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는 피라미드형 소유구조에 힘입어 평균적으로 각 계열사에 5%를 출자하고 40%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우리나라 30대 재벌이 생산하는 부가가치는 1990년대 말 기준으로 국가 GDP의 15%다.

부가가치에서 이윤이 차지하는 몫이 보통 10% 이내임을 감안하면 30대 재벌 총수 일가의 몫은 이 가운데 5%로 GDP의 0.075% 이내인데 사내 유보분을 고려하면 실제 배당액은 이보다 더 낮다.

재벌체제의 문제로 지적돼온 경제력 집중은 바로 이 문제다.

재벌체제의 불필요한 거대 규모가 독과점을 유발한다는 비판은 공정거래법에 재벌규제 조항을 포함시켜왔다.

이에 더해 기업 활동을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업종전문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급격한 세계화로 경쟁 무대가 세계시장으로 확대되면서 최근 들어 독과점과 업종전문화 논쟁은 잠잠해졌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려면 기업규모가 더 커져야 하고 다각화도 강화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재벌체제의 문제는 총수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그룹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총수는 계열사로 하여금 가족이 100% 소유한 외부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도록 할 수가 있다.

이러한 거래를 자기거래(self-dealing)라고 한다.

계열사가 대금에 100억원을 더 얹어서 지불하는 방식으로 자기거래를 시행하면 가족은 100억원의 이익을 얻는다.

물론 계열사는 정확히 같은 크기의 손실을 입지만 총수 개인의 피해는 5%인 5억원에 그친다.

결국 자기거래는 다른 주주들의 돈 95억원을 부당하게 빼돌림(tunneling)할 수 있다.

물론 자기거래는 재벌기업만의 행태가 아니라 일반 전문경영기업에서도 발생하고 최고경영자의 소유지분이 낮으면 역시 빼돌림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기업의 최고경영자 지위는 항구적인 것이 아니고 부당경영 행위가 적발되면 언제든 경영권을 잃는다.

이에 비해 의결권 40%를 구조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총수의 경영권은 난공불락이다.

부당경영행위를 적발하기도 어렵고 의심할 만한 일이 발생해도 퇴출시키기 어렵다.

우리는 이를 소위 '황제적' 지위라고 부르는데 이는 5%의 배당권으로 40%의 의결권을 누리는 재벌 소유구조에서 비롯한다.

이 소유구조는 정부가 적은 수의 유능한 경영자들에게 수많은 사업을 수행하도록 몰아간 개발정책의 유산이지만 이제는 유능한 경영자들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창업 총수들이 타계하면서 2세들이 능력검증 절차 없이 총수의 지위를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

배당권 5%는 국민에게 좋은 일자리를 선물한 대가로 상속돼야 마땅하며 이것을 사회에 환원하라는 주장은 부당하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의결권 40%까지 상속돼야 할 까닭은 없다.

몇몇 재벌기업들은 생산과 판매에서는 최고의 제품을 잘 만들고 잘 파는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그렇게 번 돈을 주주들에게 안전하게 전달하는 과정은 아직도 후진적이다.

우리의 재벌기업들이 모든 면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효과적 지배구조를 도입해 최소한 황제경영은 견제해야 한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shoon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