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없는 말 ‘슴슴하다’

"북한 사찰 음식은 특히 양념이 단순해요. 추운 지방이라 소금과 고춧가루를 적게 넣어 슴슴한 맛이 일품이죠."

40년 가까이 사찰 음식을 연구하고 세상에 알려 온 정산 스님이 최근 저서 '북한 사찰 음식'을 펴내면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얘기 가운데 '슴슴한 맛'이 어떤 맛인지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남한에서는 '슴슴하다'란 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말은 실생활에서 간간이 듣거나 볼 수 있지만 공식적인 표준어 체계에선 버림받은 단어다.

'슴슴하다'는 '음식 맛이 조금 싱겁다'(나물을 슴슴하게 무치다/국이 슴슴하다),'인상에 남을 만큼의 흥취나 멋이 없다'(명절을 슴슴하게 보내지 말고 재미있게 놀자)는 뜻의 고유어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이는 '슴슴하다'를 남한의 표준어에서는 죄다 '심심하다'로 바꿔 놓았다.

한마디로 '슴슴하다'는 버리고 '심심하다'만 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심심하다'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하나는 '음식 맛이 조금 싱겁다'(국물을 심심하게 끓이다)이고 다른 하나는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입이 심심하다/심심하던 차에 말 상대를 만나다)는 뜻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이 밝힌 어원정보에 따르면 '심심하다'의 옛말 형태가 '슴슴하다'이다.

이를 북한에선 '슴슴하다'와 '심심하다'를 같이 살려 이어 온 데 비해 남한에선 '슴슴하다'는 버리고 '심심하다'로 통일해 쓰기로 한 것이다.

남한은 그동안 표준어 정책을 취하면서 '버린 말'이 너무 많다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슴슴하다'도 그 중 하나다.

어쨌든 아쉽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슴슴하다'란 말 대신에 '심심하다'를 쓸 것을 학교문법에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사족 하나.

'심심하다'가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일 때가 있다.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이때의 '심심하다(甚深--)'는 주로 '심심한' 꼴로 쓰여,'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한자어이다.

그러니 고유어 '심심하다'와는 형태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말이므로 구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