을 놓고 한판 붙은 이 분쟁의 향방을 가른 것은 다름 아닌 조사 '도'였다.
이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를 가져오는 것은 의외의 아주 작은 결함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말에서 조사 '-도'는 체언이나 부사어,연결어미 등의 뒤에 붙어 특별한 의미를 더해주는 기능을 한다.
특히 주격,서술격,목적격,보격,관형격,부사격,호격 등 문장 안에서 일정한 자격을 나타내는 격조사와 구별해 보조사라 부른다.
보조사는 여러 조사 중에서 일정한 격을 띠지 않는 것을 따로 분류해 가리키는 말이다.
특수조사라고도 한다.
가령 '-도'의 경우 주격이나 목적격 등 하나의 격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주격도 됐다가 목적격도 됐다가 하는 식으로 여러 개의 격으로 쓰인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에서는 주격을,'친구와 영화를 보고 밥도 먹었다'에선 목적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보조사에는 이외에도 '은,는,만,까지,마저,조차,부터' 따위가 있다.
그 중에서도 '-도'는 '까지,마저,조차'와 함께 '무언가 더해줌'을 나타내는 의미자질이 비슷해 서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도'를 비롯해 '까지,마저,조차'가 공통적으로 '이미 어떤 것이 포함되고 그 위에 더함의 뜻을 나타내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우선 '-도'는 다른 말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편성이 있고 넓게 쓰인다.
'밥만 먹지 말고 반찬도 먹어라/내년에도 또 놀러 오렴' 같은 게 있다.
'또한'의 의미로 쓰인다고 기억해두면 편하다.
또 예외성이나 의외성을 강조해,'너는 신문도 안 읽니?''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꼴도 보기 싫다'처럼 쓰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까지'는 이미 어떤 것이 포함되고 그 위에 더함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같지만,'-도'보다 좀 더 극단적인 한계성이란 뉘앙스를 담는다.
"너도 나를 못 믿냐?"라는 것보다 "너까지 나를 못 믿냐?"라고 하는 게 더 한계와 강조의 의미를 띠는 것이다.
'-마저'는 '도'와 '까지'에 더해 '하나 남은 마지막임'을 나타내는 의미를 갖는다.
"너마저 나를 떠나는구나"라고 하면 "너도~"나 "너까지~"라 했을 때보다 마지막 남은 하나라는 의미가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저'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는 이 말이 '남김없이 모두'란 뜻의 부사로도 쓰이는 데서 확인된다.
가령 "하던 일을 마저 끝내라"라고 하면 '마지막,끝'의 의미를 더해주는 표현이다.
'-조차'는 동사 '좇다'에서 온 말이다.
어원에서도 드러나듯이 무언가 더해지되 일반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극단의 경우까지 포함함을 나타낸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식들에게조차 버림받았다"라고 하면 극단적인 의외성을 내포하는 뉘앙스가 된다.
'조차'는 특히 긍정문에도 쓰이지만 부정문에 더 잘 어울린다는 특성도 있다.
'…조차 …않다/못 하다' 식으로 어울려 쓰인다.
로마 공화정 말기 집정관인 줄리어스 시저가 정적들에게 암살당할 때 그의 양자인 부르투스도 그들 틈에 끼어 있었다.
시저가 죽어가면서 남겼다는 외마디 "부르투스,너마저도!"는 지금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심정'을 상징하는 말로 많이 인용된다.
이 말을 '-도'와 '까지,마저,조차'로 써보면 이들의 뉘앙스 차이가 잘 드러난다.
시저가 믿고 일을 맡긴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만일 그가 "부르투스,너도…"라고 했다면 그것은 시저가 믿었던 주위의 많은 사람 가운데 부르투스가 단순한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부르투스,너까지…"라고 했다면 이는 시저가 그러지 않으리라 믿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부르투스이었음을 암시하게 된다.
시저가 실제로 한 말 "부르투스, 너마저…"에서는 부르투스가 시저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아주 극소수의 인물 몇 명 중의 한 명이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를 "부르투스,너조차…"라고 했다면 이는 부르투스가 반역의 범주에 들 만한 사람이 아닌,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사람'이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