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교수도 전문성 살려 공직 진출할 수 있게 기회줘야”

반 “교육보다 정치에 한눈 팔아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

서울대가 교수들의 정계 진출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휴직규정 초안을 내놨다가 하루 만에 재검토하기로 결정해 구설수에 올랐다.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 이른바 '폴리페서'(정치참여 교수)를 위한 문을 오히려 넓혔다는 비난이 잇따르자 서울대가 관련 논의를 보류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것이다.

서울대는 작년 18대 총선에서 폴리페서 논란에 휘말리자 일부 교수의 '외도'로 나머지 교수들이 교육 · 연구 활동에서 피해를 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휴직 규정안을 마련해 왔다.

당시 서울대 현직 교수로는 처음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에 출마한 모 교수가 강의를 내팽개치고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학생들의 반발을 샀던 게 직접적 계기였다.

폴리페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아탑을 등지고 정치에 뛰어든 폴리페서의 부작용이 선거철마다 되풀이되고 있지만 이를 제한하는 법률은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참여정부 이후 폴리페서가 화두가 된 지 수년이 지나도록 자체 제한 규정을 마련한 학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나마 서울대가 교수들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휴직을 허용하려 했다가 역풍을 맞는 등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서울대는 국 · 공립대 교수가 선거에 출마하면 교수직을 사직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는다면 지금껏 나온 문제를 중심으로 초안을 다시 검토해 가능하면 다음 선거 이전까지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폴리페서 휴직 허용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 본다.

⊙ 찬성 측, "교수도 전문성 살려 공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기회 줘야"

폴리페서 휴직을 허용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대학 교수가 공직 진출을 통해 자신의 학문적 소양이나 전문성으로 정치나 행정에 기여하려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교수의 선거출마 자체를 금지하거나, 출마 때 사임을 의무화하면 '교원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때에는 그 교원의 직은 휴직된다'는 교육공무원법 제44조 2항과 배치된다고 강조한다.

상위법인 공무원법이 보장한 공직 진출의 권리를 하위법인 대학 내규로 지나치게 제한할 경우 위법 · 위헌 논란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 불만을 가진 교수들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백전백패라는 법적 장벽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공직선거 출마를 위한 휴직을 양성화해 교수들이 강의를 내팽개치고 선거운동에 나서는 최악의 경우를 방지하는 대신 선출직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폴리페서들을 입법 과정이나 예산 배정,각종 정부지원 사업 유치 등에서 학교를 위한 '로비 창구'로 적극 활용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 반대 측,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고 교수사회 분위기 깨뜨릴 것"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공무원법 적용을 받는 국립대 교수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에 출마할 경우 그 권리는 보장돼 있지만 선거운동은 휴직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교수가 학기 시작 전에 휴직계를 내더라도 공직 진출을 위한 선거운동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교수가 휴직하지 않고도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면 학생들의 수업권은 과연 누가 보장해 줄 것이냐고 반문한다.

강의와 연구에 전념하는 교수 사회의 분위기를 흐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한다.

아무 때나 출마하여 선거운동을 하다가 당선되면 휴직하고 당선되지 않으면 마실 다녀오듯 돌아오는 교수는 학교를 스스로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의 규정 제정은 학칙으로만 규제되는 일반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폴리페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 국회 등 정계로 진출하려는 교수는 학교를 떠나도록 해야

이번 서울대의 휴직규정 초안은 폴리페서를 양산하여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고 교수 개개인의 정치적 활동을 조장하는 길을 오히려 터놓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선출직 공무원 당선시 휴직 허용 횟수를 한 번으로 제한하기는 했지만 학기 중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등 결과적으로 폴리페서들에게 날개를 달아 줄 게 불을 보듯 뻔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선거운동을 휴직 사유에 포함하지 않는 현행 공무원법 규정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비례대표 후보자는 학기 중이라도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으며 장관 등 임명직 공무원은 수시로 휴직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학 당국은 지난해 18대 총선에서 현직 교수가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 운동을 하느라 강의를 내팽개치다시피 해 폴리페서 논란을 불러왔던 사실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웃 일본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정계에 진출하려는 교수는 학교를 떠나도록 하는 게 올바른 해법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폴리페서의 휴직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폴리페서(polifessor)

영어의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프로페서(professor)'의 합성어로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실현하려 하거나, 그러한 활동을 통하여 정계 또는 관계에서 고위직을 얻으려는 교수를 가리킨다. 학문적 소양과 전문성을 정치에 접목하여 사회 발전에 도움을 주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정치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이 짙다. 교수 직을 유지한 채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 장기 휴직하고,낙선하면 다시 강단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거나 관련 법을 악용하는 등 논란을 빚고 있다.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을 합성한 용어로 언론 활동을 바탕으로 정계와 관계 진출을 시도하는 언론인을 가리킨다. 폴리페서와 마찬가지로 부정적 의미가 다분하다.

-------------------------------------------------------------

연합뉴스 6월 16일자 보도기사

서울대는 16일 '폴리페서'를 위한 문을 오히려 넓혔다는 비난을 산 휴직 규정 초안에 대한 논의를 당분간 보류한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선출직 공무원 당선 때 한 번에 한해 휴직을 허용한다는 초안의 요지가 선거 출마를 교육공무원의 휴직 사유로 하지 않는 공무원법에 어긋나는 데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다양한 문제점이 지적돼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대는 일단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계류 중인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통과 여부를 지켜보고 향후 방침을 정할 계획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국 · 공립대 교수가 선거에 출마하면 교수직을 사직하도록 하는 내용으로,통과돼 시행되면 교수들의 '외도'를 별도로 제한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김명환 교무처장은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지금껏 나온 문제를 중심으로 초안을 다시 검토해 가능하면 다음 선거 이전까지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