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교육자의 본분을 망각한 불법적인 집단 행동”

반 “의사 표현의 자유를 처벌할 법적 근거 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소속 교사 1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정부의 국정기조 전환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교조와 교육당국이 '교사 시국선언'의 합법성 여부를 둘러싸고 공방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번 시국선언의 내용과 취지가 근로조건과는 관련 없는 정치 상황에 대한 것이므로 정치활동 금지를 규정한 교원노조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대규모 서명작업 과정에서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될 수도 있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 의무(56조),집단행위 금지 규정(66조) 위반 소지도 다분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전교조 측은 "시국선언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갖는 표현과 양심의 자유에 근거한 헌법이 보장한 행위"라며 '불법성' 주장을 일축했다.

전교조는 "시국선언을 가로막으려는 교과부의 행동은 국민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오히려 역공에 나섰다.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불법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법원은 17대 총선 당시 대통령 탄핵반대 시국선언을 하고 특정 정당을 지지한 혐의로 기소된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에게 공직선거법이나 국가공무원법의 특정 정당 · 후보자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 금지 규정 위반을 이유로 2006년 11월 벌금형을 내린 바 있다.

문제는 교사들의 시국 전반에 대한 의사 표명을 과연 정치활동으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처벌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교사의 시국선언 참여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시국선언 참여 교사에 대한 처벌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대학가와 사회 일각의 시국선언에 편승해 '국민 편가르기'에 교사들이 뛰어든 것은 불법적인 집단 행동"이라고 지적한다.

헌법 제31조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교육을 정치적 ·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교육기본법 제6조 1항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국선언을 통해 정부의 사회 · 노동,언론,교육정책 등을 비판한 것은 본분을 망각한 행태라고 꼬집는다.

더구나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 집회 표현 결사의 자유가 훼손됐다''(정부의 독선 때문에) 꾸준히 진전된 남북 간 화해와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주장 등은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국민의 버림을 받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대선 불복종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회 혼란과 안보위기를 조장해온 전교조는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도 없다"고 반박한다.

⊙ 반대 측, "교사의 시국선언 행위 처벌할 법적 근거 어디에도 없어"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시국선언은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의 범위 안에 속하는 것"이라며 전교조가 합법화된 이래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교사들의 집단성명이나 시국선언을 이유로 징계를 추진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개인이나 단체가 시국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행위를 처벌할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며 국가보안법도 아닌 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으로 교사들의 사상과 행동을 처벌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교과부 내부에서조차 "전교조의 서명운동은 헌법에서 보장한 의사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 있어 국가공무원법과 교원노조법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양식 있는 국민 모두가 나서는 마당에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교사에게 침묵을 강요한다면 이 사회에 미래는 없다"며 "교과부는 징계 협박으로 교사를 통제하려는 구시대적 발상을 버리고, 주동자 색출 따위의 반민주적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교육현장이 특정 정치세력 간 대결의 장으로 전락해선 안 돼

전교조가 "민주주의의 싹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며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내놓은 것은 정치활동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 규정은 그 취지가 분명하다.

교육 현장이 정치 선전장으로 오염되는 것을 막고 교사의 정치활동으로 인해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교사들의 정치 행위로 인해 학교가 특정 정치세력 간 대결의 장으로 전락하고,학생들이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했다면 전교조는 시국선언을 해서는 안 된다.

전교조 교사들의 사도(師道)를 포기한 무책임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게 뻔한 형편이다.

전교조는 그동안 교육과 상관없는 정치 투쟁과 좌편향 이념교육으로 눈총을 받아왔다.

20년 전 창립 당시 촌지 추방과 교과별 교육의 질 향상 등을 통해 참교육을 실현하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교육개혁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명분 없는 정치투쟁을 접고 학교 경쟁력 제고에 온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교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교원에게 적용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대한 특례를 규정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원명은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일체의 정치활동이 금지되고,파업 · 태업과 기타 업무의 정상적 운영을 저해하는 쟁의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국선언

정치 또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있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교수 등 지식인이나 종교계 인사 등이 한날 한시(Concurrently)에 정해진 장소에 모여 현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직원들의 지위 향상과 권리 획득, 교육여건 개선, 교육 민주화,참교육 운동 등을 위해 1989년 5월 28일 설립됐으며 흔히 전교조로 불린다. 1999년 1월6일 교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합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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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6월20일자 A5면

정부가 시국선언에 가담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에 대한 고발작업에 착수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엄벌 방침을 밝혔음에도 전교조 교사 1만7147명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한 것과 관련,19일 서명자 명단 파악과 증거 수집에 나섰다.

교과부 관계자는 "이번 주 안에 명단을 파악한 뒤 늦어도 다음 주까지는 위법 행위자들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과부는 시국선언 직후 선언 참여 교사들과 적극 주도 교사들의 명단을 구분해 파악하고 적극 가담자와 주동자에 대한 관련 증거를 수집토록 전국 시 · 도교육청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서명자에 대해선 문제를 삼기 어렵지만 선언을 주도했거나 다른 교사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한 교사는 모두 중징계한다는 방침이다.

정태웅 한국경제신문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