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ents of social science,must fear popular approval”
다음은 20세기 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1974년 12월10일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행한 연설이다.
하이에크는 이 자리에서 경제학이 사회 생활에서 왜 중요한지 얘기하면서 경제학도들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20세기 초 미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이 언급한 '사회과학도들은 대중적 동조(popular approval)를 두려워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좋게 말할 때 죄악은 그들과 함께 자라난다"는 명구를 인용하면서 학자의 자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신자유주의 사상 싹 틔운 하이에크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 1899~1992년)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이다.
화폐적 경기론과 중립적 화폐론을 전개했으며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계획경제에 반대하였다.
사회주의 및 전체주의를 비판하고,또한 서구의 복지국가가 채택하고 있던 케인스의 이론에 대항하여 자유 민주주의 이론과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옹호했다.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경제학이 그의 주된 연구 영역이지만,그는 경제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치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폭넓은 연구 활동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 서구 복지국가가 복지병과 경기침체 현상을 겪게 되면서 자유시장 중시와 계획경제 비판을 요체로 한 그의 이론이 재조명되었고,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을 필두로 하는 신자유주의 또는 신보수주의 출현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1974년 화폐와 경제 변동에 관한 연구로,이념적 라이벌인 스웨덴의 칼 군나르 뮈르달과 더불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1991년에는 미국 대통령 자유의 메달(U.S.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았다. 대표적 저서로는 《법,입법,자유》 《노예의 길》(예종에의 길) 등이 있다.
1994년 발행 50주년을 맞이한 《노예의 길》에는 2006년 작고한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쓴 서문이 보태졌다.
⊙ 원문 요약
Your Majesty,Your Royal Highnesses,Ladies and Gentlemen,Now that the Nobel Memorial Prize for economic science has been created,one can only be profoundly grateful for having been selected as one of its joint recipients,and the economists certainly have every reason for being grateful to the Swedish Riksbank for regarding their subject as worthy of this high honour.
Yet I must confess that if I had been consulted whether to establish a Nobel Prize in economics,I should have decidedly advised against it.
One reason was that I feared that such a prize,as I believe is true of the activities of some of the great scientific foundations,would tend to accentuate the swings of scientific fashion.
This apprehension the selection committee has brilliantly refuted by awarding the prize to one whose views are as unfashionable as mine are.
I do not yet feel equally reassured concerning my second cause of apprehension.
It is that the Nobel Prize confers on an individual an authority which in economics no man ought to possess.
This does not matter in the natural sciences.
Here the influence exercised by an individual is chiefly an influence on his fellow experts: and they will soon cut him down to size if he exceeds his competence.
But the influence of the economist that mainly matters is an influence over laymen: politicians,journalists,civil servants and the public generally.
There is no reason why a man who has made a distinctive contribution to economic science should be omnicompetent on all problems of society - as the press tends to treat him till in the end he may himself be persuaded to believe.
One is even made to feel it a public duty to pronounce on problems to which one may not have devoted special attention.
I am not sure that it is desirable to strengthen the influence of a few individual economists by such a ceremonial and eye-catching recognition of achievements,perhaps of the distant past.
I am therefore almost inclined to suggest that you require from your laureates an oath of humility,a sort of hippocratic oath,never to exceed in public pronouncements the limits of their competence.
Or you ought at least,on confering the prize,remind the recipient of the sage counsel of one of the great men in our subject,Alfred Marshall,who wrote:"Students of social science,must fear popular approval: Evil is with them when all men speak well of them".
▶ Verbs & Idioms
△ joint recipients : 공동 수상자
△ accentuate : 강조하다, 역설하다
△ swings of scientific fashion : 과학적 형태의 파편들
△ confer : 수여하다
△ omnicompetent : 전지전능의
△ laureate : 수상자
△ oath of humility : 겸손의 맹세
△ hippocratic oath :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 confering the prize :상을 수여하다
△ Popular approval : 대중적 동조
⊙ 앨프리드 마셜 (Alfred Marshall)
1842년 7월 2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창시자.
처음에는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였으며,후에 형이상학과 윤리학 연구를 거쳐 경제학을 연구하였다.
1885년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영국 경제학계의 지도자로서는 물론,왕립위원회(王立委員會) 위원으로서도 학문과 정책에 공헌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경제학원리 Principles of Economics》(1890) 《산업과 무역 Industry and Trade》(1919) 《화폐 · 신용 및 상업 Money,Credit and Commerce》(1923)의 3부작이 있다.
마셜은 빈곤의 여러 원인을 연구하고 극복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진보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데에 경제학의 과제를 두었다.
경제이론의 기초에 스펜서식의 사회유기체를 도입하였으며,경제학자의 메카는 경제동력학이 아니라 경제생물학이라고 하는 사회관을 이론의 기초에 두었다.
가치론에 있어서는 고전학파의 생산비설(生産費說)과 제번스의 한계효용학설(限界效用學說)을 종합하였으며(절충가치론자라고 함),부분균형론에 시간요소를 도입한 동태론(動態論)을 전개하였다.
내부경제 · 외부경제 · 탄력성 · 소비자잉여 등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 후 후생경제학의 길을 열고,불완전경쟁 이론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
다음은 20세기 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1974년 12월10일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행한 연설이다.
