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소득 재분배와 관련한 정치철학적 문제로 흔히 공리주의,존 롤즈주의,로버트 노직주의 등의 기준이 제시된다.

이들의 견해를 잘못 설명한 것은?

① 공리주의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가정한다.

②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③ 공리주의와 존 롤즈주의를 비교할 때 공리주의가 소득 재분배를 더 강조한다.

④ 로버트 노직은 본질적으로 재분배 정책은 필요없다고 본다.

⑤ 존 롤즈의 견해에 의하면 정의란 무지의 베일에 가려진 상황에서 선택하는 기준으로 최소수혜자의 복지를 중요시한다.

해설

['테샛' 공부합시다] 분배적 정의는 … 롤즈(진보주의)냐, 노직(자유주의)이냐
소득 재분배의 정치철학으로는 전통적인 공리주의와 존 롤즈의 진보주의(liberalism),로버트 노직의 자유주의(libertarianism)가 대표적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공리주의는 한계효용 체감을 기초로 한다.

부유한 사람의 1달러보다 가난한 사람의 1달러가 큰 효용을 창출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총 효용을 극대화하려면 부유한 사람에게 1달러를 주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1달러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부자의 1달러를 가난한 자에게 주면 공리주의적 원칙은 충족된다.

그렇다고 공리주의자들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소득이 똑같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리주의자들은 사람들이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는 원리를 인정한다.

즉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은 세금을 내고 낮은 사람은 정부의 보조금이나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아야 하지만 세금은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을 저해하므로 사회 전체적으로 손실이 된다.

그래서 공리주의자들은 평등에서 오는 이익과 근로의욕 저하에서 비롯되는 손해를 잘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 롤즈는 사회의 각 단체,법,정책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롤즈는 어느 누구도 자기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그 사회에 태어날지 모른다고 가정하는 '무지의 베일' 뒤에 가려진 '초기 상태'에 있다고 가정한다.

모두 같은 입장에 있고 아무도 자신의 사적 이익에 유리한 원칙을 세울 수 없다면 공정한 합의의 결과로 정의의 원칙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롤즈는 초기 상태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소득분배의 최하위층에 떨어지지 않을까를 염려하기 때문에 공공정책의 목표는 사회 최빈층의 복지를 증가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추론한다.

공리주의자처럼 모든 사람들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최저 수혜자층의 효용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최소 극대화 기준이라고 부른다.

존 롤즈는 공리주의보다 소득분배를 더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로버트 노직은 분배원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쓸데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활동의 결과를 평가하기보다는 결과가 나온 과정의 공정성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직 등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기회의 균등이 결과의 균등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모든 이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기회의 균등을 보장해야 하고 이런 게임의 규칙이 정립되면 소득의 분배에 대해 정부가 관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답은 ③.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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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

임금의 하방경직성과 취업난

일자리 나누기의 시장원리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실업자 숫자가 100만을 바라보는 가운데 일자리 창출이 나라경제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대책으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일자리 나누기이다.

열 사람의 일자리를 열한 사람이 나누면 일자리는 10% 늘어난다는 것이다.

일감이 늘지 않는 상태에서 일자리를 나누면 각자 일의 양이 주는 만큼 임금도 낮아진다.

그러나 시간당 단위 임금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기업의 노동 수요,즉 일거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채용공고가 나는 곳마다 구직자가 장사진을 치는 까닭은 현재의 임금에서 노동시장이 초과 공급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작동한다면 임금이 하락해야 한다.

사실 1930년 대공황기에 시장주의자들은 조만간 임금이 하락해 실업문제가 자연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대해 중단기적으로 임금은 하락하지 않으므로 정부 개입으로 경기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경제학자가 케인스다.

케인스는 임금의 하방 경직성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므로 시장법칙의 작동만을 기다린다면 불황은 계속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고 경고했다.

임금 하방 경직성은 취업자들이 임금 인하를 거부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새 사람을 쓰면 직무에 적응하도록 훈련시키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취업자들의 임금은 구직자들이 수용하는 수준보다 어느 정도는 높게 마련이다.

그러나 구직자들이 훨씬 더 낮은 임금도 좋다고 나서도 사용자가 고임금을 고집하는 취업자들을 해고할 수 없다면 임금은 낮아질 수 없다.

강력한 노조와 고용보호법제가 가세하면 임금 하방 경직성은 더욱 강화된다.

일자리 나누기에서는 근로자 개인의 임금 총액이 감소한다.

그러나 시간당 임금은 변함없는 만큼 임금의 하방 경직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하방 경직적 임금은 일거리를 구직자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적은 수준으로 묶는다.

일자리 나누기는 모자라는 일거리를 늘리지 않으므로 정상적 일자리 창출 정책이 아니다.

임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일거리를 늘리려면 투자가 늘거나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해 공공사업을 벌여야 한다.

불황기에는 민간투자가 부진하므로 결국 공공사업 확대밖에 없다.

그러나 공공사업은 흔히 경제적 효율성에 반하는 형태로 펼쳐지는 만큼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최근에 정부는 공공부문 신규 취업자들의 임금을 낮춰서 직원들을 뽑았다.

임금을 낮추면 더 많은 일거리가 생겨나므로 일자리 나누기보다는 더 나은 정책이라 하겠다.

현재의 취업난을 잘 아는 취업자들은 낮은 임금도 수용할 것이다.

이 기회를 이용해 아예 임금 하방 경직성 자체를 무너뜨려 볼만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취업자 임금 삭감만으로는 안 된다.

임원들 연봉부터 삭감하고 시작했어야 한다.

그렇게 했어도 어찌될지 모르는 판인데 신규 취업자들에게만 양보를 강요한다면 취업 이후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불을 보듯 뻔하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shoonlee@snu.ac.kr