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약속 어기고 돌발행동…남측 금전적 손실만 1조원 넘을듯
[Cover Story] 폐쇄 위기 맞은 개성공단…‘남북 경협’ 희망 물거품되나
남북 경제협력의 첫 '물꼬'를 튼 개성공단이 존폐위기를 맞고 있다.

2004년 시작된 개성공단은 북측이 공단 운영에 합의했던 각종 임금 임대료 세금계약의 무효를 선언하고,남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철수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남측의 북핵문제 언급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한 개성공단 문제는 양측의 양보 없는 팽팽한 기싸움으로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남측은 개성공단 계약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북측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또 현재 억류 중인 현대아산직원 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협상테이블에 올려놓고 있어 별개 사안으로 다루려는 북측과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현재 개성에서 사업을 하는 104개 입주기업들이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경제논리에 앞선 남북 양측의 정치적 대치는 자칫하면 지난 수년간 돈과 땀을 쏟아온 개성 투자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어서다.

⊙ '경제 통일'의 희망을 안고 태동

개성공단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8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게 공단 개발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현대그룹과 북한 아 · 태평화위원회는 총 6600만㎡(약 2000만평)를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한국토지공사가 2003년 6월 부지조성 공사에 들어갔고,2006년 5월 1단계 330만㎡ 부지를 조성하면서 역사적인 '경제 통일'사업이 시작됐다.

개성공단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12월 리빙아트가 '통일냄비' 1000세트를 첫 생산한 것을 비롯 2006년 10월 시범단지에 입주한 23개 기업이 생산에 들어가며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2007년 6월에 실시된 본 단지 2차 분양 때는 141개 필지 분양에 344개 기업이 신청해 평균 2.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10월 남북 정상이 3통(통관 · 통행 · 통신) 문제 해결에 합의하고,12월에 경의선 열차 운행이 시작되면서 사업에 탄력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불안정한 남북관계와 북한의 돌발 행동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북한은 2008년 3월 "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는 김하중 당시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아 남측 당국 인원의 철수를 요구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개성공단 상주 체류 인원을 일방적으로 880명으로 제한했다.

올해 3월 한 · 미 합동 군사훈련을 이유로 육로 통행을 전면 차단했고,연이어 현대아산 직원의 억류 사태가 터졌다.

여기에다 북한이 지난달 21일 일방적으로 북측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애초 계획대로 라면 2단계 사업(공단 5㎢ · 배후도시 3.3㎢)은 올해 상반기께 부지조성 공사에 착수해야 했지만,현재는 기초적인 지질조사만 끝난 상태에서 진전이 없다.

경영 상황이 악화되자 입주를 포기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작년 이후 공식적으로 분양 계약을 해지한 업체만 9곳에 이른다.

⊙ 개성공단 앞날은…

북한은 최근 개성공단에 적용됐던 각종 임금 · 임대료 · 세금 계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남측이 이를 수용치 않을 경우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남측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보낸 통지문에서 "개성공업지구에서 6 · 15 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남측에 특혜적으로 적용했던 토지 임대료 · 사용료,노임,각종 세금 등 관련 법규 · 계약의 무효화를 통지한다"며 "우리는 변화된 정세와 현실에 맞게 법과 규정,기준이 개정되는 데 따라 이를 시행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통지문은 또 "남측 기업과 관계자들은 이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고 이를 집행할 의사가 없다면 개성공업지구에서 나가도 무방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는 북한이 입주 비용을 대폭 올리며 계속 기업 활동을 할 것인지,철수할 것인지 사실상 양자택일하라는 얘기다.

통지문은 이어 "6 · 15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6 · 15 혜택을 줄 수 없다"며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더 험악하게 번져갈지는 전적으로 남측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통지문은 또 정부가 북한에 억류돼 있는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 문제를 남북 협상에서 논의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해 "(유씨는) 현대아산 직원의 모자를 쓰고 들어와 불순한 적대행위를 일삼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며 "(유씨 문제 논의를) 제기한 것은 실무 접촉을 북남 대결장으로 만들려는 도발 행위"라고 주장했다.

통일부 김호년 대변인은 이에 대해 "북측의 통지문은 개성공단 안정을 위협하는 조치로 정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나가도 좋다고 한 것은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 무책임한 처사"라며 "북측은 이제라도 부당한 자세를 버리고 남북 실무회담에 조속히 나오라"고 촉구했다.

상황이 이처럼 험악해지고 있지만,개성공단 폐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희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양측이 입게 될 정치 · 경제적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폐쇄로 남측이 입을 경제적 손실은 당장 1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양측이 개성공단을 설립하기까지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쏟아부은 유 · 무형 비용의 손실까지 감안하면 수치만으로 피해 규모를 추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입주 기업들은 또 공단 폐쇄가 미칠 연쇄 파장 가능성을 우려한다.

한 전기부품 생산업체 대표는 "우리가 문을 닫으면 국내 협력업체 50여 곳에도 어려움이 미친다"며 "104개 입주업체의 협력업체만 5000곳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섬유업체 대표는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공단에 들어갔는데 폐쇄하면 어디서 다시 시작하라는 말이냐"고 항변했다.

북한 측 피해도 이에 못지 않다.

북한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적잖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개성공단을 잃고,북측 근로자 3만9000여 명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북한은 지난해 북측 근로자 임금으로 지급됐던 2686만달러(약 340억원)를 벌여들었다.

손성태 한국경제신문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