하이에크는 이 자리에서 경제학이 사회 생활에서 왜 중요한지 얘기하면서 경제학도들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20세기 초 미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이 언급한 '사회과학도들은 대중적 동조(popular approval)를 두려워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좋게 말할 때 죄악은 그들과 함께 자라난다"는 명구를 인용하면서 학자의 자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신자유주의 사상 싹 틔운 하이에크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 1899~1992년)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이다.
화폐적 경기론과 중립적 화폐론을 전개했으며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계획경제에 반대하였다.
사회주의 및 전체주의를 비판하고,또한 서구의 복지국가가 채택하고 있던 케인스의 이론에 대항하여 자유 민주주의 이론과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옹호했다.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경제학이 그의 주된 연구 영역이지만,그는 경제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치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폭넓은 연구 활동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 서구 복지국가가 복지병과 경기침체 현상을 겪게 되면서 자유시장 중시와 계획경제 비판을 요체로 한 그의 이론이 재조명되었고,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을 필두로 하는 신자유주의 또는 신보수주의 출현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1974년 화폐와 경제 변동에 관한 연구로,이념적 라이벌인 스웨덴의 칼 군나르 뮈르달과 더불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1991년에는 미국 대통령 자유의 메달(U.S.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았다. 대표적 저서로는 《법,입법,자유》 《노예의 길》(예종에의 길) 등이 있다.
1994년 발행 50주년을 맞이한 《노예의 길》에는 2006년 작고한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쓴 서문이 보태졌다.
⊙ 원문 요약
Your Majesty,Your Royal Highnesses,Ladies and Gentlemen,Now that the Nobel Memorial Prize for economic science has been created,one can only be profoundly grateful for having been selected as one of its joint recipients,and the economists certainly have every reason for being grateful to the Swedish Riksbank for regarding their subject as worthy of this high honour.
Yet I must confess that if I had been consulted whether to establish a Nobel Prize in economics,I should have decidedly advised against it.
One reason was that I feared that such a prize,as I believe is true of the activities of some of the great scientific foundations,would tend to accentuate the swings of scientific fashion.
This apprehension the selection committee has brilliantly refuted by awarding the prize to one whose views are as unfashionable as mine are.
I do not yet feel equally reassured concerning my second cause of apprehension.
It is that the Nobel Prize confers on an individual an authority which in economics no man ought to possess.
This does not matter in the natural sciences.
Here the influence exercised by an individual is chiefly an influence on his fellow experts: and they will soon cut him down to size if he exceeds his competence.
But the influence of the economist that mainly matters is an influence over laymen: politicians,journalists,civil servants and the public generally.
There is no reason why a man who has made a distinctive contribution to economic science should be omnicompetent on all problems of society - as the press tends to treat him till in the end he may himself be persuaded to believe.
One is even made to feel it a public duty to pronounce on problems to which one may not have devoted special attention.
I am not sure that it is desirable to strengthen the influence of a few individual economists by such a ceremonial and eye-catching recognition of achievements,perhaps of the distant past.
I am therefore almost inclined to suggest that you require from your laureates an oath of humility,a sort of hippocratic oath,never to exceed in public pronouncements the limits of their competence.
Or you ought at least,on confering the prize,remind the recipient of the sage counsel of one of the great men in our subject,Alfred Marshall,who wrote:"Students of social science,must fear popular approval: Evil is with them when all men speak well of them".
▶ Verbs & Idioms
△ joint recipients : 공동 수상자
△ accentuate : 강조하다, 역설하다
△ swings of scientific fashion : 과학적 형태의 파편들
△ confer : 수여하다
△ omnicompetent : 전지전능의
△ laureate : 수상자
△ oath of humility : 겸손의 맹세
△ hippocratic oath :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 confering the prize :상을 수여하다
△ Popular approval : 대중적 동조
⊙ 앨프리드 마셜 (Alfred Marshall)
1842년 7월 2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창시자.
처음에는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였으며,후에 형이상학과 윤리학 연구를 거쳐 경제학을 연구하였다.
1885년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영국 경제학계의 지도자로서는 물론,왕립위원회(王立委員會) 위원으로서도 학문과 정책에 공헌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경제학원리 Principles of Economics》(1890) 《산업과 무역 Industry and Trade》(1919) 《화폐 · 신용 및 상업 Money,Credit and Commerce》(1923)의 3부작이 있다.
마셜은 빈곤의 여러 원인을 연구하고 극복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진보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데에 경제학의 과제를 두었다.
경제이론의 기초에 스펜서식의 사회유기체를 도입하였으며,경제학자의 메카는 경제동력학이 아니라 경제생물학이라고 하는 사회관을 이론의 기초에 두었다.
가치론에 있어서는 고전학파의 생산비설(生産費說)과 제번스의 한계효용학설(限界效用學說)을 종합하였으며(절충가치론자라고 함),부분균형론에 시간요소를 도입한 동태론(動態論)을 전개하였다.
내부경제 · 외부경제 · 탄력성 · 소비자잉여 등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 후 후생경제학의 길을 열고,불완전경쟁 이론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